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이 오면

신수희

올해도 아카시아꽃이 하얗게 핀 6월이되었다. 못자리 물 논에는 청개구리가 울어대고 보이는 곳마다 푸른 신록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어느새 앞산이 파랗게 우거지는 6월달이 다가오면 보리논이 노랗게 익어가던 60년전 6'25전쟁속의 아이가 되어 밤새도록 대포소리가 끊이지 않고 시끄럽게 들리던 어릴 적 생각을 해보곤 한다. 조용하던 동네 하늘에는 b29라는 비행기들이 떼를 지어 포탄을 터트렸고 동네밖에는 군인들이 쏘아대는 따발총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줄지어 굴러가는 탱크 소리 총을 맨 수많은 어린 군인들의 군화 소리는 한반도를 모두다 점령 당하고 대한민국의 마지막 고지인 마산 진동고개를 사수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던 그날이었던걸로 기억된다. 그날 밤 죽음을 각오한 전사들이 아니였다면 하루아침에 적화 될수있었던 아슬아슬한 순간을 모면한 국운이 있는 날이였기도 했다.

 신작로마다 집집마다 피난민들로 아수라장이된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함락되지 않았던 거제도 섬 드몰이라는 남쪽 선착장에 피란민들과 패잔병을 하루종일 실어 날라 주었고 띄엄띄엄 떨어져 살던 조용한 거제도 산골 초가 동네 사람들은 비라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처마밑이나 헛간이나 똥두간이라도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둥지를 만들어 주는 인정이 있었다. 아이를 등허리에 엎고 보퉁이를 든사람, 피를 흘리며 다리를 절뚝거리는 사람, 쓰러져서 못 일어서는 사람, 가지각색의 아이와 어른, 할아버지 할머니를 요즈음 흔히 말하는 스트레스란 말도 힐링이란 말을 아예 모른체 내 가족처럼 보살피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현관 벨이 울리면 어떤 사람인가 사람이 무서워서 단숨에 문을 열어주지 못하고 저장되지 않는 친지의 안부전화까지 불신과 불안감에 거절하는 지금의 우리였다면 그 당시의 많은 피난민들은 얼마나 살아 남아서 이 나라를 지키고 발전 시켰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어느 날 어느 친구가 찾아와서 하던 말이 생각난다. 열려진 대문 앞에는 동네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옆집 사람이 아파 누우면 음식을 만들어서 달려가던 지난 날들이 어제 같은데 언제부터 나라를 믿지 못하고, 자식을 믿지 못하고 친구를 믿지 못하고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느냐며 투정을 하더니만 세상이 너무 무섭다고 푸념을 하고 돌아갔다. 소박하고 믿음이 가던 그때가 어느새 그리움으로 내 앞에 다가온다.

무엇이던지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면 사람은 거칠어지고 무디어 질 수밖에 없다. 맑은 바람이 지나갈 여백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함께하는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저마다 자기 몫을 더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기 때문에 갈등과 모순과 비리로 얽혀 한마디로 말하면 개인이나 집단이 정서가 불안정해서 삶의 진실과 그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서로 관계를 이루면서 살지 않으면 사회적인 존재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이 떨어져서 살고 있어도 어느 한 순간도 세상 만물과 분리되면 않되는 이치인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눈멀어왔고 귀먹어 왔는지 냉정하게 되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 남의 얼굴만 쳐다보다가 자신의 얼굴을 까맣게 잊어 버리지 않았는지 반성 해 보아야 한다. 남의 말에 팔리지 말고 자기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어야 한다. 자기 몫을 살고 있는 우리는 저마다 오던 길을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이 해야 할 도리와 의무와 책임을 다하여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서 맑은 가난과 간소함으로 자신의 정신적 궁핍을 바로 세우고 소유의 비좁은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 믿음을 주던 청빈의 시절로 되돌아가야 우리의 마음은 6월의 푸른 신록처럼 풍요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