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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의 독립운동가김수민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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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3  1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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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의 독립운동가 김수민 의병장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김수민(金秀敏, 1867~1909) 의병장을 2017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경기도 장단 북면 솔랑리에 거주하던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고 있던 농민이었다. 선생은 어려서 무예에 능하고 용력이 뛰어났으며 사격술과 전술에도 능하였다. 이러한 선생의 능력은 의병을 조직하고 이끌어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의병으로 활동하기 전 선생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여 일본을 상대로 싸웠으며 광무황제의 강제퇴위와 대한제국군대의 해산을 계기로 경기도 장단 지역에서 인근의 산포수와 농민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11월 13도창의군과 함께 서울진공작전을 참여하였으나 총대장이던 이인영이 1908년 부친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장례를 치루기 위해 문경으로 되돌아가고, 참여부대들의 진군 차질로 서울 진공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1908년 2월 서울진공작전이 무산된 뒤 선생은 휘하 의병부대를 이끌고 장단군 구화장을 근거지로 양주, 포천 등 경기 동북부 지역 연합의병을 형성하여 의병운동을 전개하면서 일본군의 헌병분파소를 파괴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1909년 3월 ‘창의도독부사령장겸군량관’ 명의로 격문을 보낸 이후 의병부대의 재편과 의병운동의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고 있었다. 선생이 직접 서울에 잠입하여 서울의 정세를 살피고 총기 및 군수품을 구입하였고, 이를 다른 의병장에게 제공하거나 모처에 은닉하여 의병활동에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그러나 김수민의 서울 잠입이 일제에 의해 포착되어 고양군 하도면으로 피신하였으나 1909년 8월 12일 경성필동헌병대에 발각되어 부하 2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선생은 헌병대 사령부의 취조를 받으며 모진 고문속에서 ‘나를 죽일지 살릴지 빨리 결정할 것이고, 나에 대하여 장황하게 질문하여도 답할 것이 없다’고 하며 끝까지 동료 의병을 보호하며 일본군의 고문을 이겨내었고, 12월 7일 교수형을 당함으로써 2년여에 걸친 구국 의병전쟁을 마감하였다.
정부는 1962년 김수민의병장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의병장 김수민 
金秀敏

1867 ~ 1909. 12. 17.
경기도 고양, 독립장(1962)

 

 

(자료제공: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  ☎ 044-202-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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