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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의 독립운동가 이근주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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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7  17: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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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의 독립운동가 이근주 선생

   
이근주 선생

(자료제공: 국가보훈처 공훈관리과  ☎ 044-202-5771)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근주(李根周, 1860.2.3.~1910.9.23.) 선생을 2017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1860년 홍성의 사족집안에서 태어나 유학을 업으로 한 선비였다. 부친에게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이후 독학으로 학문을 이루었다. 특히 맹자의 웅어장(熊魚章)을 좋아하여 사생취의 정신을 숭상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일어난 홍주의병에 김복한?안병찬 등과 함께 참여하였으며, 김복한 등 주도자들이 체포된 뒤에는 조의현 등과 재기를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울분에 쌓여 천식과 다리가 마비되는 병을 얻었다.
선생은 을미의병이후 홍주의병 기록인「을미록」,「절의가」 등을 비롯한 여러 항일사적을 편찬하였다. 「을미록」은 그가 을미의병 이후 1895년 홍주의병의 과정을 기록한 글이며, 「절의가」는 삼강오륜을 지키고 인수(人獸)와 화이(華夷)를 구별하는 나라가 매군매국(賣君賣國)의 무리에 의해 더럽혀짐을 한탄하였다. 이 외에도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자결한 민영환의 순국을 기린 혈죽시(血竹詩)와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올리고 풀려난 직후인 1906년 순절한 홍주의병장 이설에 대한 만사에서 애국지사들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선생은 1910년 국치의 비보를 접하자 자결로 항거하였다. 선생은 큰형의 환갑이 지난 뒤에 부모의 묘에 가서 제사를 올리고 자결하였는데, 국운이 다하였으며, 성인의 도가 끊어져 살아갈 마음이 없다고 하였다. 또한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긴 것은 너무나 분통하고 부끄럽고, 또 싫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선생의 죽음은 김복한이 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의로움을 취했으며 인을 이루었다(‘取義成仁’) 할 것이다. 따라서 선생의 순국은 개인의 희생에 그치지 않고 후학들에게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고 항일투쟁을 고취한 민족운동의 한 방략으로 후세에 기리 전해질 것이다.
정부는 1991년 이근주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근주 선생 
李根周

1860.2.3. ~ 1910.9.23.
충남 홍성, 애국장(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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