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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꽃과 엄마
신수희 작가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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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7  12: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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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꽃과 엄마

   
국화

엄마는 작년만 해도 하얀 저고리를 입고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식탁에 앉아있는 모습이 가끔씩 꿈에 나타났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슬퍼했던 그 날이 엊그제 같은데 손을 꼽아보니 벌써 17년이나 시간이 흘렀다. 대학교 다니던 아이들이 불혹이 되었으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엄마가 살아 계셨을 때는 엄마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가치를 미처 알지를 못하고 살았다. 언제나 내 곁에는 엄마가 있을 줄 알았고 비 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쳐도 세상을 사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그리고 보여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의 향기도 푸른 하늘도 그 때는 못 알아볼 때가 많았다.

가끔씩 나타나던 엄마가 무슨 일이 있는지 올해는 꿈속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꿈은 환상이라고도 말 하지만 엄마를 꿈에서라도 자주 봤으면 좋겠다. 섭섭한 마음이 가득하여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살기 때문에 오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작년에는 걱정이 많았을까 식탁에 앉아있는 모습이 밝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용서받지 못할 잘못들이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몇일 전 둘째 딸 유정이가 “엄마, 우리 키우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어?” 스스름없이 하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상대의 입장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불혹이라고 했던가? 그 나이에는 나는 엄마에게 어떻게 했는지? 내 딸에게 고마운 생각이 든다.

사무치다는 말이 생각난다. 속 깊이 스며든다는 우리 말이다. 어쩌면 나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에게 잘못한 이 일 저 일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사무치게 후회가 된다. 그 때가 아마 지금의 내 딸 같이 불혹의 나이였다. 딸이 보고 싶어 엄마는 만사를 재쳐놓고 마산에서 우리 집에 올라오셨다. 손을 꼽아보니 엄마가 팔십도 넘은 나이였다. 백세 시대인 지금과는 달리 그 시절에는 팔십이 넘으면 지금의 구십 대 만큼 연로한 나이였다. 딸이 좋아한다고 무거운 것도 마다 않고 혼자서 생선이랑 북어랑 해산물을 이것 저것 사가지고 딸이 보고 싶어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올라오셨다. 지금처럼 택배 문화가 잘 되지 않던 때라 무거운 짐을 힘들게 들고 오지 말라고 부탁해도 엄마는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부지런하고 음식 솜씨가 좋은 엄마는 모처럼 우리 집에 와서도 한 시도 쉬지 않고 꽃밭에 잡초도 뽑고 텃밭에 씨도 뿌리고 상추도 심었다. 마른 북어를 방망이로 두들겨서 딸이 좋아하는 북어 장아찌도 만들고 생선 찜도 만들면서 자식이 무엇이길래 마산 집에 내려갈 때까지 앉을 여가 없이 일을 즐겨하였다. 불에 구워서 뼈를 발라 갖은 양념에 무쳐주는 마른 북어 무침은 엄마가 아니고는 어떤 사람도 낼 수 없는 독특한 맛이었다. 나는 엄마가 만들어주는 그 북어 맛을 정말 좋아했다. 엄마는 그걸 알았다.

마당에는 새싹들이 나고 나무들 마다 파란 잎이 돋아나는 어는 날 오후였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나는 볼일이 있어 엄마를 혼자 두고 밖에 나갔던 일이 생각난다. 엄마가 오지 않았더라면 늦게 와도 걱정이 없었을 건데 모처럼 나를 보러 오신 엄마 때문에 마음이 바빠 서둘러 집에 왔다. 다행으로 봄 해는 아직도 저만큼 산허리에 높다랗게 걸려있었다. 푸르르 지고 있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오랜 만에 “엄마”하고 큰 소리로 불러 보았다. 엄마가 오시지 않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엄마의 냄새가 대문 앞까지 스며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집에 들어오자 마자 국화 꽃이 무엇이길래 갑자기 엄마에게 못난 말을 내뱉었다. 엄마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겨주는 말이었다. 다음 날 새벽 먼 동이 트기도 전에 갑자기 서두르던 엄마는 나한테 마음을 들킬 까봐 바쁜 일이 생겼다면서 꾸지람 한 마디도 없이 홀연히 마산에 내려가셨다. 먼 길을 내려가면서 차 안에서 남이 알까 얼마나 울었을까? 그런 후 엄마는 나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내 곁을 떠나 먼 나라를 가시고 말았다.

부지런한 엄마는 내가 집에 나가고 없는 틈새에 딸이 힘들까봐 꽃밭에 나가 잡풀을 뽑으면서 쑥같이 생긴 국화 꽃들을 한 송이를 놓아두지 않고 깨끗이 뽑아버리고 화단을 정리했다. 엄마는 꽃이 아니고 쓸데없는 쑥인 줄 알았다고 미안해 했고 나는 엄마가 이렇게 하려면 이제는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너무나 쉽게 엄마의 마음을 애이게 했다. 작년 가을 강원도 철원에 갔을 적에 예쁘게 핀 국화 꽃을 보고는 담배 선물과 함께 사정사정하던 딸의 모습을 엄마는 알 리가 없었고 나는 천 송이 만 송이 보다 더 귀중한 엄마를 순간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해마다 국화 꽃이 피는 가을 길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엄마 생각을 하면 국화 꽃은 언제나 아픈 꽃이기도 하다. 지금도 조용히 생각하면 그 때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다.

   
신수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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