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림을 알아?
그림이 그림이지 나보고 뭘 어쩌라고…
(같은 듯 다른 동양과 서양미술의 이해)

고원수/ columnist, artist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는 관조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있다.

 같은 그림 앞에서 “음! 이 그림은 물성이 아주 잘 표현된 것 같아. 관찰자의 시점이 구조의 조형적 이해나 대상의 본질을 정확이 관통하고 있어. 멋지고 가치 있는 작품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야! 이 그림 기가 막히게 잘 그렸어. 쳐다만 봐도 기분이 좋아. 뭔지 잘 모르겠지만 살아서 꿈틀대는 듯 한 저 느낌. 내 맘에 쏙 들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글을 읽는 당신은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파올로 우첼로 산 로마노의 전투]/페널에 탬페라/1436 ※원근법은 전체를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서양미술 - 오브제(Objet)의 조형성과 본질 추구
 중세암흑기를 살던 사람들의 사고는 신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인간은 피조물로서 전지전능한 신의 설계에 대하여 의심을 품거나 토를 다는 것을 크나큰 불경죄로 생각하였습니다. 즉 우주만물은 신이 ‘그곳에 있어라’해서 있는 것이고, 자연의 섭리 또한 ‘그래라’해서 그렇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후 서양은 문예부흥기인 르네상스시기를 거치며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점(viewpoint)이 신 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 결과 그동안 신의 눈으로 보던 세상을 인간의 경험과 사고를 통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에 새로운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고체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신을 거부하거나 또는 신의 창조물에서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끄집어내어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과거로부터 자신들이 흔히 했던 이원론(二元論, dualism)적 방법을 선택하여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으로 분리합니다. 즉 신은 섬김(serve)의 대상이고 자연은 정복(Conquest)의 대상으로 본 것이지요. 이러한 이원론은 고대로부터 서양인들의 철학적 사고체계 속에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서 정신세계-물질세계, 정신노동-육체노동, 이상-현실, 문명-원시, …… 등등으로 그들의 이성적 잣대에 끼워 넣은 것입니다.

 그 결과 르네상스 이후 서양미술에서는 신이나 영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오롯이 정복의 대상인 자연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섬기기(serve)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의 관찰(observe)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고, 내던져진 물질이라는 의미의 오브제(objet) 그리고 관찰한 물질의 이미지를  화면에 정확하게 재현(represent)하기 위한 격자창(grid)과 원근법(perspective)이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미술을 통해서 물질의 궁극적 본질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 행태는 양파 껍질을 벗기는 것과도 유사합니다. 그들은 양파를 까고 또 까다가 결국 아무것도 없자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다가 뭔가에 홀린 듯 무수하게 깐 껍질들을 토막 내고 난도질합니다. 결국은 믹서기계에 넣고 돌려서 죽을 만들고 녹즙기에 넣어 즙을 짜내는 등의 온갖 방법들을 다 동원합니다. 그러나 그 마저도 증발하여 없게 되고 결국 양파라는 개념적인 측면만 남는 결과까지도 초래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법들로 고전주의, 자연주의, 사실주의, 낭만주의, 표현주의, 인상주의, 추상주의,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 등의 미술들이 만들어 졌습니다.

이중섭/흰 소/41cm × 29cm/1955/홍익대박물관 소장

동양미술 - 기(氣)의 운용, 물아일체(物我一體)
 동양철학에서 기는 우주를 이루는 다섯 가지 물질인 나무·불·흙·금속·물을 의미하며 이것을 오행(五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오행의 기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서 사물은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4원소(흙·물·공기·불) 개념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 속해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서로 다른 각각의 존재가 아닌 합일과 조화로 엮인 하나의 기(氣)를 이룬 덩어리로 보았습니다. 즉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만나서 곡기(穀氣)가 되고 이러한 곡기를 섭취하여 사람이 만들어졌다는 사고체계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천지인(天地人)’이라고 말합니다. 즉 과거로부터 우리가 속해있는 문화권에서는 서양의 이원론이나 일원론과 같은 개념자체가 없었고, 그냥 자연을 벗 삼고 동화되어 그것에 기가 흐르거나 막히고 또는 모이거나 요동치는 등의 기(氣)의 운용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동양의 옛 그림들 대부분에도 이러한 생각들이 그대로 반영되어있습니다. 즉 르네상스이후의 서양미술이 관찰(observe)의 방법으로 사물의 외형을 정확하게 옮기거나 그 물질의 본질을 추구한 것과 다르게 동양미술은 관찰이 아닌 관조(觀照)의 방법으로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기운을 표현하거나, 그리는 사람의 기가 사물에 감정이입(感情移入)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대상을 너무 깊이 응시하다가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내가 없어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형이상학)에 나오는 ‘인간의 최선’이라는 의미의 테오리아(theoria)의 상태와 비견됩니다. 결국 동양미술의 시점은 현실의 눈으로 시작했다가 마음의 눈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에 더 쉽고 빠르게 도달하는 방법으로 유명했던 화가의 필법을 모사하는 방법들이 널리 통용되었습니다.

잭슨폴록(1912~1956)/No.5/1948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림은 그림인데 보는 방법이 다릅니다.
동서양이 근대시기를 거치며 이동 및 접촉이 빈번해졌고 그림에서도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특히 요즘은 그림만으로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 짓기가 매우 모호해졌습니다. 이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혼용, 혼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료적인 측면에서도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도 더 이상 동양화, 서양화라는 개념은 사라졌고 더 많이 사용하는 표현재료에 따라서 ‘회화1, 회화2’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더 급진적인 대학에서는 단순히 ‘평면과 입체’로 나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을 감상할 때 나타납니다. 관람자가 미술에 관련된 기초지식을 이미 습득하였더라도 어느 문화권에서 성장했느냐에 따라 그 문화권의 잣대를 자신도 모르게 그림에 쑤욱 들이민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필자가 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같은 그림도 다른 그림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