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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의 독립운동가 조마리아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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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4  17: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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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의 독립운동가 조마리아 여사

 

조마리아
趙姓女

미상 ~ 1927
황해도 해주, 애족장(2008)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마리아(趙姓女, 미상~1927) 여사를 2017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조마리아 여사는 황해도 해주군에서 배천 조씨 조선의 3남 2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여사는 같은지역의 안태훈과 혼인하였으며 슬하에 안중근, 안성녀, 안정근, 안공근 등 3남 1녀를 낳았다.
1897년 여사는 평소 서양종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남편의 권유에 따라 뮈텔 주교로부터 영세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일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1905년 남편의 지병으로 인한 서거 이후 여사는 아들들과 함께 진남포로 이주하였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안중근은 국채보상운동을 주관하던 서상돈 회장에게 자청하여 관서지부를 개설하였고, 여사 또한 자진하여 국채보상 의연금을 냈다. 1907년 5월 여사는 ‘삼화항패물폐지부인회’의 제2차 의연활동에서 은장도, 은가락지, 은귀걸이 등 20원 상당의 은제품을 납부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은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이 의거는 국내외 각지에서 갖은 고초를 견디며 반일운동을 벌이던 한국인들로부터 큰 찬양을 받았으나 안중근 가족들은 일제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
1910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목릉이라는 곳에 정착하였다가 1914년 니콜리스크로 이주하였다. 이곳에서 안정근은 최초로 벼농사를 성공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대규모 농장을 건설하여 독립운동 기지건설에 필요한 항구적인 재원을 마련하려 하였다.
1922년 여사는 상해로 이주하여 임시정부에 참여한 안정근과 함께 지내면서 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한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창립하여 위원으로써 임시정부 후원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생전에 여사는 ‘여중군자(女中君子)’ ‘여걸(女傑)’이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신망이 높았다. 상해에서 함께 생활한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는 여사에 대해 “너그러우면서도 대의에 밝은 분이었다”고 회고하였다. 여사는 1927년 7월 15일 위암으로인해 66세를 일기로 별세 하였고, 정부는 2008년 조마리아 여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자료제공: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  ☎ 044-202-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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