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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의 독립운동가 채상덕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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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7  17: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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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의 독립운동가 채상덕 선생

   
 

(자료제공: 국가보훈처 공훈관리과  ☎ 044-202-5771)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채상덕(蔡相德, 1862~1925) 선생을 2017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황해도 출생으로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통군부 총장, 대한통의부 부총장, 의군부 총장을 역임하며 만주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개항을 전후한 시기부터 위정척사론을 펼치며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온 힘을 쏟았던 면암 최익현이 1906년 전라북도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합류하여 의진 구성에 매진하였다.
1910년대에 독립의군부가 와해되자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압록강을 넘어 남만주로 망명하였고, 1922년 대한통군부 총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대한통의부의 부총장으로 선임되어 이주한인사회를 복원하고 만주 한인의 삶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통의부 내에서 이념과 노선의 갈등이 발생했고, 복벽주의 계열 인사들은 1923년 통의부를 이탈하여 대한의군부를 조직했고, 선생은 대한의군부의 총재로 추대되었다. 
1923년 여름 중국 남만주 화전현에서 독립운동 지도자 58명과 함께 만주독립운동계의 통일과 진로에 대해 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에서는 남북만주 각 단체와 군사기관을 통합한 하나의 통일체를 구성하는 문제 등이 논의되었고, 회의의 결과로 독립운동계를 총망라한 ‘만몽신당’의 조직이 편제되었다. 이 거대 조직에서 선생은 비서라는 중책을 맡게 된다. 
한편 1924년 항일무장투쟁을 주된 노선으로 하는 참의부가 성립되자 선생은 자신의 제자와 부하들을 참의부에 가입시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그러나 1925년 3월 참의부의 회의장소를 밀정 이죽파가 일제의 초산경찰대에 밀고하여 일본경찰이 이곳을 기습공격하였고, 많은 참의부원들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채상덕은 비통함에 젖어 제자 이수홍에게 독립군이 되어 자신의 의지를 이어 줄 것을 당부하고 “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살아있을 면목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는 1995년 채상덕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채상덕 선생 
蔡相德

1962 ~ 1925
황해도, 독립장(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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