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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유년의 파편
강미경(시인, 여행작가)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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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5  15: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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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유년의 파편

 

여행은 내 안에 나를 찾아 떠나는 작은 파랑새다. 낯선 곳에서 내 자신을 들여다보고, 낯선 풍경과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다시 담아오는 여정(旅程)은 언제나 설레게 마련이다. 그래서, 기회가 되는대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게 우리 모두의 바램일 것이다. 열흘 동안 고생했던 편집 원고뭉치를 마무리하여 출판사에 넘긴 후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마음을 쉬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으로 날아갔다. 많은 선배 문인들이 유학을 했던 곳이기에 꼭 그 나라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은 나라였다. 공항에서 직행 기차(라피트)를 타고 난바로 향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호텔에서 길을 나서서 신호등을 건너니 신사이바시 도톤보리 거리가 펼쳐졌다. 불빛이 번쩍이는 호화로운 상점들과 2.5km의 도톤보리 하천이 신사이바시 중앙을 흐른다.

서울의 청계천 주변의 풍광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나, 도톤보리천은 운하처럼 만들어졌고 유람선이 다닌다.

이곳 신사이바시는 천하의 부엌이라고 불릴만하게 다채로운 온갖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그 중에 금룡(金龍 )라면 집이 눈에 뜨이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일본 라면집이라고 한다. 다다미 위에서 빨간색 평상을 펴 놓고 라면에 부추를 얹어 먹는 모습이 특이하게 눈길을 끌었다. 우리 일행이 저녁 식사로 먹은 굴 요리와 꽃게 된장(간이 미소)이 얹어진 김밥과 새우튀김, 참치회와 소라찜 등...... 그 중에 꽃게 된장은 우리나라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이한 식재료다. 다음 일본 여행 때 꼭 다시 먹어보고 싶은 맛! 꽤 넓은 음식점도 있었지만,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술집도 드문드문 눈에 뜨이었다. 휘황찬란한 오사카 번화가를 밤늦게까지 걷다가 번쩍이는 상점들을 뒤로 하고 일행은 호텔에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지하철 미도스 지선을 타고 우메다역으로 갔다. 교토방향 다까스끼행 고속 전차를 타고 교토로 이동했다. 기차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일본의 집들과 야트막한 산야를 구경하면서 이국(異國)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청수사는 절벽 위에 지어진 절이다. 청수사로 올라가는 산넨자커 거리라는 낮은 언덕길을 걷다 보니, 마치 우리나라 인사동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일본의 전통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일본 떡과 차방, 음식점들이 언덕 양 옆에 줄지어 있었다. 그곳에는 기모노(일본 전통 의상) 차림의 젊은 아가씨들의 화려한 모습도 눈에 뜨이었다. 그 처자들 중에 가장 화사한 진분홍 꽃무늬의 예쁜 아가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아가씨가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 여행에서 가장 불편한 점이 일본인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 여행에서도 그렇더니...... 일본 기모노 물결 속에 끼어서 나는 이방의 작은 나룻배로 표류는 기분이 들었다.

교토는 서기 794년부터 1868년까지 1000여 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고 한다. 교토의 오타와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淸水)를 상징하는 이 절은 백제계 다무라마로 장군이 지었다고 한다. 오노타기폭포에서 떨어지는 세 갈래의 물이 지혜, 사랑, 장수의 세 가지 소원을 이뤄준다고 하여 일본인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인 내게는 그런 것들이 별로 감흥이 되어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절벽위에 목조로 지어진 고찰이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었다고 하니, 그저 특이할 뿐이었다. 깎아지른 절벽 위로 돌출되어 있는 툇마루에서 내려다 본 교토 시내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목조로 사찰을 지으면서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도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향을 꽂으며 연기를 쏘이려고 커다란 향로에 빙 둘러서 있는 일본인들이 신기해 보일 뿐이었다. 청수사를 한 바퀴 돌아서 언덕을 내려오는데 어린애 얼굴만한 돌부처들이 빨간 턱받이로 보이는 헝겊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기이한 풍경을 보는 것이 외국 여행의 묘미이리라. 언덕을 내려와 보니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인 듯한 연못 물빛이 햇살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절 입구를 빠져 나오자 다시 오늘날의 일본을 보는 것 같다. 기념품 가게 중에 한 곳-화려한 수를 놓아 만든 가방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 안에 들어갈까 말까한 작은 크기의 손 주머니에도 수를 놓아 만들어 팔고 있는 것을 보며, ‘일본인들이 섬세하다고 하더니 이렇게까지! ’라는 생각을 했다. 은사(恩師)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청수사에서 강미경 시인

점심 식사를 위해 만중(萬重)이라는 일본 정식 집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한참 만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각자 앞에 나온 검은색 도시락 쟁반 위에는 생선회와 새우, 야채 튀김, 떡, 계란말이, 연근, 물김치, 장아찌 등의 다양한 음식이 담겨져 나왔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나 될까? 소꿉장 만한 아주 작은 도자기 그릇에 음식이 담겨져 나왔다. 그릇도 화려했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다양한 음식을 어떻게 다 먹을 수 있을까했지만, 그 많은 음식을 다 먹어치웠다. 이렇게 많이 먹다니? 하지만, 한국에서 먹던 것에 비하면 그리 많은 양도 아닌 것 같았다. 워낙 조금씩 담겨져 있어서 음식 종류만 많을 뿐이었지도 모른다.

우리 한국은 반찬을 큰 그릇에 담아 놓고 한 상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여러 번 젓가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음식이 남으면 버리거나 음식을 조리했던 남비 속에 다시 쏟아 붓는다. 음식에 침이 섞이게 될 것이고, 남은 음식은 곧 상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일본인들의 식문화가 훨씬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설렁탕 한 그릇을 시키더라도 김치와 깍두기 정도는 몇 번을 더 청해서 먹을 수 있다. 때로는 국물을 더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주는 것이 인정이다. 그런데, 이건 또 왠 일인가? 일본은 작은 소꿉장 그릇에 담겼던 장아찌 한 조각도 더 청할 수가 없다. 그 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도, 그들이 식사 때마다 조금씩 담아 각자의 식판에 놓고 먹는 풍습은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그 소꿉장 같은 도자기로 된 작은 그릇을 여러 개 사서 한국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식사 때마다 나는 소꿉 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식탁을 차리곤 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묘한 기분에 휩싸여 부엌에 들어가는 게 꽤 재미있어졌다. 내가 어렸을 때는 다 쓴 화장품 용기을 갖고 동네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하곤 했다. 풀을 뜯어다 반찬을 만들기도 하고, 흙으로 동그랗게 떡도 빚고..... 어릴적 소꿉놀이에 대한 추억이 내 기억 창고 깊숙한 곳에서 다시 살아났다.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의 파편! 유년에 대한 회귀본능이 누구에게나 있다더니......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부엌에 서는 게 행복해졌다. 이번 일본 여행에 큰 소득 중에 하나이리라.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다시 담아오는 것이 여행의 참 맛이리라.

 

불현듯, 어릴 때 할머니가 군불 지펴 옹기에 끓여주셨던 된장찌개가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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