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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연구 40년, 불모지 대한민국에 커피 재배 꿈을 이뤄내다
박부건 기자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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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7  15: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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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연구 40년, 불모지 대한민국에 커피 재배 꿈을 이뤄내다.”

   
㈜한국커피나무  오흥석 박사 

     
              

한국에 커피가 들어온 시기는 대략 1890년대 경으로 130년이 지난 2020년 대한민국은 세계 커피소비국으로 손꼽힐만큼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커피를 즐겨 마시는 나라중 하나다. 한국인의 주당 커피 섭취량은 약 12회 정도로 김치와 쌀밥을 넘어서는 수치를 기록할 정도로 커피사랑이 뜨겁다. 커피전문점 또한 건물 하나 마다 있을 정도라는 우스개 소리가 현실화 정도로 해마다 커피전문점 창업 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렇듯 많은 소비를 하지만 정작 커피는 국내에서 자체 생산이 힘든 기호식품이다. 주재료인 원두를 생산해 내는 커피나무가 아열대 식물로써 겨울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국내 기후 특성상 재배가 불가능했기 때문. 과연 국내 조건에 맞는 커피나무 재배는 힘든 것일까? 이러한 반문으로 커피 연구에 몰두했던 ㈜한국커피나무 오흥석 박사는 불가능을 현실로 바꾸는 커피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대한민국의 현실에 맞는 커피나무 품종을 개발, 국내산 원두 생산의 길을 열어내며 주목을 받고 있어 화제다. 현대판 문익점이라고 불릴만큼 남다른 열정과 커피에 대한 끝없는 연구로 마침내 커피공화국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게 한 오흥석 박사를 <월간 한국인> 1월호에서 만나봤다.

   
 

한국 특성에 맞는 맞춤형 종자 개발, 커피재배국 입성 성공
 “한국의 커피나무는 하우스 제배라는 큰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추운 겨울이 있는 계절 특성상 노지에서 생산이 불가능하기에 하우스 재배라는 차선책을 선택하여 최상의 결실을 이뤄내는 것이지요.”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뿌리가 굵고 튼튼한 필요가 없어 나무에 오르지 않아도 쉽게 수확이 가능한 종자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커피나무 아라비카 잎은 잎 사이 간격이 20cm이지만 오 대표의 개량 커피는 보다 간격이 촘촘하여 몇 배 이상의 수확이 가능한 장점도 가지고 있다. 즉 뿌리가 깊지 않고 수확이 간편하며 저온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해 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실을 이뤄내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베트남 등 수많은 커피 생산국을 다니며 적절한 씨앗을 찾고자 노력해왔으나 사계절이 뚜렷한 국내 기후 여건속에 번번히 실패하였고, 마지막 희망으로 네팔에서 희말라야 산악팀과 합류 고산지대에서 커피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씨앗으로 도전도 해보았지만 역시 실패를 맛보고 말았다. 

주변에서는 “이건 될 수가 없다 이제 그만 포기하라.”는 만류의 말에 과연 이 길에 내가 가야할 길인가 스스로 반문하며 좌절을 겪기도 했던 오흥석 박사는 그럴수록 다시 마음을 잡고 나무에서 쪽잠을 자며 커피공부에 매진하였다. 마친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을까? 네팔에서 6개월 이상 상주하며 오랫동안 연구와 재배 공부를 해왔던 그는 조기발아를 위해 별도의 재배법만 연구한다면 한국의 커피 대량 생산도 가능할 것이라는 해답을 찾게 되었다. 이제 추운날씨에서도 자랄 수 있는 커피나무만 개발하면 된 것이다. 어느덧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는 오 대표는 국내 영농기술력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커피나무를 재배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교직 꿈을 포기하고 커피연구에만 매진, 끝없는 집념으로 결실 이뤄내
오랫동안 커피에 매달려온 오 박사는 사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삶을 살아왔었다. 경희대 체대를 졸업하고 한때 체육교사, 체육학 박사, 그리고 대학원에서 운동심리학과를 수료하며 체육인으로 삶을 살아왔지만 김영삼 대통령 재임시절 초대받은 조찬 식사 자리에서 모두가 한국의 차보다 커피를 즐겨찾는 모습에 대통령이 이렇게 즐겨먹는 커피를 우리도 재배할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라는 말에 뭔가 뇌리를 강하게 쳤다고 한다.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커피 연구에 매진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정부 지원으로 스코틀랜드 식품관련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본격적인 연구에 매달리게 된 것.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90여개국을 돌며 국내 적합품종 찾기에 돌입하였고 마침내 네팔의 고산지역에서 만델링이라는 저온에서도 버틸 수 있는 원두 품종을 찾아내는데 성공하였다. 덴마크 종자연구소에서 원두를 수입하여 묘목까지 키우는데 성공한 오흥석 대표. 국내에서 커피나무를 곳곳에 심으며 당당히 커피국가로써 자존심을 지켜낸 커피박사의 꿈을 이뤄냈다. 현재 평택, 장수, 논산, 천안 등에서 생산되고 있는 커피 나무는 모두 오대표의 작품들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2019년 한해 커피원두 수입만 15조원을 기록했다. 약 40만톤 분량이 수입된 것.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한국커피나무는 발아를 빨리 할 수 있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생산 수급조절이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온도차가 큰 특성을 살려 특유의 신맛을 자랑합니다. 이는 커피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특성입니다. 또한 동남아 커피는 1가지에 콩이 8~10개 불과하나 저희 커피나무는 20~24개의 다량의 콩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2~3개월 휴지기를 빼고는 일년내내 콩 생산이 가능한 것이지요. 엄청난 장점과 미래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묘목, 커피콩, 잎 등 커피나무에서 버릴 것이 없을만큼 전부 수익창출을 이뤄낼 수 있다고 귀뜸하는 오 박사는 1평당 30만원의 수익을 창출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커피 불모지에서 당당하게 자존심을 지켜내는 금나무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 농가당 커피나무 하나로 연간 10억 이상의 매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여 말하는 오 박사는 4~5년뒤면 아프리카나 남미 보다 커피 수확량이 많은 커피강국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를 통해 한국형 커피가 전세계에 널리 퍼져나가길 희망했다. 집집마다 커피를 심는 커피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커피재배국가의 위상 정립과 고소득창출로 정부에서 육성 정책이 있었으면 합니다.” 

