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신념은 상처받지 않는다. 

유영태 교수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불행은 도둑처럼 은밀하게 접근하기도 하고 질풍노도처럼 폭력적이고 갑작스럽게 덮치기도 한다. 불행과 행복이 섞어서 오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행복이 숨어서 오는 불행일지라도 불행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행은 바라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느끼는 허탈감이고 행복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느끼는 만족감일 것이다. 고단한 육체적 노동 뒤에 잠시 쉬는 휴식처럼 행복은 이미 불행을 경험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다.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안되는 방법을 터득하여 그것을 피하는 방법으로 일을 했을 때 비로소 찾아낸 결과가 성공이다. 

수많은 실패와 실수의 허탈감 속에서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신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옳다는 신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신념은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주위 사람에게는 감동이 되어 함께하는 사람을 자력처럼 불러모으기도 한다. 강한 신념은 일종의 에너지로 마치 밀도가 높은 별이 주변의 작은 유성을 끌어당기며 에너지를 키워가듯 성장한다. 세상은 에너지로 되어있고 에너지는 원자의 운동이다. 에너지는 파동의 형태로 되어있어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증폭되기도 하고 상쇄하면서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터무니없이 머나먼 별들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별빛도 파동으로 되어있어 서로 에너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우리에게 온다. 사람들의 삶의 이치도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아야 오래 지속된다. 한 사람은 주기만 하고 한 사람은 받기만 한다면 오래갈 수 없다. 주는 쪽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받기만 하는 쪽은 튕겨 나가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한쪽에서만 정성을 다 들이는 경우가 있다. 정성을 쏟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소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정성을 들이는 경우가 있다. 방향전환을 하지 못하는 경우다. 관성 때문이다. 매몰비용이 아깝기 때문일 수도 있고 철수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관성도 일종의 에너지이고 생활에도 관성이란 게 있다. 물리학자들은 관성이라 말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쉽게 다가오는 말은 습관이다. 습관적으로 하는 일도 에너지이기는 하나 특정 목적지로 힘차게 가는 새로운 에너지가 아니라 소진해가는 에너지다.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에너지를 계속 보급해야 하는데 그 에너지가 신념이다. 신념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신념도 강해진다. 올바른 신념은 공명을 일으켜 확산되기도 한다. 신념이란 에너지가 공명으로 증폭되면 불가능한 일이 당연한 일로 바뀐다. 
관성이 이전에 작용한 에너지 때문에 생긴 것이란 것을 경험으로 아는 것처럼 신념도 무수한 흔들림을 견디면서 확고해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안다. 에너지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교란의 주파수가 실린다. 그 교란의 주파수가 작으면 신호가 흔들리지 않지만, 에너지가 소진되고 상대적으로 교란 에너지가 커지면 신호를 상실하게 된다. 교란 때문에 우리의 삶이 본질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있다. 유혹과 왜곡된 욕심 그리고 욕망이란 교란이 끊임없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외부적 교란과 갈등하면서도 본질을 지키는 힘이 신념이란 에너지다. 

신념을 소진하지 않으려면 완충공간이 필요하다. 교란이라는 외부충격을 흡수하고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이기 위한 공간이다. 거센 폭풍우에도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흙으로 빚은 그릇이 쓸모가 있는 것도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가 사시사철 부프고 곧게 자라는 것도 마디가 있고 속이 비어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이 마무리하고 또 다른 일을 근사하게 시작하려면 대나무처럼 매듭을 짓고 텅 비워야 올바르고 곧게 일을 추진할 수 있다. 매듭을 짓고 텅 비우지 못하는 것은 과거에 발목 잡혀 있기 때문이다. 우뚝 돋보이고 싶은 개인의 욕망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과거는 실상이 아니라 허상이다. 과거는 상상 속에만 있다. 우리는 현재에만 존재하고 이를 발판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 삶이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고 오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미래의 모양을 바꾼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며 내일의 모습이 올바른 모양으로 다가오도록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신념이다. 그 올바름이란 누굴 위한 올바름인지가 중요한 기준점이다. 나 개인에게만 올바름인지, 가족을 위한 올바름인지, 사회와 국가를 위한 올바름인지가 올바른 신념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신념은 자칫 재앙을 만들기도 한다. 그 신념은 개인적 욕망과 욕심으로 가득하여 공간이 사라져 유연성으로 충격을 흡수하는 회복탄력성이 부족하게 되고 주변과 충돌하는 경우가 빈번해진다.

 단순한 생각이 신념이란 형태로 바뀌면 어떠한 고통과 고난에서도 포기하거나 쉽사리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때로는 신념과 신념이 부딪치면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역사 속에서도 개인 간 전쟁이 때로는 국가 간 전쟁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이처럼 신념이 중요하기 때문에 신념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 생명 중시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 물론 지구에는 사람만 사는 공간이 아니라서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방안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올바른 신념이란 신호의 본질이어야 한다. 물을 냉각하면 얼음이 되고, 열을 가하면 수증기가 되면서 그 형체가 바뀌더라도 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형체와 시대가 변화하더라도 사람 생명 중심의 사랑이 있어야 사람 사는 본질에 대한 신호를 부드럽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때가 이르면 그 시기에 맞게 모든 게 변화한다. 그 변화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다만 변화가 다양한 것처럼 대응하는 방법이 다양할 뿐이다. 다양함 속에도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 아름다움과 일관성 있는 삶을 살도록 신념이 작동하게 한다. 신념을 지키는 데는 타오르는 불과 같은 성격도 있고 물과 같은 유연한 성격도 있다. 불은 성질이 사나워 위로 솟으며 모든 것을 불살라 없애기도 하지만 부드럽게 다루면 차가운 공간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하기도 하고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기도 한다. 물은 부드러워 아래로 흐르며 매우 좁은 부분까지 스며들어 생명을 공급하며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목숨을 유지하게도 한다. 하지만 부드러운 물이 홍수처럼 거칠어지면 재앙이 된다. 아래로 흐르는 물은 큰 배도 띄우지만, 배를 뒤집어 삼키는 것처럼 잘 적응하지 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신념도 이와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