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의 하루

강미경 (시인, 여행작가)

우리 여행팀은 아침 일찍 운젠으로 떠났다. 운젠의 지옥계곡을 보았다. 마스크를 했는데도 유황냄새가 강하게 올라왔다. 평평한 곳을 계곡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특이하다. 하얀 연기가 물 위에서 올라온다. 그게 온천이라고 했다. 물이 뿌옇다. 보슬비가 오기 시작하고 계곡에서 뿜어내는 물안개가 시야를 뿌옇게 가린다. 일본이 기독교를 탄압할 때 이곳에서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는 이들을 모두 죽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명이다. 더 내려가면 그 때 죽은 이들의 십자가가 모여 있다고 하는데 운무가 앞을 가려서 더 이상 걷기도 힘들다. 축축한 습기로 가득한 곳, 유황 냄새로부터 벗어나 우리들은 서둘러서 나가사키로 떠났다.

 
 1시간 30분 정도 달린 것 같다. 나가사키에 도착하면, 안경 모양으로 생겼다는 메가네바시와 스와 신사를 본 후 평화공원을 보는 게 그날의 일정이다. 안경다리와 스와 신사에는 관심이 없는 터라 우리는 두 곳을 포기하기로 하고 원폭자료관으로 가기로 했다. 나가사키 시가지에 들어서니 빗줄기가 더 심해져 있다. 스와 신사 앞에서 우비를 단단히 입고 우리는 여행팀과 헤어져 원폭 자료관으로 갔다. 앞으로 2시간 후에 평화공원에 있는 평화의 동상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말이다. 여행사에서 우리 둘에게만 허락해준 2시간의 자유다. 나가사키에 가면 무엇보다 꼭 봐야하는 게 원폭자료관과 평화공원이라고 별러왔기에 두 곳을 모두 자세히 볼 시간이 넉넉하지 못할까 염려했었다. 
 나가사키는 노면전차가 발달해 있어서 그걸 타면 나가사키 시내를 모두 볼 수 있다고 한다. 노면전차는 일본 나가사키와 구마모토에만 남아 있는 것이고 낭만적이라고 했다. 전차는 지하로 다니질 않는다. 나가사키는 지반이 흔들리고 약해서 지하철을 만들 수가 없다고 한다. 해서 도로 위로 전차가 다닌다. 노선별로 전차 색깔도 모두 다르다. 전차의 길이도 우리나라 일반 버스 보다 약간 짧은 듯하다. 노면전차를 타는 게 낭만적일 것 같아서 꼭 타보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우리는 스와 신사 앞에서 택시로 원폭자료관까지 이동을 했다. 전차를 타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는 가이드의 조언이었다. 1160엔의 택시비가 우리를 원폭자료관 앞에 내려주었다. 생각보다 먼 곳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이동하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하게 될까봐 염려했었는데..... 이곳에 신속하게 잘 찾아오게 된 것에 감사하며 자료관으로 들어가려니 오른쪽 한편에 금빛 동상들이 서 있다. 교단 위에서 오른 팔을 올리고 있는 교사와 교단 밑에 네 명의 어린 남녀 학생이 서 있다. 학생들 발 옆에는 새가 한 마리씩 앉아 있다. 한 학생이 새를 손으로 바쳐서 하늘로 날려주는 모습을 형상화해 놓았다. “원폭수난학생과 교사”를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게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이니, 평화롭게 오전 수업을 하고 있던 학교(교사와 학생 2000여명)가 모두 원폭에 희생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아 사진 한 장 찍고, 지하에 있는 원폭자료관으로 들어갔다. 내려가는 길에는 연도가 5년 단위로 표시되어 있고, 1945년 8월 9일 11시 2분에 멈춰 선 나무 벽시계가 걸려있다. 그곳 자료관은 그렇게 사라진 시간 속으로 무겁게 우리들의 시선을 끌고 갔다. 파괴된 철로, 우그러진 사이다병, 재가 되어 버린 도시락, 타다만 동전들, 그릇들, 폐허가 된 시가지, 널브러진 시체들, 잿더미, 부상당해 살이 화상으로 짓무른 남자의 위 통 등. 게다가 원폭이 떨어진 곳이 하필이면 우라카미 성당 근처여서 미사를 드리던 사제와 신자들도 모두 사망했다는 것이 적혀있다. 불에 타다가 오그라든 묵주와 천사상(天使像), 원폭에 파괴된 성당, 목이 달아난 성사도상(聖師徒像) 등 잔해가 재현되어있다. 원폭으로 피해를 당한 모습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fat man)은 플라트늄의 핵분열에 의한 것이었으니 폭풍이 일고, 견디기 힘든 3000~4000도의 열-무서운 방사선이 나왔으니 그 피해가 참혹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일 것이다. E=MC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대로 플라트늄이 버섯구름 모양으로 폭발하면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졌을 거라는 과학 실험 결과를 관찰하는 것 같다. 일본이 그 자료관에 전시한 사진들과 피해물들을 보면서 물리학의 결과를 보듯 냉정한 마음이 들었다. 나가사키 시민들 중 74,000여명이 사망했고, 75,000여명이 부상을 입었었지만, 부상자들도 원자병으로 서서히 죽어갔다. 그 때 희생된 조선인이 2만 여명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 자료관을 둘러보는 내내 어느 구석을 찾아보아도 그런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Little man(우라늄)을 떨어져 약 12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는데도 일본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2차 대전을 일으켰던 세 나라 중, 이미 이탈리아와 독일이 항복을 한 후였다. 포츠담 회담 결과, 유엔에서 일본에게 항복할 것을 미리 통고했음에도 일본은 그것을 무시했다. 히로시마 원폭에 대해서도 일본은 함구했다. 3일 뒤 미국은 일본의 고쿠라 상공에 또 원폭을 투하하려 했다. 그날 고쿠라 상공에 구름이 가득 끼어 고쿠라의 군수 시설을 파괴할 미국의 계획은 차선으로 나가사키를 택했다. 나가사키에 조선소가 있었고, 병기를 만들어 나가사키 항을 통해 동북아 전쟁에 군수 물자를 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가사키의 우라카미 계곡, 성당과 외과병원, 나가사키 형무소가 있던 자리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500미터 상공에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선량한 나가사키 시민들 7만여 명이 폭사했다. 전쟁은 군사들끼리의 전투로 끝나면 좋았을 텐데, 아무 죄 없는 선한 백성들까지 희생된다는 게 가슴 아플 뿐이다. 원폭 자료관을 둘러보는 내내 ‘일본이 이 자료관을 만든 의도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원자폭탄이 투하되기까지의 전후 사정에 대한 전시는 전혀 없다. 원폭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일지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이 일류 역사 상 최초로 두 번이나 원폭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만 말할 뿐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속죄하는 모습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연민을 일으키게 한다. 원폭의 참상을 보면서, 그들의 식민지였던 우리들의 마음에도 그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감상적인 생각도 잠깐이었다. 그들이 일으켰던 만주사변, 러일전쟁, 중일전쟁, 조선 침략과 수탈, 히젠도에 의해 희생된 명성황후, 관동 대학살,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본의 군국주의에 희생되고 파괴되었던 동양의 평화를 무엇으로 그들은 보상할 것인지? 그저 화가 치밀어 오르는 시간이었다. 자료관에서 관람하는 내내 목이 말라 1층 로비 자판기에서 따뜻한 오차를 구해 마시며, 평화 공원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일본의 안내원들은 친절했다. 걸어서 5분만 가면 된다는 것이다. 

