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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스스로 향기를 자랑하지 않는다
유영태 교수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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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7  11: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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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스스로 향기를 자랑하지 않는다. 
 
식물의 세상에서 꽃들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시기에 늦지 않게 찾아온다. 비록 척박한 땅일지라도 자양분을 소화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난다. 비바람과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면 뿌리는 대지를 부여잡고 기필코 세상과 꽃들이 인사하게 한다.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핀 꽃일수록 더 아름답고, 향기는 더 넓은 공간을 포용한다. 식물의 어느 부분의 작용으로 꽃이 향기를 만드는지 모르지만, 소리 없이 수많은 공간의 경계를 넘어 벌과 나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모은다. 벌은 신속하게 날갯짓하며 찾아오게 하고, 나비는 춤을 추듯 놀러 오게 한다. 사람들은 환한 얼굴로 꽃 옆에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꽃이 먼발치에 있어 잘 보이지 않을지라도 향기는 꽃이 어디에 있는지 장소를 알려준다. 
 꽃이 향기를 자랑하기 때문에 벌과 나비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거칠은 대지에서 삶을 향기로 정화하며 아름답게 피어나지만 스스로 자랑하지는 않는다. 꽃의 향기는 꽃이 견디어 낸 고난의 깊이만큼 은은한 바람결에 몸을 실어 우리에게 찾아온다. 거센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치면 향기를 잠시 머금은 뒤 잔잔한 평온의 시기에 고요한 실바람에 향기를 실어 전달한다. 꽃의 향기는 고난을 이겨낸 축제의 향연이다. 
 향기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꽃이 아니란 것을 우리는 안다. 향기를 자랑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향수가 바로 그것이다. 향수로 꽃의 향기를 만들 수는 있지만, 꽃은 아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향수는 때에 따라 지나친 향기로 사람들의 얼굴을 돌리게 한다. 향수는 향기를 자랑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만, 꽃은 향기를 자랑하지 않아도 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길고 긴 고통을 인내하며 척박한 땅을 부여잡고 꽃이 향기를 만드는 이유는 열매 맺기 위해서다. 꽃이 열매 맺는 것은 길고 긴 생명의 순환에 동참하는 과정이다. 생명의 순환과정에는 많은 것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삶의 극한 사항을 기어이 극복하고, 인내와 끈기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지나치지 않는 향기와 함께 튼실한 열매로 가치를 공유하는 모습에는 생명의 순환과정이란 일생이 꽃에 녹아 있다. 역경이 오면 뿌리는 더욱더 대지를 부여 붙잡고 생명을 보호하였다가 향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 열매를 맺어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희망을 전달한다. 인위적인 향기를 자랑하는 향수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향수는 때에 따라 그 향기가 지나치기도 하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을뿐더러 부패할 수 있는 부작용도 있다. 
 사람도 꽃처럼 대지에 발을 딛고 세상에 뿌리를 내리며 산다. 세상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꽃과는 다르게 작은 일도 뽐내고 자랑하는 것을 즐겨 하는 사람이 있다. 꽃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처럼 특정한 사람에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향기와 같은 인격과 아름다운 행동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하면 열매 맺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꽃의 향기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듯이 인격이 사람을 감동하게 만든다.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출발점은 대화에서 시작한다. 대화는 상대가 있는 말이다. 상대와 교감이 없는 말은 대화가 아니라 소음이다. 사람이 하는 말은 보이지는 않지만, 행동을 구속한다. 꽃의 향기가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모으듯 사람의 향기로운 말이 행동을 구속하여 결과를 만든다. 그래서 사람의 말은 사람의 향기와 같다. 꽃이 향기를 자랑하지 않듯이 매력적인 사람은 자신을 시시콜콜 자랑하지 않는다. 매력적인 인격은 자랑하지 않아도 꽃향기처럼 잔잔한 바람결을 타고 우리 곁에 찾아온다. 자랑하는 향기는 꽃이 아니라 향수인 것처럼 자랑하는 행위는 매력적인 인격이 아니라 과시욕이다. 과시욕은 향수가 부패할 수 있듯이 사람을 부패시킬 수도 있다. 
 사람들은 세상 사는 동안 아름다운 향기의 말로 감동을 서로 주고받으며 이모저모로 결실을 만든다. 꽃이 뿌리를 대지에 내리고 생명의 순환과정을 경험하는 것처럼, 사람도 세상으로 구성된 우주 공간의 대지에 발을 굳건히 딛고 생명의 순환과정을 밟는다. 살면서 주위에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내 마음이 아프고 불편한 이유는 세상이란 우주를 매개로 서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감동으로 교감하기도 하고, 이성적 판단으로 냉정하게 행동하면서 번민과 번뇌를 영양분 삼아 성장한다. 성장 과정에서 날마다 맞닥뜨리는 번민과 고통의 중심에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 최우선의 위치에 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 우주까지 확장하며 생각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아주 오래전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자리 잡았다. 그리스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서양철학은 자연과 사람을 분리해서 이분법적으로 생각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연은 이용의 대상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그들은 자연을 신비함보다는 분석하고 해부해서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분야로 생각했다. 자연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본질을 잘 이해해야 했다. 이로 인하여 자연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과 학문이 발달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서양인의 눈에 자연은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용의 대상을 자연인으로서 사람까지 적용하여 노예제도를 만들었고 자유와 인권과 같은 천부적인 권리가 침해되는 많은 부작용을 만들었다. 
 그러나 동양철학에서는 자연과 사람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라는 사상은 당연히 우주와 나는 하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호기심이 되었든 아니면 그 무엇이 되었든 모르는 어떤 번민에 휩싸여 마음이 답답해지면 산속으로 들어갔다. 우주와 내가 하나인 또 다른 나를 찾아 자연의 품으로 들어간 것이다. 내가 바로 우주이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동양에서는 자랑하는 행위를 매우 신중하게 생각했다. 밤과 낮이 있듯이 세상일이란 게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항상 공존한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우리에게는 사람의 감성 영역까지 연장되었다. 자랑하는 말을 계속 들으면 꿀을 계속 먹는 것처럼 금방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중립적인 맛을 내는 맑은 물을 더 선호한다. 자랑은 배타적인 성격이지만 물은 포용적이기 때문이다. 자랑은 대화 속에서 작은 티스푼 한 번 정도면 충분하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지나친 자랑은 축하는 마음이 변하면서 듣는 사람이 점점 우주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나는 듯한 생각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지나친 자랑의 부작용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오랫동안 연결된 관계망이 실타래처럼 얽힐 수가 있다. 관계망이 흐트러지면 수월하고 쉽게 풀리던 일이 갑자기 멈출 수가 있다. 우주의 중심에 있어야 할 개개인이 관계망의 변두리에 밀려나는 듯한 느낌으로 균형이 흐트러진 것이다. 사람들과의 다양한 관계망 속에 사는 우리에게 꽃은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준다. 꽃은 향기를 자랑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으며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반복되어야 할 생명의 순환주기 과정에서 한순간의 연결고리로 있는 것이다. 꽃의 향기처럼 매력적인 사람의 인격은 자랑하지 않아도 그 향기가 멀리 전달되어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게 한다. 

유영태 교수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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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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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
그것은 식물의 세계를 잘 모르고 하시는 부분도 많습니다.
(2023-06-24 13: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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