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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사람이 신(神)이다
유영태 교수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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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5  11: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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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사람이 신(神)이다.  

 

유영태 교수/조선대학교 공과대학 기계시스템·자동차공학부

 

 

 
옛날부터 따뜻하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양에 과거시험을 보러가거나, 낭군이 먼 길을 떠나면 어머니와 아내는 이른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하늘님에게 정성껏 소원을 빌었다는 내용이다. 가족의 인연으로 맺어진 소중한 사람의 소원을 하늘님은 틀림없이 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늘은 구름을 만들어 비를 내리게도 하고, 태양도 보듬어 안아 밝은 빛과 따사로움을 선물하기도 한다. 나쁜 사람을 천둥으로 호령하기도 하고 거센 바람으로 겁을 주기도 했다.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며 타이르기도 했다. 소원을 들어주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하는 신이 있다면 그건 당연히 하늘님이었다. 
 하늘님은 항상 우리를 보살펴주기 때문에 어려운 일 당해도 솟아날 구멍은 반드시 마련해 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공경의 대상으로 하늘만한 것이 없었다. 우리에게 만일 하늘처럼 소중한 대상이 있다면 그건 당연히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은 하늘이 곧 사람이란 동학사상을 태동하게 만들었다. 즉 인내천(人乃天) 사상이다. 사람이 하늘이기 때문에 사람을 모든 가치와 존경의 중심에 두었다. 백성이 하늘이었고, 부모님이 하늘이었고, 나라님이 하늘이었고, 이웃이 하늘이었다. 
  우리 문화의 설화 속에는 신이 된 사람들도 있다. 바로 신선(神仙)이다. 도량이 넓고 외모가 수려하면 마치 신선같다고 말한다. 마음을 수련하고 정진하면 하늘과 같은 신이 될 수 있고 생각한 거다. 이런 생각이 때론 부작용을 만들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후고구려 때 궁예다. 궁예는 자신을 미륵불이라 했다. 사실 궁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미륵불이라고 믿으면 미륵불이 된다. 다만 궁예에게 가장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다면 자신만 미륵불이라고 생각한 점이다. 모든 사람이 미륵불이란 생각을 하지 못한 거다. 궁예 자신만 미륵불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미륵불이란 생각을 했다면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발상지인 원불교에는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이란 말이 있다. 모든 곳에 부처가 있어 섬기고 깨우친 사람을 섬긴다는 뜻이다. 주위에 함께 하는 사람 모두가 부처란 말이다. 가까이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부처님 모시듯 받들고 존경하면 모두 부처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흙으로 만들어 그 코에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나 많은 종교에서 최고의 경배를 받아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신이다. 외모만 사람이 아니라 마음 씀씀이도 사람이다. 결국 사람이 신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신이기 때문에 사람을 경망스럽게 대하거나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하면 하늘이 벌을 내리듯 재앙도 사람이 불러온다. 행복도 주고 재앙도 주는 신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려 깊은 행동을 하거나 발생 할 수도 있었던 재앙을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을 보면 신통하다고 말한다. 신과 서로 소통한다는 뜻일 게다. 모든 행복과 재앙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이고 보면 결국 사람이 신과 다름없다. 특히 가까운 곳에 함께 있는 사람이 행복을 주기도 하고 재앙을 내리기도 하는 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세상을 떠나면 명당에 매장하려는 풍습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신들이 사는 조상신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상신이 사는 신전이 명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죽어서도 조상신이 후손들을 잘 보살펴 줄 것이라는 풍습에서 비롯된 문화다. 성묘도 가고 제사도 지내는 것은 조상신에 대한 일종의 예절로 생각한다. 일부 종교에서는 이런 행위를 우상숭배라고 하고 매우 꺼리는 면도 있지만 우리나라 선조들은 사람이 죽는 것은 거추장스런 육체의 탈은 벗어 던지고 영혼은 신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살아있을 때 모습 그대로 마음속에 살아 있다. 육체의 탈을 쓰고 있는 신과 육체의 탈을 벗어버린 신으로 구분할 뿐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사람과 자연을 한 몸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여러 생명체들과 조화롭게 사는 것이 올바로 사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은 사람이 어울려 사는 신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으로 인하여 자연은 미래 세대에게서 빌려온 신전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잘 보관하고 관리했다가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을 믿는 사람은 신전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과 같이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일반적으로 변화무쌍한 변화를 보면 신의 조화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신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 했다. 돌이켜 보면 신의 조화란 것들을 사람들이 만들고 발명하며 살았다는데도 말이다. 신이나 가능했을 일들을 여러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 신출귀몰(神出鬼沒) 할 일들을 하며 살았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의 집단지성의 결과였을 것이다. 불과 몇 백 년 전만 해도 부산에서 한양에 갈 때 몇 날 며칠 걸렸다. 요즘에는 아침에 출발해서 서울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부산에 다시 돌아와도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세상으로 바꾼 것이 집단지성의 결과다.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신이나 할 수 있는 일을 누구나 하면서 산다. 돌이켜 보면 우리 모두는 신이 되어 신들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옛날부터 신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은 백성을 으뜸으로 생각했다. 신이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백성을 신처럼 받들면서 어려운 일도 너끈히 해결하며 문명사가 발전했다. 이와 반대로 사람을 함부로 대할 경우 재앙이 되어 고초를 겪었던 경험들이 역사 속에는 무수히 많다. 사람에 따라 때로는 지나치게 예민하기도 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덕스러움도 있지만 서로 공감하려고 노력하며 신과 이야기 하듯 대화 하는 사이가 사람관계다. 투명하고 너무 가늘어 잘 보이지는 않는 거미줄처럼 끈끈하게 연결된 공감의 영역에서 생각을 공유하며 사는 공동체가 사람 사는 세상이다. 작으면 작은 데로 크면 큰 데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연결망에서 누군가의 미세한 흔들림만 있어도 그 흔들림을 신비한 방법으로 서로 주고받는다. 사랑과 희망이 마음속에 살고 있는 한 사람과 신은 동일체이다. 신은 사랑과 희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과 희망을 자양분으로 살아간다. 절망은 희망을 버린 사람에게만 오는 질병이다. 모든 것이 믿는 데로 이루어진다는 희망이 우리를 절망하지 않게 한다. 믿음이란 바라는 것에 대한 실상이란 신념이 우리를 신처럼 살게 한다. 현제 나의 위치는 가깝게 지내는 친구 5명을 평균한 가치 만큼인 것처럼 사람이 신이기 때문에 신과 함께 어울려 살았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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