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 들여 바다가 된다. 

유 영 태 교수

/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기계시스템·미래자동차공학부

일반적으로 새해가 밝아오면 다가 올 1 년에 대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지나간 한 해 동안의 일들을 정리하며 잊을 건 잊고, 간직할 것은 아름다운 추억의 이름으로 기억의 창고에 간직한다. 올 해도 어김없어 마지막 날짜를 향해 숨 가쁘게 내달리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뜻은 한 살 더 먹어 간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그런데 경험에 의하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포용력과 이해력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습관적으로 노여움과 서운함을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나이 들면서 어린애가 되기 때문이라고 쉽게 말한다. 그렇다면 왜 나이 들면서 어린애와 같이 잘 토라지고 쉽게 삐지는 것일까?
 이와 같은 현상을 단순하게 생각 해 보면 나이 들면서 기운이 떨어지니까 참을 힘도 함께 떨어져 쉽게 화를 내는 것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세상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이런 일 저런 일을 다 경험했기 때문에 포용력과 이해의 폭도 커질 것 같은 데 현실은 정 반대 현상으로 나타나니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옹졸해지고 편협한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보면 신체의 기운이 떨어져 참을 힘도 함께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일면 맞는 말 일 수 있다. 그러나 꼭 참을 힘이 떨어져 옹졸하게 까지 보이면서 버럭 화를 낼까?  
  필자는 다른 생각이다. 이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본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은혜를 입으면 흐르는 물위에 쓰고,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바위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은혜는 갚으려면 부담이 되고, 복수하는 것은 통쾌하기 때문에 원수는 반드시 갚으려 하나 은혜 갚는 것은 부담스러워 한다. 그래서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고,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잊어버리지 않는다. 세상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지만 도움 받았던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서운한 감정은 바위에 새기기 때문에 서운한 것만 선명하고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바위에 새긴 서운한 감정이 마음의 바위에 촘촘히 새겨지게 된다. 
 특히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서운한 감정이 차곡차곡 마음의 바위에 새겨지게 된다. 이런 감정이 쌓이고 쌓이면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에도 과거에 쌓였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버럭 화를 내게 된다. 처음 하는 실수를 보고 버럭 화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수를 반복 했을 때 과거의 실수가 쌓여 버럭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더 이상 실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나이 들어감에 쌓인 서운한 감정은 저절로 해소 되지 않는다. 감정을 순화하여 받아들이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하는 부분이다. 한 걸음 물러나서 생각해 보면 화낼 일도 아닌 경우가 많다.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음식물도 몸이 받아들이면 영양분이 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면 토하거나 병이 생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이해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면 병이되고 스트레스가 되어 옹졸해 보이기까지 한다. 마음이 옹졸하다는 말과 반대 되는 말은 마음이 바다와 같다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넓은 사람을 바다와 같다고 한다. 포용력이 대단히 크다는 이야기이다. 바다는 이 세상의 모든 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 들여 바다가 된다. 바다로 들어오는 물이 오염되었든, 깨끗한 물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인다. 그래도 바다는 고유한 색깔과 맛을 잃지 않는다. 그게 바다이다. 바다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몇날 며칠 비가 와도 그 물을 다 받아들이지만 바다의 수위는 변하지 않는다. 다 받아 들여 잔잔하고 고요한 모습을 바다는 하고 있다. 그런 바다 속에는 수 많은 생물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이기 때문이다. 바다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많은 생물들이 서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4% 정도 밖에 안 되는 소금기 때문이다. 이 적은 규모의 소금성분이 바다의 모든 생물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96% 정도의 물을 정화하기 때문이다. 4% 정도 밖에 안 되는 짠 성분은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이 게으르다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몫을 묵묵히 할 뿐이다. 
  그리고 바다의 규모가 큰 이유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낮은 곳에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제 잘난 체 하고 높은 곳에 있으려 하면 받아들일 수 없다. 세월과 함께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면서 힘 써야 할 것은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진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세상 바다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온 세상을 발 아래로 내려 다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 살 수는 없다. 사람 사는 곳은 높은 산꼭대기가 아니라 낮은 평원이다. 세상 사람이 함께 사는 곳은 드높은 산 정상이 아니라 바다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평원이다.  
 이제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절이 또 되었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고마운 사람보다 서운한 사람에 대한 생각이 더 선명하게 마음의 바위에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월을 흘려보내면서 서운한 것을 마음의 바위에 자꾸 새기면 작은 심적인 충격에도 버럭 화를 내기 쉽다. 그러면 점점 외톨이가 되어간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 그런다고 비난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마음의 바위에 새긴 서운한 감정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저절로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지우려고 많은 노력을 해야 지워진다. 사람의 본성이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손해 입은 것은 좀처럼 잊지 않는 성품이 있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지우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점점 속 좁은 노인으로 변해간다. 나이가 많아 늙은이가 아니라 속이 좁아지면 늙은이가 된다. 나이 들어가면서 이해심이 넓어지고 포용력이 커지면 신선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신선 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속 좁은 어린애 같은 노인이 될 것인가 하는 선택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니면 배척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서 서운한 감정은 다 순화하여 녹이고, 다양한 것들을 받아들이는 습성으로 바다처럼 스스로 정화하며,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건강하게 살아 갈 수 있는 바다를 닮은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