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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의 독립운동가 ‘선교사 새넌 맥큔’
박순태 기자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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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06  14: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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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의 독립운동가 ‘선교사 새넌 맥큔’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조지 새넌 맥큔을 2020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독립기념관은 공훈을 기리기 위해 2월 한 달간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새넌 맥큔의 사진 등 8점을 전시한다.
 
1873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난 조지 새넌 맥큔George Shannon McCune, 윤산온尹山溫)은 1905년 9월 아내 헬렌 베일리 맥아피(Helen Bailey McAfee)와 함께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학생들을 가르치며 숭실학교와 교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1909년 9월부터 평안북도 선천의 신성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학생들의 자립과 자조를 위한 실업교육을 강화했다. 그러던 중 1911년 일제가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의 독립운동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이른바 ‘105인 사건’에 자신과 신성학교 학생·교직원 등이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감시대상이 됐다. 맥큔은 이 사건을 미국 선교 본부에 바로 보고하고 일제의 무단통치 실상을 해외 언론에 알려 재판이 일제의 의도대로 진행될 수 없게 했다.
 
맥큔은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자신의 집으로 피신시키고 일본 경찰의 가택 수색을 거부하며 일본 경찰에 체포되지 않게 보호했다. 그리고 3·1운동 당시 자신이 목격한 일제의 탄압을 미국 『컨티넨트The Continent』 잡지에 게재해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다. 이뿐 아니라 1920년 9월 1일 방한한 미국 의원단에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보이기 위해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광복군총영 소속 신성학교 학생 박치의(朴治毅)가 사형판결을 받게 되자 이를 변호했다. 
 
이러한 일들로 ‘극단적 배일자(排日者)’로 분류돼 일제의 감시를 받던 맥큔은 잠시 한국을 떠났다가 1928년 다시 돌아와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의 교장직을 겸했다.

교장으로 재임하던 중 일제가 신사참배를 계속 강요하자 1936년 1월 18일 ‘기독교의 교리와 양심상 자신이 신사참배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참배를 시킬 수 없다’는 최종 답변을 교육 당국에 제출하고 결국 교장직에서 파면당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비판하는 강연과 논설 기고 등을 지속하다 1941년 12월 서거했다. 정부는 이러한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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