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엽서>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방에서 홀로
찻잔을 기울이는 건 아니겠지요

가을이 왔습니다
작년에 당신과 함께 걷던 길
혼자 걷지는 마세요

가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에 우리
얼굴 한번 붉게 물들여 봐요

가을이 다 가고 있습니다
무관심은 죄악이래요
전화하면 망설이지 말고 받아주세요

가을이 끝나갑니다
힘들고 괴로웠던 일 
만나 얘기하며 세상사 잊어봅시다.

<고통의 빛남>

유리잔이 깨어졌다
깨어진 파편들이
빛에 부딪치며 빛난다
 
부서진 것들은
때론 송곳이 되어
찌르며 아프게 하지만

깨어진 아픔들이 모여
다시 우리를 
빛에 서게 한다

<풀꽃의 힘>

들풀은 학연, 지연, 혈연 없어도
세상 보는 눈길 촘촘하다

풀꽃 하나,
뿌리 없이 태어나 고향이 어디인지 모른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어디에든 싹을 틔우며 
진흙밭에 빠지거나 가시덤불에 찢기기도 한다

누구, 풀꽃의 이름 석자 몰라도
여기 시의 집에 뿌리내려
그리움과 기다림의 맺힘 풀어내는
핏빛 꽃송이 피워내고 있다. 

<칼의 노래>

가슴에 칼 하나 간직했네
녹슬지 않게 갈고 닦았네

푸르게 벼린 젊은 칼은
분노할 줄만 알았지 보듬을 줄 몰랐네

가까운 이의 가슴을 찌르거나
제 살을 베기도 했네

칼을 갈 줄만 알았지
칼집에 넣을 때와 뺄 때를 몰랐네

지금도 평생을 벼린 칼은 시대를 위한
목마름으로 노래 부르고 있네

- 지은경 시인 약력 -

월간신문예 발행인
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비평가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