덕포진 이야기
-바다 위에서 혼자 타오른 촛불

                                                 
강미경(시인, 여행작가)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까만 심지를 태우며 주홍빛 불꽃이 수직으로 타오르는 아름다움 앞에 사람들은 마음을 가다듬는다. 

 며칠 전 김포에서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가는 길이었다. 다리를 건너기전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2.4km의 포장도로, 굽은 길을 들어가니 덕포진 전시관이 나왔다. 
전시관에서 보았던 것 중에 김포에서 발굴된 유물 - 도자기와 탄화미, 기와, 석기, 석촉들 보다는 녹슨 중포(中砲)와 소포(小砲)의 실물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이곳 김포 덕포진도 강화도의 광성보나 초지진과 함께 열강의 외세를 몰아낸 곳이라는 증거였다.
 
 전시관을 나와서 직원의 안내에 따라 덕포진 포대(砲臺)를 걸었다. 15개의 포대가 바닷길을 따라서 나선형을 그리고 있었다. 몸을 낮추어 안을 들여다보니, 포대마다 큰 돌멩이가 하나씩 놓여있다. 아마도 포를 고여 놓았던 받침대로 짐작되었다. 사각형의 작은 포대(砲臺) 안에 바다를 향해서 또 작은 사각 창문이 뚫려있었다. 포의 입구를 그 창밖으로 길게 빼고 포를 쏘았을 것으로 상상이 되었다. 
 
 서해를 바라보며 둑길을 한참 걸어 파수청(把守聽)을 지나니, 바다를 보며 언덕 위에 무덤 하나가 덩그마니 혼자 있다. 비석 또한 그의 묘 높이보다 더 큰 키를 하고 있다. 묘 둘레를 화강석으로 둘레석까지 두르고, 돌에는 매화와 새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 곳은 고려 때 손돌이라는 뱃사공의 묘라고 안내문은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산소는 산에 있게 마련인데, 손돌의 묘는 협류가 보이는 덕포진 해안 언덕에 홀로 있는 것이 독특했다. 고독이다. 그러나, 어느 정승의 묘보다 더 정성들여 단장되어있고, 왕명으로 사당까지 지어주고 후히 장사지내졌다는 전설이 내려오니 신기한 이야기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 싶었으나, 그날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여러 날 공부를 하다가 그 무덤과 덕포진 포대까지 발굴한 분이 김기송(金基松) 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포시청 문화예술과에 협조를 요청해서 그분과 인터뷰 약속을 잡고 나흘 만에 그곳을 다시 찾아갔다. 
 
  몽고의 침입을 받은 고려23대 고종이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자신도 몸을 피하고자 배에 오른다. 바다 위를 잘 떠가던 배가 손돌목(손돌해협)에 이르러 급한 물살에 배가 이리 저리 움직이며 풍랑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 불안해진 왕은 손돌이 몽고가 보낸 간첩이라는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한다. 손돌 간첩이 급류의 위험한 지경으로 몰고 가서 자신을 죽게 할 것이라는 강한 불안..... 배를 돌려 순탄한 뱃길로 갈 것을 명령하였으나 그 때마다 손돌 뱃사공은 “ 이곳은 원래 이런 곳이며, 조금만 가면 급한 물살을 벗어날 것이니, 자신의 충성심을 믿고 조금만 기다려 주십사 ” 재차 간청을 한다. 왕은 손돌의 말을 믿지 못하고 참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손돌은 죽으면서 “ 배 앞에 이 바가지를 띄우시고, 바가지가 떠가는 대로 노를 저으면 곧 강화도에 안전하게 도달할 것입니다. ” 하면서 숨을 거둔다. 촛불의 마지막 심지가 꺼지는 순간이다. 심지가 꺼져도 촛불은 계속 타는 법일까?
손돌이 죽고 더 거세진 물살에, 두려움에 사로잡힌 왕은 손돌의 바가지를 배 앞에 던졌고 바가지가 이끄는 대로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하게 된다. 그제서야 자신의 경솔을 크게 뉘우치고 손돌을 후히 장사지내고 사당을 지어 그의 혼을 위로하라고 명한다. 참수당한 후에도 손돌은 영혼의 촛불을 밝혀 왕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었다는 전설이다. 죽어서도 왕의 도하(渡河)를 도왔던 갸륵하고 어진 뱃사공 손돌. 그러나, 그의 기일 10월 20일쯤이면 그가 참수되었던 손돌해협(손돌목)은 물살이 더 거세지며 바닷바람이 극도로 심해지곤 했다는 것이다. 손돌의 억울함이 성난 물살과 성난 바람으로 휘몰아친다고 믿는 김포의 이야기다. 물론, 그 때부터 그 해협의 이름이 손돌목이라고 붙여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고려 이후 계속되오던 그의 제사는 일제 때부터 중단되었다.  해설사 김기송씨는 김포시에 건의하여 손돌의 묘를 새 단장하고 제사를 복원한 후, 어느 고총(古?)에서 해 뜨고 별 뜨는 광채가 나오는 꿈을 꾸고 지금의 덕포진 나-포대를 파보게 되었고 5개의 포대와 포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가-포대에서는 7포대, 다-포대에서는 3포대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전쟁이나 홍수 등으로 포대가 땅속에 매몰되어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이다. 혹은 일제 때 우리 문화재를 함부로 일본으로 반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의병들이 흙 속에 숨겨두었을 것이라고 김 씨는 설명한다. 흙 속에 묻혀있던 덕포진을 한 사람의 열정으로 모두 발굴해내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김 씨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야 하리라. 
 
이곳이 신미양요와 병인양요의 각축장이었다는 설명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병인양요를 승리로 이끌었던 양헌수 장군이 강화도 도하(渡河) 작전을 위해 공격용 대포를 숨기기 위해 지형을 살피던 중 풍속에서 전하는 대로 손돌 묘에 가서 “ 손돌님의 영혼이 있다면 충의로 일어나는 분한 마음이 만고에 뻗칠 터이니, 빌건데 이곳을 지나는 적선(敵船)을 복멸케 하여 주소서 ”하고 무운을 빌었다고 한다. 그 기원대로 손돌의 영혼이 도왔는지, 양헌수 장군의 전략과 전술이 뛰어나서였는지 프랑스 함대는 40여일 만에 물러가게 된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때로는 이렇게 신비하고 감성적인 이야기 거리도 우리들의 집단 무의식을 충족시켜주고 있지 않나 싶다. 그렇게 우리는 프랑스군과 미국군을 손돌 해협에서 물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