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윤준경

봄눈

봄이 오기 전에 꼭 한번 그대에게 가고 싶었다
찬바람 부는 어느 새벽불면을 박차고 일어나내 순결의 모습 그대로 하얀 스카프를 날리며
그대가 있는 곳을 향해첫차를 타고 싶었다
내 영혼의 뜨거운 별을 찾아 아직 잠든 그대에게 메시지를 날리며

마침내 그대에게 이르러가뭇없이 녹아내리고 싶었다 

봄이 오기 전에 꼭 한번 그대에게 꽃피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남들은 내가 이미 
사랑을 모르는 여자인줄 알지만

눈꽃 흐드러진 산길에서나 
돌 틈에 돋아난 새싹을 발견할 때 느닷없이 찾아와 
옆에 서는 이가 있습니다

그때는 마주 보고 사랑했지만

지금은 추억으로 사랑합니다

물의 상처

늦은 밤 냇가를 거닐다보면
하염없이 흐느끼는 물의 울음소리 들린다
차르륵 차르륵 제 살갗을 찢으며
낮게 엎드려 우는 소리 

저 맑은 물에 누가 상처를 내었나
누가 돌을 던져 물을 울게 했나

풀잎들 선 채로 잠이 깊고
별빛 자부룩히 물 위에 떠오를 때
혼자서 냇가를 거닐다보면
내 속의 상처 하나 둘 아물어 간다

금간 가슴을 살살 쓸어주며
흘러가는 물

알 것 같다, 물이 우는 이유
누군가의 상처를 씻어주다 보면
아파서
물은
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리 위에서의 짧은 명상

저물 녘 강바람이 좋은 다리 위를 거닐면 스피노자의 명상이 나에게 온다포장마차 두어 개쯤에서 국물이 끓고 소주잔 몇 개 쓰러져 있다 
강아지풀 무성하고 둔덕엔 누가 심은 호박잎도 푸르러 눈부신 욕망 살
아 오는 듯, 
비만의 한 여인은 달리다 걷다 다시 달리고, 허리 굽은 노파는 빈 상자를 
실은 구루마와 씨름을 한다 
최신형 자동차가 지나가고 후줄한 어깨의 한 사내가 지나가고 정체 모를 나
도 지나가고... 포장마차 아저씨는 늦은 점심을 먹으며 램프에 불을 붙인다 
건너편 칼국수 집에는 손님이 빼곡하고 
어디서 싸우는 소리 들려오는...

저물 녘 강바람이 좋은 다리 위에서 사과 씨 하나 손에 쥐고 돌아온다

윤준경 

아태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 회원
국제PEN한국지부 회원
초등교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