 평화공원을 둘러보고 ‘조선인 위령비’를 찾아 묵념을 올린 후 우라카미 성당에 찾아가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발길을 옮길 때였다. 
“여기들 계시네요” 메가네바시와 스와 신사를 보고 2시간 후에 만나기로 한 여행사 팀들이 어느새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는 그들과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비바람이 심해서 대충 둘러보고 급히 평화공원으로 우리를 찾으러 왔다는 것이다. 일본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그 전날 하우스텐보스와 사세보에서는 맑은 날씨를 허락하더니 이곳 나가사키는 차가운 겨울비가 내렸다. 바람도 꽤 심하다. 

 평화공원을 둘러보는 내내 평화롭지 못했다. 원폭 폭심지며 모자(母子)상을 둘러보며 또 화가 치민다. 검은색 플라워 치마를 입은 어머니가 죽은 아이를 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조각으로 만들어 놓았다. 치마에는 장미꽃이 닥지닥지 붙어있다. 평화의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편안하게 평화롭게 평화의 공원으로 이동하라는 배려일 것이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분수가 시원하게 솟아오르고 있다. 원폭으로 죽어가던 소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분수대 앞에 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너무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고 싶다. 물에 기름이 섞여있지만 목이 말라서 어쩔 수 없이 그 물을 마셨다”고. 일본의 소녀가 남긴 갈증을 호소하는 글귀.

