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채색기법을 통한 한국화 신영역을 개척하다.
‘심청전’에 이어..2019년 5월, ‘춘향전’ 전시회 계획

청의 부활, 비단에 채색, 장지 콜라쥬, 134x134cm, 2017

한국 고전 문학 작품들을 대중들에게 보다 쉽고 마음에 와닿을 수 있도록 현대적 사상을 반영해 테마를 재해석하고 승화시켜온 전영미 화가.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사자성어가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인 법고창신은 논어에 나오는 온고지신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근본(根本)을 잃지 않되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옛것에만 매달리다 보면 발전이 없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만 치우치다보면 근본이 없는 정체불명의 결과물이 나올 위험이 크다. 전영미 작가는 한국 문화의 정체성 탐구를 통해 한국화와 한국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한국 채색화의 전통적인 기법과 원리에 기반을 두고 얇은 비단에 세필로 물감을 칠하고 말리기를 수 십 회 반복하는 비단채색화 기법은 묘사가 정교하며 색감이 맑고 은은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순수함과 평화로움, 그리고 따스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다양한 작품들을 그려온 전영미 작가. 특히 지난 10월 경인미술관에서 한국 채색화와 함께 만나는 심청전 ‘청의 마음’을 통해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바 있는 그녀에게 작품에 대한 철학과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그리고 계획 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황후 심청, 비단에 채색, 73x51cm, 2017

한국화가의 눈으로 ‘효녀 심청’ 등 고전을 재해석 
오랜 시간 동안 해외에서 공부한 전영미 화가는 지난 2008년 귀국,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며 국내 대중들과 소통을 이어왔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 한국적인 것이 그리웠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귀국한 후에 한국화 작업을 통해 그 답을 찾고자 몰두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전통적이고 독특한 정서를 표현해온 전 작가는 잊혀져가는 우리의 고전의 아름다운 가치들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우리 고전을 재해석한 연작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 첫 번째 작품으로 심청전을 택한 전영미 작가는 주인공인 소녀 심청을 효녀라는 유교적 가치관의 굴레에서 벗어나 크고 순수한 사랑을 지닌 소녀로 보여주고자 했다. “심청이 효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인당수에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가까운 타인일 뿐입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단순한 효도를 한참 넘어서는 위대하고 순수한 사랑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 사랑이 결국 자신과 많은 이들을 구원하는 놀라운 기적을 가져온 것이라 봅니다.”

봉숭아 연정, 비단에 채색, 46x53cm, 2015

심청전은 우리 고전 중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아온 소설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영화나 연극, 창극, 무용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전 작가는 한국화가의 눈으로 우리 고전을 다시 읽어보고 그 속에 담겨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아름다운 가치들을 그림으로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전 작가는 심청전을 읽으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깊은 공감을 느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셔서 아버지의 병 낫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매일 새벽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어린 청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내내 심청의 마음을 따라가며 느낀 다양한 감정들을 작품으로 표현하느라 심청과 함께 울고 웃었다는 전 작가는 스스로에게 나는 누군가를 죽을 만큼 사랑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한 소녀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기적을 현대에 맞게 표현해낸 작가의 작품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각박해진 우리 사회에 치유와 감동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전 작가는 심청의 이야기를 통해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는 법을 함께 배워나가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책 읽는 소녀, 비단에 채색, 46x53cm, 2015

진심을 담아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
전영미 작가의 초기 작품들은 작고 여리고 사랑스러운 소재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그런 소재들을 통해 그녀는 모든 생명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세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복을 입은 소녀 연작을 그릴 때에도 소녀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맑고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명상과 기도를 한다. 그녀의 첫 개인전 강아지 연작 중에서 ‘친구의 선물’이라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러한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귀여운 강아지와 다람쥐가 함께 낙엽 위에서 마주보며 작은 선물을 건네는 모습은 모든 만물이 친구로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온화하고 사랑스럽게 담아냈다.  “저는 관객들이 제 작품들을 보면서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목표를 위해서 작업을 할 때도 그리는 대상과 관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저는 어린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유익한 작품들을 그리고 싶습니다.” 대학에서 아동학과 교육학을 공부한 전 작가는 화가로서 개인적인 표현의 자유보다 사회적 책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보는 이들의 마음 속에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그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한다. 한국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아직 부족한 점이 아쉽다고 말하면서 작가의 입장에서 앞으로 우리 고유의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재해석하여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인 작품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 해외 전시의 경험을 토대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글로벌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전통문화와 관련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좀 더 노력한다면 K-Pop 뿐만 아니라 K-Classic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영미  한국화가 / 철학박사

2019년 단오 시기 발맞춰 춘향전 전시회 계획 밝혀
향후 계획에 대해선 2019년 5월 단오절에 즈음하여 ‘춘향전’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5/29-6/4, 인사아트스페이스 본관). 심청전과 함께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우리 고전 춘향전에 대한 새로운 작업이 어떻게 펼쳐질지 벌써부터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영미 작가는 열녀 춘향이라는 전통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저항했던 소녀 춘향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보다 보편적이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춘향전을 재해석하기 위해 이미 각종 자료 수집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전 작가는 여러 가지 다양하고 새로운 기법들을 통해 춘향의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말했다. 내년 봄에 재탄생할 춘향전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기대가 크다. 

전영미 작가는 서울대, 이화여자대학원, 미시간 주립대 디지털미디어아트대학원 등을 졸업하고 뉴질랜드 빅토리아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이화여대, 장신대 등에서 강의하며 국내외 다수의 개인전과 초대전, 단체전과 여러 국제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주요 수상으로는 2015 KPAM 대한민국미술제 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이 있으며, 삼성 등 국내외 기업들과도 협업하며 현재 전업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