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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주의(Suprematism)미술 (말레비치를 중심으로...)
고원수 화백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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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2.04  11: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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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주의(Suprematism)미술 (말레비치를 중심으로...)

고원수/ columnist, artist

 미술에서 절대주의(絶對主義)는 쉬프레마티즘(Suprematism)이며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그림을 의미한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지상주의, 지고주의라고도 하는 회화이념으로 1913년 러시아 작가인 카시미르 말레비치(Kasimir Severinovich Malevich,1878-1935)가 이전의 큐비즘에서 극한의 순수한 기하학적 추상을 추출해냈고 그는 이것의 순수함만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겼으며 사물을 재현하는 기존의 방법들에서 보이는 모든 가치를 제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절대적인 순수도형이 말레비치의 주도로 철학적 연구를 통해 체계화되며 미술운동으로 발전된 것을 말한다. 

 절대주의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제로의 형태’이다. 즉 형태가 단계적으로 단순화 과정을 거쳐 ‘형태의 제로’로 전개되는 몬드리안의 방법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그 외에도 기하학적 추상의 형태와 단색조의 컬러, 공격성과 영적 순수함, 그리고 공간상의 운동이 핵심 포인트이다. 그리고 대표 작가로는 말레비치 외에도 엘 리시츠키(1890-1947)가 포함된다.

 절대주의와 연관된 미술사조로는 구축주의, 신조형주의, 입체주의, 개념주의가 있으며 함께 살펴보면 절대주의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반대되는 미술사조로는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원시주의,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아카데미즘, 신고전주의 미술처럼 구상적 형태를 내포하고 있는 것들이다. 

 말레비치의 초기 수업은 인상파 및 포비즘에서 출발하였으며 이후 1912년 파리 시절부터 큐비즘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림1>은 ‘레제’ 방식의 큐비즘을 응용하여 농부들의 노동세계를 표현한 것인데 모든 사물을 구, 원뿔, 원통으로 단순화시킨 세잔의 이론이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이 보인다.

 그는 미술을 통하여 오브제가 없는 세상을 원했으며 인간 스스로가 절대적으로 귀중한 존재가치를 획득했을 때 완전한 사회주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유토피아(Utopianism)적인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 결과 몬드리안이 신지학이라는 순수한 리얼리티에 의존했다면, 말레비치는 순수한 감성을 바탕으로 한 러시아의 신비주의와 허무주의를 통해 추상회화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 

 말레비치가 큐비즘을 받아들인 초기작품들은 <그림2>와 같이 여러 색상의 컬러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전성기 작품들은 대부분 기하학적이며 무채색으로 이루어졌고 미술에 대한 모든 전통적인 정의들은 그에게 거부되었다. 대신 기하학적 추상을 통해서 거룩하고 장엄한 정신적인 실체를 표현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림3>은 하나의 사각형에 대해서 기울어져 있는 또 다른 사각형을 화면에 배치하여 운동감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를 보이는데, 이러한 모습은 절대주의 미술 후기에 더욱 눈에 띄게 된다. 
 
 이러한 말레비치의 노력은 러시아 혁명 전후의 미술계를 구성주의와 함께 이분화 하여 전개된 전위 미술 사조 및 그 운동으로 발전했으나 결국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그의 창조적 에너지는 탄압으로 중단되었다. 이후 그는 국가로부터 자본주의의 퇴폐적인 반체제 미술인으로 낙인찍히게 되었고 그들의 감시 속에 추상회화 대신에 사회주의이념에 부합하는 생산적인 활동을 할 것을 강요당하며 <그림4>에서 보듯이 구상회화로의 복귀를 하게 되었고 결국 말년에는 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전념했다.

 절대주의 회화의 관점은 풍경이나 정물 같은 기존의 미술장르와는 별개의 특성을 보인다. 그리고 사회적인 이슈와도 동떨어져 있다. 즉 회화를 최소한의 절제된 ‘순수한 언어’로 환원시키려는 이러한 운동은 다가올 미래에 ‘미술의 종말’이라는 결과를 예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말레비치는 신비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성향이 내포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신념은 사회주의 체제에 저항할 에너지를 만들었고, 이러한 그의 노력은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즉 절대주의 미술가들은 ‘순수한’ 미술이 정치나 산업경제에 종속되는 현상에 대해 계속 저항하였고 이들의 회화는 색채와 구성에서 점진적으로 복잡해졌다. 이 운동은 1920년대와 1930년대 동안 서양의 미술과 디자인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결론적으로 말레비치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들을 ‘초이성적 사실주의’로 명명했는데 그는 이것을 새로운 사실주의라고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이성을 의미하는 ‘초이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대상을 부재의 상황으로 이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 도형이 존재한다. 또한 컬러에서도 최소한의 색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의 작품들은 실체가 있는 오브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회화적 요소를 최대한으로 절제하고 함축하여 ‘형태의 없음’이 아니라 ‘없음의 형태’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동양미술의 ‘없음으로 가득하다’는 여백의 미의식과도 비견된다. 따라서 절대주의를 이해하려면 큐비즘을 모태로 하여 동-서양의 철학적인 분야의 미의식이나 러시아정교의 초월적, 종교적인 속성까지 결합하여 살펴보면 절대주의를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림4. 말레비치, <예술가의 부인, 나탈리아 말레비치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74.5cm × 99.5cm, 1933년

그림3. 말레비치, <흰색위에 흰색 사각형>, 캔버스에 유채, 78.7cm X 78.7cm, 1918년

그림2. 말레비치,<절대주의, 비대상적 구성>캔버스에 유채, 80cm × 80cm, 1915년 

그림1. 말레비치, <추수하는 사람>, 캔버스에 유채, 60cm × 68cm, 19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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