 분수 가운데로 몇 미터 앞에 청동빛 평화의 상이 보인다. 나가사키 출신의 미술가 기타무라 세이보(北村西望)가 1955년에 완성한 것이다. 오른손을 하늘로 치켜세우고 왼손은 수평으로 뻗고 있다. 눈을 감고 있다. 원자 무기의 위협과 평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각각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쨌든 이제는 일본이 원자폭탄의 위협을 두려워하며 그들의 행적을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보아도 되는지. 일본은 2차 대전을 종전한다는 항복 문서에 서명하며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그 평화 선언을 이 공원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좀 더 날씨가 화창한 봄날에 이곳을 찾았더라면 온갖 꽃들과 나비와 새가 평화롭게 날아다니는 어느 공원 중에 하나라고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평화 공원 곳곳에 세워진 여러 조형물들이 모두 평화를 열망하는 일본인들의 진정성이라고 보아도 좋을는지? 그곳에도 역시 하얀 석고로 자식을 안은 어머니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일본의 어머니에게만 모성이 있느냐?”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조형물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평화의 종’이었다. 청동으로 만든 천사들이 청동 종을 덮고 있는 조형물. 그 밑에 청동빛 돌에는 황금색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원폭순국자의 비” 일본은 그 때 폭사된 모든 나가사키 시민들을 ‘순국’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일본 통치권자의 오판으로 일본이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켰고, 그 희생으로 죄 없는 일본 백성들이 억울하게 죽었으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일이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보면....... 

 어쨌든 어느 나라 사람의 생명이든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 신이 부여해준 인간의 생존권과 행복을 누릴 권리를 인간의 핵폭탄이 앗아갔다. 그리고 그 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갔던 조선의 강제 징용자들 ? 그들의 죽음은 나가사키의 일본인들이 받은 피해보다 2배 3배 더 억울한 비극이었다. 

 원폭 자료관에서 나와 평화 공원으로 찾아가는 길에 기도하는 소녀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왼쪽 계단으로 올라만 가면, 조선인 위령비가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곳을 찾지 못했다. ‘평화 공원 어딘가에 위령비가 있으려니’ 하며 평화공원에 가서 평화상 주변에서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평화공원에서는 조선인들의 위령비 따위는 없었다. 그곳에 있을 것을 기대했던 내 기대가 잘못된 소망이었다. 일본 정부와 나가사키 시에서 조선위령비 설치를 허가하지 않는 다는 것을 귀국해서야 알았다. 뜻있는 개신교 목사(오카 마사하루)를 중심으로 시민단체에서 모금을 통해 50만 엔으로 조선인 위령비를 세웠다. 원폭자료관 승강기 옆 후미진 곳에 초라하게 서있다고 했다. 이정표 하나 안내 표지판 하나 없었으니, 그 앞에까지 갔다가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고만 것이 아닌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귀국하고 나서야 찾아도 찾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시 가야할 것 같다. 나가사키에. 꽃 한 다발 들고 다시 찾아가 조선인 위령비 앞에서 머리 숙여 깊은 묵념과 기도를 올려드려야 할 것 같다. 
 
 여행사 팀들과 비바람을 피해 서둘러 닛쇼칸 숙소로 들어갔다. 언덕을 25여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여 숙소에서 온천을 하며 나가사키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나가사키의 야경은 일본의 3대 야경 중에 하나로 뽑힌다는데 닛쇼칸에서 내려다보이는 나가사키 항구며 미씨비씨 조선소의 모습은 불빛을 머금은 진풍경만으로만 보이질 않았다. 도교 호텔에서 민족반역자를 처단하고 피신하다가 나가사키 항에서 체포되었던 양근환 의사 생각이 났다. 지난 2016년 5월에 그에 대한 글을 발표했었으니 기억이 생생한 일이다. 저 항구에서 배를 타면 하시마(군칸치마)섬에 가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왜 나는 그 길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 평온하도록 잔잔하게 항구에 떠있는 배들을 보면서 ‘저 배를 타고 뭔가 알아내고 캐내려 떠나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괴롭기만 했다. 나가사키의 야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닛쇼칸에서, 잘 차려진 저녁 뷔페 식사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편하지 않았다. ‘이 시간에 데지마나 오우라 성당, 우라카미 성당, 여기당(如己堂)을 더 둘러보아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 밖에는 바람이 거세게 부는지 유리창 밖으로 나뭇잎들이 거칠게 흔들리고 있다. 차가운 빗줄기도 유리창을 때린다. 

 항상 아쉬움이 남는 게 여행이다. 여행의 끝은 다음 여행의 시작이기도 하다. 다시 일본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레일 패스를 예매했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자유롭게 혼자 찾아가서 마음껏 둘러보고, 있고 싶은 만큼 그곳에 머무르며 억울했을 그 시절 우리 조상들을 위로하고 싶다.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순국했다는 백정기 의사의 넋도 만나봐야 할 것 같다. 다시 나는 나가사키행 여행 가방을 챙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