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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도 없었을 것그림은 나의 천직
박부건 기자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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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8.12  1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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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도 없었을 것,
그림은 나의 천직~~

 

   
최예태 화백

"색채를 혼합하는 일은 작가의 자존심이다" - 최예태 화백 -

어둠 속에서의 작은 빛은 그 어느 빛보다 밝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빛 속의 일곱 가지 색채를 곱게, 혹은 강렬하게 뽑아내어 캠퍼스에 담아 자신이 의도하는 빛과 어두움의 대전에 관객들을 초대하는 이가 바로 최예태 화백이다. 적색와 청색, 그리고 녹색이 주조를 이루며 비교적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을 선호하는 그는 검은 형체인 어두움을 전면에 깔아놓으며 명암대비와 보색대비 효과로 화면의 깊이와 극적인 인상을 남긴다. 강렬한 보색의 대비에서 느끼는 강함은 일곱 가지 빛의 무지개처럼 조화롭게 다가오고 그 속에 담긴 생동감과 긴장감이 적당한 텐션이 된다. 풍경에서부터 인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동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최 화백은 특히 메인에 포커스를 두고 적층 기법, 붓기, 나이프기법 등 다양한 효과를 통해 캔버스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그의 예술적 감성은 한국 미술 문화를 한 단계 높이는데크게 기여해 왔다.

 

   
 

 탁월한 색채 감각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아...
전북 김제에서 출생하여 군산에서 자란 그는 금광동, 월명동, 구시장 등에서 동네의 유명한 골목대장으로 유명했다. 우연히 접한 미술에 흥미를 느끼고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함이 뭔지를 조금씩 알게 된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화가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꿈을 이루기 위해 가출을 결심했고, 막노동과 장사판에서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많은 삶의 경험들을 통해 생각이 깊어지고,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자신이 마음속에 품은 꿈을 꿈이 아닌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최 화백은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고생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으며 묵묵히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때의 힘든 기억들이 여든을 훨씬 넘은 나이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그는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 늘 모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척박한 땅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는 잡초근성이었을까? 그의 작품에서도 살아온 삶의 자취들이 투영된다. 진취적이면서도 도전적인 터치와 색감, 매혹적인 영감들, 강렬한 색채들의 대비가 바로 그의 삶에서 나온 것이다. 사물과 자연을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이루어낸 견고한 구성, 직선과 사선 혹은 곡선으로 분할하여 재구성한 화면의 팽팽한 긴장감, 현란하고 대범한 색채의 대비로 표출되는 탁월한 색채감각을 주조로 하는 그의 독보적인 회화적 특성은 보는 이에게 고요한 충격을 안겨준다.

 

   
 

