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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분의 진실을 남겨 놓을 수 있어야 정다움이 쌓인다유영태 교수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기계시스템·자동차공학부
유영태 교수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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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2  16: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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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분의 진실을 남겨 놓을 수 있어야 정다움이 쌓인다.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만남 속에서 매우 다양한 생각으로 각자 원칙에 따라 삶의 방식을 꾸려간다. 삶의 형태가 다양한 이유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이 서로 다른 만큼 대화 중 가치관의 충돌로 인한 오해가 발생 하지 않도록 말을 아껴야 할 경우가 있다. 진실이라고 해도 모두 말하지 않고 여분으로 남겨두어야 할 경우다. 진실을 전부 다 말해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면 남겨두어도 괜찮을 때가 종종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에 대한 가치는 필요 할 때 스스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실의 속성 때문에 진실을 성급하게 말하기보다 여분으로 남겨두는 것이 서로의 우호적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경우다. 추운 겨울 동토의 땅에도 봄의 시계 초침이 체칵체칵 다가와 적절한 때에 이르면 새싹이 두꺼운 대지를 뚫고 나오듯이 적절한 시기가 되면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진실은 여분으로 남겨 두어도 괜찮다. 대개 사람은 자신만 습득한 진기한 정보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것을 혼자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닐 수 있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생기도 하고, 커다란 바위를 붙들고 물속에 앉아 있는 것처럼 답답할 수도 있다. 때론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도 있다. 그래서 진실을 여분으로 남겨두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여분의 진실과 관련하여 큰일을 하는 사람은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말도 들으며 자랐다.   
 개인관계에서 진실을 여분으로 간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소중한 사람과의 믿음과 신뢰에 상처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출발한다. 진실을 전부 말해서 상대방이 실망하거나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부담스런 진실의 여분을 자신의 몫으로 껴안으며 불편함을 보듬어 안아버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진실의 속성 때문에 나타난 진실과 들어나지 않은 여분의 진실을 헤아릴 수 있을 때 잔잔하고 애틋한 정이 두터워진다. 서로 신뢰한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사람사이에도 의견충돌이 생길 수 있다. 감정이 격해져도 적당한 중간지점에서 하고 싶은 말을 여분으로 남겨두면 후회할 일이 줄어든다. 말다툼은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에서 출발하는 데 서운함을 너머 원망이 쌓이면서 감정이 격해지면서 건너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커다란 흉터로 남을 수 있다. 경계선에서 멈추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상처다.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분으로 남겨둬야 했을 경우이다.    
 여분의 진실은 귀로만 듣거나 눈으로 보아서는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영역이다.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울림으로 가슴이 들리게 하는 영역이다. 심오한 진정성은 그냥 듣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꽃이 웃는 소리도 영혼의 흔들림으로 들으면 들릴 것이다.     특히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할 사람들 사이에는 여분의 진실이 상호간에 덕(德)을 차곡차곡 쌓아가게 만든다. 여분의 진실을 들을 수 있어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덕이란 것도 알고 보면 마음을 얻는 행위이다. 즉 득(得) 심(心)이다.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들을 수 있어야 여분의 진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을 여분으로 남겨 둘 때 잔잔한 감동이 물결처럼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해버리면 감동이 줄어들어 은은한 향기처럼 멀리 전달되지 못 할 경우도 있다.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벗이란 뜻으로 지음(知音)이란 고사가 있다. 춘수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의 우정에서 나온 말이다. 백아가 높은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거문고를 타면 옆에 듣고 있던 종자기가 ‘하늘을 치솟는 태산이 아른거리는구나!’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하루는 두 사람이 놀러갔다가 소나기를 만나 동굴로 피했다. 빗소리에 마음이 울적한 백아가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는 ‘빗소리가 구슬프구나!’라고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백아가 말하지 않고 거문고를 타면 친구인 종자기는 마음의 파동을 들은 것이다. 말하지 않은 여분의 마음이 공기를 타고 종자기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공명을 일으킨 것이다.
 모두가 백아와 종자기처럼 말하지 않아도 마음의 교감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서로 가깝게 지내며 아껴주어야 할 사이에도 기대감에 대한 실망감으로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 이것 때문에 마음에 내상을 입으면 말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지듯 말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실대로 전부 털어 놓으라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마음에 상처를 입어 격해진 마음에 제동이 걸리지 않아 나중에 후회하는 말까지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서로에게 크고 깊은 상처만 만들며 후회한다.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과 싸워서 승리하면 그 결과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싸워 굴복시키면 그 결과는 사랑하는 사람을 불구의 패잔병으로 만들어버린다. 소중하게 생각하며 다정다감하게 지내야 할 사람과 싸워 심각한 상처를 만들어 사랑의 장애인을 만들려고 다투는 사람은 없다. 중간지점에 멈춰 서서 진실의 일부는 여분으로 남겨 놓으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다. 
 진실은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드러나기 때문에 진실이다. 그래서 진실은 일부를 남겨두어도 해가 되지 않는다. 진실 때문에 생긴 고통은 시간이 흐르면서 추억이 된다. 당장은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지라도 세월의 강물 따라 흘러 지혜의 강이 되기도 한다. 고통의 치료약 중에 세월의 약만큼 만병통치약은 없다. 갈등의 치료약도 세월의 약이 으뜸이다. 여분의 진실과 세월의 약을 버무리면 삶이 훨씬 가볍고 여유로워진다.  
 삶의 멍에는 욕심에서 출발한다. 욕심을 비우고 또 비우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고 한다. 마음과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면 집착에 사로잡힌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는다. 욕심의 나머지를 싹뚝 잘라 마음의 여분으로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아도 베푸는 자는 부자이고, 아무리 많아도 받는 자는 부족한 사람이다. 베푸는 마음이 모두를 아름답게 한다. 사랑도, 용서도 자비도 베푸는 것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용서(forgive)가 아름다운 것은 누구를 위하여(for) 주는 행위(give)이기 때문이다. 공부하고 재산을 모으는 것도 베풀기 위한 것일 때 커다란 능력으로 성장된다. 베푸는 정도와 범위가 그 사람의 능력을 대변한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 생각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꾸면 베풀 곳이 눈에 보인다. 덕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면 시시비비를 철두철미하고 속 시원하게 끝까지 파 해쳐내야겠다고 덤비는 것이 아니다. 진실의 일부는 여분으로 잠시 내려놓은 것이 사랑을 나누는 지혜다. 진실에는 여분의 진실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면 여분의 진실은 세월의 보약과 함께 감동의 강물이 되어 서로를 감싸며 오래토록 잔잔하게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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