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를 찾아 떠나다

-큐슈 오이타와 유후인            
강미경(시인, 여행작가)
          

여행

여행이란 언제나 나로부터 떠나 너를 만나고 너로부터 떠나 나를 들여다보는 우물. 우물 속엔 풍경이 있고 네가 있고 또 하나의 내가 있었다. 아무리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는 뜨거운 파랑새

 큐슈 여행 둘째 날이다. 여행 첫째 날은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하카타역을 통해 벳부로 이동하느라 하루를 소진했다. 큐슈에 도착한 첫날, 후쿠오카 형무소에 들러 윤동주 시인을 아파한 게 전부였다. 이동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일어나기 힘든 아침을 열고 료칸(숙소)에서 주는 아침 식사를 했다.

 오사카, 도쿄, 하코네, 대마도 여행 때도 감탄했던 일본 음식이었다. 소꼽장 같은 작은 종지에 담아져 나오는 갖가지 반찬을 보면 난 항상 흥분하곤 한다. 큐슈에 와서 먹는 첫 아침 식사와 일본 그릇에 반하여 내가 기모노를 입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흡족한 아침 시간을 보냈다.
큐슈는 워낙 도자기로 유명한 곳이니, 여기서도 일본 종지를 사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온통 머릿속이 가득하다. 
 그날 우리의 계획은 유후인에 가서 유후다케 산과 긴린코 호수를 볼 생각이었다. 벳부역에서 유후인으로 가려면 오이타를 지나게 된다. 도자기를 얻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찬 탓에 나는 오이타에 내리기로 했다. 5일 동안 JR 큐슈 기차 자유여행권을 구해놓았기에 기차는 마음껏 탈 수 있어서 오이타역에서 내렸다. 기차에서 내리니 JR 오이타시티 건물과 통해져있다. 마치 쇼핑센터에 기차역을 설치해 놓은 것 같은 기분이다. 어디를 가나 쇼핑의 유혹이 손을 흔든다. 역 부근에서 그릇 전문점을 찾고 싶었으나 내가 찾는 파랑새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역 건물에서 나오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호텔 로비에서 챙겨준 우산을 갖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낯선 일본 땅 오이타를 걸었다. 파랑새 한 마리 ? 일본 종지를 찾아서...... 그런데, 문득 아침에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던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이번 여행은 뭔가를 찾아 헤매는 여행이 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유후인으로 가는 기차는 화려했다. 차창으로 풍경을 내다보며 갑자기 집이 그리워진다. 낯선 일본의 들판과 산. 산과 산 사이로 흐르는 냇물 색깔이 한국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목적 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찾아도 찾지 못하는 도기(陶器)집. 한국에도 그릇이 없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몇 십 개가 넘게 일본 종지를 이미 모아놓고 또 사려는 마음이‘부질없는 뜬 구름은 아닌지?’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차창을 스치는 풍경과 빗줄기가 거세져만 가고 집 생각이 간절하다. 우리 집 고양이 쿵이가 보고 싶어진다. 열차 승무원들이 승객들 한 명 한 명에게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열차에 손님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친절을 베풀고 있지만, 그들의 미소도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맘이다. 

세 번째 새로운 시집 출간을 위해서 원고 정리를 하느라 눈이 아프고 어깨가 아팠던 한국에서의 며칠 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무엇을 위해서 일본에 왔는지?’한국에서 갖고 있던 여러 가지 갈등과 무거운 고민거리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낯선 공간으로 이동하여 한국의 분주한 나를 멀리서 들여다보고 싶었던 여행. 출국을 할 때 난 로밍을 신청하지 않는다. 전화 통화나 문자를 모두 차단한 채 나는 나를 일상에서 격리시킨다. 익숙한 일상에서 철저히 벗어나 낯선 공간과 풍경 속에서 한국의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싶기 때문이다. 우물에 나를 비춰보듯이 말이다. 가는 행선지는 유후인이어도 좋고 나가사키여도 좋고 구마모토여도 좋을 것이다. 어느 곳엘 가든 잠시 나를 내려놓고 싶었다. 
 내가 쓰는 글의 방향도 생각의 가닥을 잡고 싶었다. 조용히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며 나를 들여다보고 성찰하고 싶은 시간. 그런데, 함께 동행한 친구는 조잘조잘 말을 걸어온다. 혼자 있고 싶은 절실한 시간을 친구는 침략해온다. 대꾸를 하지 않으면 토라져버리고 화를 낸다. 불안하다고. 
 아주 사소한 것에도 의견이 맞지 않는 순간순간의 연속이 바로 여행이다. 4박 5일이라는 긴 시간을 24시간 호흡을 같이 해야 하는 동행 연습이 여행인 것이다. 내 오른손과 왼손도 맞지 않을 때가 있는데, 심장이 다른 사람끼리 어찌 합일이 이뤄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여행은 상대방을 참아내고 용납하는 인내를 가르쳐 주고 있다고. 여행 둘째 날부터 함께 온 친구가 후회되기 시작했다. 나가사키의 원폭투하 역사, 평화 공원을 방문하여 세계 평화를 기원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도 몰려온다. 구마모토성을 방문하여 일본의 침략주의에 대한 공부를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후회도 몰려온다. 

