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의 르네상스를 위하여
- 한지의 기원 -

 인체에 무해한 천연의 재료와 전통의 제조공정이 결합되어 생산되고, 옛 종이를 뜻하는 ‘한지’는 어디서 어떻게 유래 되었나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1300년에 걸친 한지제작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자들 간에는 한지가 중국으로부터 한국에 2~7세기경에 소개되었다는 설에 대해 여전히 분분한 의견이 있으나, 지배적인 의견은 4세기 전부터 한국에서 한지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평양지역에 있는 낙랑시대의 무덤인 ‘채협총’에서 발견된 유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고구려 영양왕 때 승려 담징이 먹과 맷돌 등과 함께 일본에 한지제작 기술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6세기 우리나라의 종이제작 기술의 발전 위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국보급 인쇄물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시대적 재평가도 인쇄물이 오랜 기간 잘 보전 되어왔기에 가능하였는데, 이는 결국 종이 질의 우수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불국사 석가 탑 2층 탑신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751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다라니경은 탑을 쌓은 다음 불경을 염송하여 성불한다는 뜻에서 만드는 경전으로 예부터 탑 속에 다라니경을 넣는 것이 통습이었습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지질을 정밀 분석 하는 과정에서, 방충목과 고급화를 위해 닥종이에 황벽 물을 들인 사실이 판명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습니다.

 또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로 프랑스에 있는 ‘직지심체요절’이 전해지는데, 우리 민족이 최초로 금속활자를 창안하고 발전시킨 문화 민족임을 실증하여 그 긍지를 세계에 과시한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은 2001년 9월 승정원일기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말미암아 중국 후한 때보다 앞서 이미 신라에 종이가 발명되었음을 추정 할 수 있습니다.

 11~12세기경에 이르러 한국의 종이제작 기술은 융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고려왕조는 종이제작 기술 발전을 독려하고, 그로인해 불경, 의학 및 역사 서적들이 수없이 인쇄되었습니다. ‘고려지’(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한지를 부르던 명칭)는 아시아에 걸쳐 알려졌으며, 특히 중국에서 유명했습니다. 이시기 제작된 중국서적들에서는 우리나라 종이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있으며, 중국학자들은 한국종이를 최고의 종이로 여겼습니다. 고려와 조선 사신들이 중국을 방문할 때 공물로써 ‘고려지’는 최고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조선 왕조 시기에 이르러 ‘고려지’의 우수성은 널리 알려졌고 그 종이제작 기술은 지속적으로 전해졌습니다. 조선중기에 이르러서 한지는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널리 전해져서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염색된 한지가 등장했는데, 소나무껍질, 짚, 대나무 등 다양한 식물염료로 한지에 색을 입히기 시작하였습니다.

 고구려는 문방사우에 있어 신라 때부터 최고의 품질로 정평이 나있어 송, 당이 부러워했고 다투어 썼다고 합니다.
한지 중에서도 으뜸인, ‘잠견지’라 불리는 ‘고려지’의 우수성을 예찬하는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그렇게나 향긋하고 하얗다는 질 좋은 잠견지는 그 가녀린 숨결만 기록 되어 있을 뿐 어디에서도 찾아 볼 길이 없습니다.
‘잠견지’는 어느 민족도 감히 그 제조기술을 흉내 낼 수 없었던 고려의 종이였으며, 최고의 품질로 명성을 떨치며 송, 당이 부러워하여 앞 다투어 썼음을 이규보는 시를 빌려 예찬하기도 하였습니다. ‘고려지’라고도 불리는 ‘잠견지’는 금견 (누에고치로 만든 비단)으로 만드는데 종이의 색이 너무도 하얗기에 명주 같기도 하고, 질기기는 비단과 같아서, ‘잠견지’에 글씨를 쓰면 먹이 진하게 배어 아주 좋다고 한다는 기록이 <고반여사>에 나와 있습니다.

 19세기 무렵, 조선왕조는 외세의 침략에 의해 혼란을 겪었습니다. 6년에 걸친 1592년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황폐화되었고 종이제작 기술을 빼앗아 갔으며 종이 제작 공들을 일본으로 강제 이주 시켰습니다. 또한 이시기에 중국의 원, 명, 청 왕조로 부터 과도한 종이 공물을 요구받게 되며, 조선왕조는 종교적 목적으로 종이제작 기술을 습득하던 승려들에게도 이를 강요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 한국의 종이제작 전통은 점차 퇴보되어 갔습니다. 현재는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와 서구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한지에 대한 인식이 저조하여 왔으나, 한지를 제작하는 전통만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려지’로 된 유물 중 제일 오래된 고서도 일본에 있는데, 이처럼 자랑스러워하고 세상에 내보여야 할 우리의 오래된 전통이 실현된 유물들이 외국에 존재하는 현 실정을 보며, 한지에 관한 일을 하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재들이 제자리에 올 수 있도록 각 나라들이 더 높은 차원의 정치 도덕을 실현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잠견지’ 맥을 잇고자 복원작업에 주력하는 종이연구가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연구하고 개발하여 우리 전통 ‘고려지’ 향취를 현대에 전함과 동시에 후세에 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