   
 

한국형 커피개발로 농가 소득창출의 꿈을 실현해 나간다.
커피의 본격적인 연구와 개발을 위해 약 20년전 한국커피나무 주식회사를 설립한 오 대표는 현재 직원 30여명과 함께 국내 커피의 대중화를 위해 힘써오고 있다. 충청 소태면 본사를 비롯하여 서울 양재, 경기 평택, 전북 전주, 충청 수안보 등 농장 5곳을 보유하고 있으며 비교적 추운곳이고 재배하기 힘든 곳이지만 커피나무가 보다 강하게 자랄 수 있고 특유의 신맛이 강하게 날 수 있는 곳만 골라서 입지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커피나무의 묘목을 가져다 심은 곳이 약 120여곳이 될 정도로 전국에 커피나무의 묘목이 퍼져나가고 있으며 묘목 수량만 대략 12만주라고 하니 실로 엄청난 양을 자랑하고 있다. “커피는 과실수입니다. 정부에서 정책자금도 지원을 받을 수 있기에 최근 저희 농장에 재배 문의가 많은 편입니다. 이렇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기까지 임직원들과 투자자, 물심양면 도움을 전해주신 모든 분들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대장암으로 인해 생사의 경계선까지 넘나들만큼 힘든 시간을 묵묵히 버터내며 마침내 국내에서 재배가 가능한 커피품종을 개발하는데 성공한 오흥석 박사는 현대판 문익점으로 불릴만큼 국내 커피발전에 큰 역할을 해내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커피 대중화를 위한 발걸음. 앞으로도 힘차게 달려나갈 것입니다.” 

   
 

<㈜한국커피나무  오흥석 박사 인터뷰> 
Q1. 박사님에게 커피란 어떤 의미인지요?
A1. 저에게 커피는 오랜 친구이자 생명의 은인입니다. 40년간 동거동락하며 커피나무가 자라며 때론 병충해로 인해 아프고 힘든 모습을 지켜보며 가족같이 함께 생활해왔습니다. 이렇듯 자식같은 존재인 커피가 국내에서 인정받고 많이 홍보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이를 위해선 ‘커피 새마을 운동’ 을 통해 이제는 수입국가의 오명을 벗고 수출국가로 성장해 나가길 희망합니다. 그꿈을 이뤄가는데 더욱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Q2. 한국형 커피재배를 어떻게 활용해 나갈 것인지요? 
A2. 지난 40년간 커피와 동거동락하면서 커피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식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효자 식물인 커피를 잘 키워내서 껌과 사탕 그리고 다양한 식품으로 대체상품 출시가 가능하며 더불어 관광체험 코스로도 인기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즉, 농가 수익창출의 효자 노릇을 담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보다 많은 영농인들이 커피와 인연 맺기를 희망합니다. 

Q3.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A3. 2020년에는 양재역 부근 염곡동에 돔하우스를 먼저 설립할 생각입니다.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조성될 예정이며 도시농업도 강의가 이뤄질 것입니다. 더불어 원주에는 관광농원이 들어설 것입니다. 이를 통한 수익창출로 불우이웃돕기 성금 마련 및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재원으로 사용해 볼 생각입니다.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모두가 작은 실천이지만 함께 동참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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