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순 시인

붉은 모시바람

바람이 날고 있다

부서져 내리는 햇살 사이로 
알랑알랑 날고 있는
붉은 모시적삼 입은 바람 날개

한낮을 위해 아지랑이를 몰고 오는 
저 우아한 몸짓
벌건 대낮에 꽃들이 
생식기를 내놓고 몸 달군다

저 몸짓으로
바위보다 무거운 사내를 들어 올린다
마음을 들었다 놨다
요염을 무성하게 키운다

투명한 몸짓에 
꽃잎이 입술을 흔드는 시간
촉각을 곤두세우고 꽃술에 앉아 
소리를 다 비우고가는 바람

방울 촘촘히 박힌 허공을 진맥하고 있다

문배마을

숲길이 올라간다
수십 마리 아기나비 떼가 아리아리 반긴다
호수엔 어린 시절이 빠져있다 
뽕나무에서 검붉은 그 혀를 본다

흘러간 팝송을 불러오고
술은 비틀거리고
최교수의 손이 부르는 노래가 
선율 바람타고 문배마을 휘감는다

능선 타고 내려온 햇살 등지고
계단들만 주름을 폈다 오므렸다 길을 내려오고 있다
구곡 폭포는 쉬지 않고 여름을 뛰어내린다

6월을 불러 세운 
꿈, 끼, 꾀, 깡, 꾼, 끈, 꼴, 깔, 끝
쌍기억 아홉가지
구곡혼(九曲魂)이 따라온다

폭포 줄기를 끊어서 가방에 넣었다
양수리를 지나 한강이 있는 집까지 가져왔다
잘라온 물줄기가 끈이 된다
혈육의 끈
인연의 끈
아슬아슬한 곡예가 있는 남사당패의 끈

짧은 끈으로 하루를 묶고 있다

잠그다

비가 
온종일 내린다

사람의 
발목을 잠그고

풀들의 
무릎을 잠그고

새들의 
종아리를 잠그고 

벌레의 
울음소리를 잠근다

햇살을 잠그고
달빛을 잠그고
별빛을 잠근다

잎들의 숨소리를 잠그고

외출을 잠근다

달빛 내리다

봉분에 내린 달빛

어머니 이불

꿈속 빛,
그
림
자

임정순 시인

충남 공주출생
자유문학 등임
아태문인협회 사무차장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차장
한국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