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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의 독립운동가 - 권쾌복, 배학보, 유흥수 선생
박순태 기자  |  computer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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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2.09  17: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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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의 독립운동가 - 권쾌복, 배학보, 유흥수 선생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권쾌복(1921~2009),

배학보(1920~1992),

유흥수(1921~2016) 선생을

2021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습니다.

권쾌복·배학보·유흥수 선생은

대구사범학교 내의 비밀결사,

‘다혁당 사건’의 주요 인물들입니다.

 

세 명의 선생은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7년 4월,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교에서 민족차별 교육이 자행되던 때,

1939년 학생들의 노동력 강제동원과

일본과 조선학생의 마찰은

‘왜관사건’으로 폭발했으며

대구사범학교의 조선인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왜관사건 이후

권쾌복, 배학보, 유흥수 선생은

조선의 역사와 문학 관련 서적, 잡지 등을 읽고

시국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모임인

‘백의단’을 결성했습니다.

이 단체는 이후 다혁당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1940년 11월 23일 유흥수 선생은

독서회 참가자들과 비밀결사 ‘문예부’를 결성,

『학생』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부했습니다.

또한, 학문 분야를 연구하여 실력을 양성하는

비밀결사 ‘연구회’가 조직되었습니다.

1941년 2월 중순,

유흥수 선생은 권쾌복, 배학보 선생 등을 만나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비밀결사 조직, ‘다혁당’을 결성했습니다.

다혁당은 총무, 문예, 예술, 운동부 등

4개 부서를 두고 기존 활동을 계승했고,

문예부 산하에

문예창작부와 연구부를 두었습니다.

이는 이전의 ‘문예부’와 ‘연구회’를

계승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권쾌복 선생은 다혁당의 당수를,

배학보 선생은 부당수를 맡고,

유흥수 선생은 문예부 산하

문예창작부 책임을 맡았습니다.

이렇게 통합되어 활발한 활동을 준비하던

다혁당에 갑작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활동하던 정현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내용이 발각되어

1941년 7월, 일제 경찰에 체포된 것입니다.

수사과정에서 다혁당 활동이 발각되어

결성된 지 5개월여 만에 다혁당은

일제 경찰에 의해 와해되었습니다.

1941년 12월, 35명이 재판을 받았고

이 시기 비밀결사 사건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항일운동이 침체되었던 시기에

벌어진 다혁당 사건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운동이자

민족운동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세 분 독립운동가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권쾌복 선생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배학보 선생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유흥수 선생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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