어느덧 80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최 화백은 지난 70년 동안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국내 미술계에 남다른 족적을 남겨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1958년 군산 비둘기다방에서 수채화 25점을 가지고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식지 않은 열정으로 캔버스를 대하는 그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최 화백은 그간 수많은 전시회들에 참여했고, 개최해왔다. 1970년 ‘전북도전’대상, 국전(國展, 대한민국미술전람회)다수 특선, 2005년 ‘한국구상대제전특별상’ 등을 두루 수상했다. 1958년 첫 개인전을 비롯해 로마화랑(일본 동경), 도불기념전(덕수미술관), Quebec정부기획초대(캐나다 몬트리올), 진화랑, 옹브르 에 뤼미에르 갤러리(프랑스 파리), 최예태 회화50년(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2008), 군산근대역사박물관(팔순기념전, 2016) 등 주요 개인초대전을 가지며 특유의 화풍을 널리 선보였다. 최근인 2020년에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갤러리에서 '한국구상대제전' 전시회를 했고 2020년 온라인지상전, 2021년 5월 12일 - 6월 30일 '명갤러리' 초대전에 초대되었으며,  2021년 11월 '한국구상대제전'을 계획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를 통해 유연하고 창조적인 그만의 색을 드러내..
그의 그림은 풍경화와 누드화, 정물화를 망라하는 등 다양한 장르에 있어서 치우침이 없고 유연하며 창조적인 독특한 최 화백만의 예술세계를 보이고 있다. 구상화에서 비구상화로, 자연주의 회화에서 추상화로 장르와 시공간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며 경쾌한 색조로 화려하게 펼친다. 사실주의적 초기 누드화에서 미니멀리즘 화풍의 최근 작품까지 그는 즐겨 다루는 높디높은 산의 높이만큼이나 깊디깊은 심오한 예술혼을 간직한 작품들을 선보여 관객의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와 자연의 조화를 매우 설득력있게 표현하고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한국 현대미술 발전에 큰 초석으로 일컬어진다. 작가의 균형잡힌 정신세계를 표출하기에 적합한 초연함을 수반하는 낭만적인 색채는 최 작가의 신비스런 힘의 근원이라 하겠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 한류문화원 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인 한류문화의 중심에서 조직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KAMA 한국현대미술가협회에서 십 여 년이 넘게 회장으로 왕성하게 활동을 펼쳤고, 현재는 고문으로 협회의 미래를 제시하고 회원들을 이끌고 있다. 최 화백은 2021년 9월 -10월 경 프랑스 '콜시카섬'에서 '장마리작기'의 초대로 초대전이 있는데, 여기에 참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예태 화백 인터뷰>
Q : 유년시절, 우연히 미술을 접하고는 어느 순간부터 화가의 꿈을 키우셨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말씀해 주시죠.
A : 6.25 전쟁이 한창이었던 1951년에 전 군산초등학교 6학년이었어요. 그 때 전북학생사생대회에 출전하여 대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북최고의 '소년미술 왕'이 되었는데 이때 화가의 꿈을 처음으로 품게 되었죠. 유년시절엔 끝없이 펼쳐진 만경평야의 원색적이고 화려한 사계의 색채 속에서 자랐습니다.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과 색채의 대비가 어렸을 때부터 제 몸 속에 깊이 각인되었는데 이것이 제 회화 세계에 영향을 미쳐서 강렬하고 생명력있는 색채로 발현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 파리의 미술평론가 Roser Bouillot는 ‘최예태 화백만큼 한국인의 정신과 자연의 조화를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화가는 아주 드물다’고 평했습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대한민국 화가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계신데요, 해외 유학 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서 서양화와 캐나다 퀘백대학교에서 조형미술을 전공하고 그루지아 공화국 국립미술관의 초대 한국현대미술제 대표로 활동했어요. 1988년 몬트리올에 살면서 오타와에 있는 ‘알공 퀸 칼리지’에서 서양화(수채화)를 공부했지요. 그리고 1991년 퀘벡유니버시티에 입학하여 3년 동안 순수비구상과정을 정식 이수했습니다. 당시 새로운 추상세계에 흠뻑 빠져 있었어요. 몬트리올에서 뉴욕까지는 멀지않은 거리여서 자주 찾았고 ‘아트 스튜던트 리그 오브 뉴욕’에서도 작업했습니다. 유학 때 언어 때문에 사전을 찾아가며 불어를 연마했었는데, 지금도 프랑스 작가들의 어록이나 속담 등을 외우면서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있죠.


Q : 한 평론가는 최 화백님의 그림을 세잔과 색면 회화의 대가인 마크 로스코 사이에 서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A : 색상에 있는 강력하고 물리적인 영향력을 데미안 허스트는 '감칠맛'이라고 표현했는데, 제 작품에서 격렬한 색채의 과감한 대비효과로서 이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색상이 사용된 영역이 크면 클수록 그 색상을 강력해진다는 원리가 담겨있기도 하고요. 아마도 제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이고 강력한 에너지 파장을 작품으로도 관객들이나 평론가들도 함께 느낀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장의 작가가 이야기하고픈 메시지를 현대인들의 시각으로 읽어주는 것 자체가 감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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