 유후인 역에 내렸을 때 겨울비는 더 심해져 있었다. 역 앞에 즐비한 상점들.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가게에는 벚꽃 우산으로 보이는 예쁜 우산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한국의 우산과 분위기와 색감이 사뭇 다르다. 들려보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고로케 가게의 유혹도 물리치고 빗속을 걸었다. 빗줄기가 우산 속으로 들이쳤지만 여기까지 몇 시간을 왔으니 이곳의 명소라는 긴린코 호수에는 들려야한다고 내가 우겼다. 목적 없이 상점 구경만 하는 건 후회가 될 것 같았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일본 특유의 가옥과 상점 풍경들. 언제 내렸는지 어둠이 내려, 가게에서 뿜어져 나오는 주홍 불빛들이 운치를 더한다. 어디선가 윤동주 시인이 불쑥 튀어나올 것 같다. 교복에 교모를 쓴 청년 시인, 윤혜환. 유후인에 와서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는 건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픔처럼 몰려오는 빗물같은 거였다. 그 전날 윤동주 시인이 사망한 후쿠오카 형무소에 찾아갔던 기억이 스쳤기 때문일 것이다.‘윤동주 시인도 이 거리를 70여 년 전에 걸었을까? 이곳을 여행 삼아 찾아오진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 마음은 시인 생각으로 골몰한다. 

 옆에 있는 친구가 이 순간 나를 혼자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혼자 빗속을 걸으면서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고 시 창작에 대해 사유하고 싶었는데......

 우리가 20여분을 걸어서 도착한 긴린코 호수는 그리 크지 않았다. 중국 항주에서 보았던 서호를 기대하고 갔었는데, 역시 어긋난 파랑새처럼 작은 저수지로 앉아있는 긴린코 호수. 호수 표면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방울방울 동그라미를 그리고 호수를 적시고 내 맘을 적셨다.  겉옷도 가방도 비에 젖어 눅눅한 긴린코 호수는 한 조각 도장을 내 기억에 꾹 찍고 있다. 

 
 저만치 유후다케 산에서 하얀 연기가 군데군데 피어오르고 있다. 아직도 활화산이라고 하니 분화구에서 내뿜는 연기이리라. 이곳에서 일본의 지형과 지질을 한 번 더 생각했을 뿐이다. 호수 건너 불이 환하게 비치는 건물은 레스토랑인지, 테이블에 앉아 누군가 식사를 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어두운 곳에서는 밝은 실내 풍경이 잘 보이게 마련이다. 그들의 안식이 부럽기만 하다. 어서 빨리 숙소로 돌아가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러나, 한번 와 보았었다는 친구는 자신의 기억만을 고집하며 앞장 서서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호수를 찾아올 때의 길과 같지 않다는 것을 나는 금방 알아차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제대로 찾아보자고 하여도 고집만 부린다. 한참을 비를 맞으며 헤매고 헤매어 역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나는 청년에게 성질 급한 내가 길을 묻고 나서였다. 
 그렇게 파랑새를 찾지 못한 채 지쳐서 돌아온 뱃부의 숙소. 내복도 가방 속의 책도 젖어 있다. 도자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길을 잃어 다리가 아팠던 빗속의 하루. 집이 그립기만 한 시간들이다. 

‘이 여행의 애당초 목적이었던 하시마 섬을 찾아갔더라면 분명한 목적 있는 여행이 되었을텐데.....’라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하시마섬의 아픈 역사 - 일본 미시비찌 중공업 발전에 강제 동원되었던 한국인 징용자들의 피 맺힌 이야기를 글 쓰려 계획했던 애당초 계획은 이렇게 어긋난 빗줄기가 되어버렸다.‘다리가 아파도 발이 젖고 옷이 젖더라도 하시마 섬에 다녀왔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 여행엔 항상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하시마 섬 여행 계획에서 유후인과 오이타로의 전환. 무겁고 아픈 역사 기행지 ? 하시마 섬을 외면했다. 큐슈까지 갔으면서. 
 아니다. 대마도 히타카츠항에서 부산항으로 귀국할 때 배가 몹시 비바람에 흔들렸으므로 하시마 섬이 두려웠던 것이다. 바다에 대한 공포. 나가사키항에서 2시간 30분을 배를 타야 한다는 정보를 미리 들었기에. 하시마 섬에서 희생된 조선 징용자들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지만, 가지 않았다. 하시마 섬 대신 선택했던 유후인 여행. 하시마 섬에서 희생된 이들의 아픈 눈물처럼 비는 내리고, 나는 길을 헤매고, 맘이 편하지 않아 핸드폰도 잃어버리고 도자기에 정신을 빼앗겼었나보다. 비에 흠뻑 젖었던 유후인 거리와 긴린코 후수, 유후다케 산에서 피어오르던 하얀 연기의 분화구. 화려했던 기차. 기차에서 보았던 차창 밖의 이국적인 풍경들. 이런 것들만 내 기억에 붉은 도장처럼 남을 것이다. 

2016.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