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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독립운동가군산 3·5 만세운동 주역 선정
박순태 기자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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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30  11: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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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2022년 3월의 독립운동가'에 호남 최초 만세 운동인 군산 3·5만세운동 주역인 이두열·고석주·김수남·윌리엄 린튼 선생을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군산 3·5만세운동은 호남 지역 최초 만세운동이다. 참여 인원은 3만7000여명이었다. 이후 전북 곳곳에서 28회에 걸쳐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3·1운동 소식을 들은 영명학교 교사 이두열 선생과 구암교회 부속여학교 교사 고석주 선생은 호남 지역 최초로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했다.

두 선생은 거사일을 3월6일 장날로 잡고 학생들과 함께 영명학교에서 비밀리에 독립선언서 수천장을 인쇄하던 중 일본 경찰 급습으로 체포됐다.

 

이를 본 학생간부 등은 긴급회의를 열어 3월6일로 예정돼있던 만세 운동을 3월5일로 앞당겼다. 학생과 예수병원 사무원, 교회 신자들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뿌리며 만세를 외쳤다. 거리에 있던 많은 인파가 이 대열에 합세했다. 이들은 체포된 교사와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군산경찰서까지 나아갔다.
 
위기를 느낀 일본 경찰은 익산에 주둔하던 헌병대까지 동원해 만세 운동 참가자들을 탄압했다.

이두열 선생은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죄로 징역 3년을, 고석주 선생도 같은 죄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노동일에 종사하던 김수남 선생은 동료 이남률 등과 함께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독립운동에 방해가 되는 친일교육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선생은 독립 운동에 방해가 되는 친일 학교인 군산공립보통학교를 불태워 버리기로 결심했다. 선생은 이남률과 3월23일 오후 11시에 학교에 들어가 건물 동남쪽 출입구에서 불을 붙였다. 학교 건물 1개 동이 전소됐다.
 
김 선생은 방화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윌리엄 린튼 선생은 1912년 선교사로 한국에 온 뒤 교육선교 1년 만에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한글로 성경을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쳤다. 1917년 전임 선교사가 한국을 떠나면서 선생은 영명학교 교장으로 임명됐다.

선생은 군산 3·5만세운동 당시 교사들과 학생들의 준비를 묵인하고 은밀히 지원했다.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간 선생은 애틀랜타에서 남장로교 평신도 대회에서 일제 만행을 규탄했다. 선생은 애틀랜타 저널에 '한국인들이 어떻게 자유를 추구하는지에 대한 애틀랜타인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상황을 기고하는 등 한국 독립의 필요성과 지원을 주장했다.
 
선생은 한국으로 돌아와 전주 신흥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중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 일제는 신흥학교를 폐교시켰다. 선생도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됐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이두열 선생과 고석주 선생에게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김수남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윌리엄 린튼 선생에게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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