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어른

나를 사랑하는 법: 조용히 눈을 감고 내 이성 아래에 잠들어있는 본능이라는 아이를 깨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착하다고 괜찮다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렇게 하고도 시간이 남거든 항상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말하며 꼭 안아준다.

고원수/ columnist, artist

미성숙한 성인은 세상이 참 버겁다.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들을 있는 그대로 내비쳤을 때 따르는 큰 책임, 그리고 그 결과가 외부에 미치는 영향은 지위나 역할에 따라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미성숙한 사고는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데 그 생각이나 행동들이 무심결에 외부로 투사되어 혼란과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흔하다. 필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애어른’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나 자신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봄날의 기억이다. 나무 그늘이 있는 의자에 앉아 독서를 하려는데 글자들이 깨알처럼 작고 불친절했다. 돋보기를 들고나와 책을 보려는데 개미들이 발등을 깨물며 성가시게 한다. 내려다본 땅바닥에는 흙이 볼록 솟아있고 그 가운데 조그만 구멍으로 개미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렸다. 돋보기에 햇빛을 투사시켜 개미굴에 비추었더니 굴 밖으로 나오려던 개미가 후다닥 다시 숨었다. 개미굴로 들어가려던 개미들도 뜨거워서 굴 입구로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미들의 숫자는 점점 불어나고 나는 킥킥거리며 그것을 즐겼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핑 돌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몸은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데 마음은 왜 이렇게 철부지 모습 그대로 인지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림1은 ‘초충도(草蟲圖)의 현대적 변용’으로 방향성이 설정된 그림이다. 그러나 제작과정에서 작가는 오토바이를 타고 즐겁게 출근하는 모습을 연상(聯想)하였고, 그 순간 작가 본성에 숨어있던 어린아이가 튀어나왔다. 그 결과 벌은 슈퍼맨 자세로 꽃잎을 날리며 꽃밭을 가르는 모습이 되었다. 작가는 작업에서 항상 나이에 걸맞은 진중한 모습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조그만 빈틈에도 숨어있는 어린아이가 튀어나와 장난 가득한 그림이 되곤 한다. 이는 마치 루소 작품(그림2)에서 보이는 것처럼 나 자신이 어린이 손에 들린 어른 꼭두각시 인형이 된 듯한 느낌이다.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듯한 이미지가 예술적인 영역에서는 창조성이란 모습으로 쉽게 허용된다. 그러나 공적인 일을 하는 공직자나 정치인에게서 이러한 미성숙한 어린이가 불쑥 나온다면 바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어느 ‘애 어른’ 공직자가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으로 국민 모두를 분노케 한 적이 있다. 실제 그리스의 중우(衆愚) 정치론에는 개돼지에 대한 언급이 있다. 정치가 부패하면 그 국가나 집단을 이루는 대중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즉 대중이 개돼지처럼 우매하고 미개하면 이러한 무리 속에서 만들어진 권력 또한 우매하고 미개하다고 보는 이론이다. 그러나 위의 공직자가 말한 개돼지 발언은 출발부터가 불손하다. 그는 어설프고 편협한 지식과 공무원집단의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이 결합되어 중우 정치론에서 언급된 것을 “권력 앞에서 우매한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라는 차별적 의미로 잘못 인식한 것 같다. 그 결과는 세상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큰 고통이 되었다. 만약에 그 공직자가 어린이였다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겠지만 특별한 지위에 있는 어른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의 의식 수준은 고학력으로 상향 평준화되어있다. 더불어 인터넷과 대중매체의 발달로 개인의 사소한 사건들까지 모두 들춰지는 세상이다. 심지어 대중들은 공직사회의 직급에 갇혀 있는 공직자나 당의 공천에 벌벌 떨며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정치인들을 바라볼 때 답답함을 느낀다. 요즘 세상은 “너 잘났냐! 나도 잘났다”라는 시대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항상 타인을 의식하고, 말조심하고, 감정을 제어해야 한다. 따라서 아이가 아닌 어른으로 산다는 것, 더구나 ‘애 어른’의 삶은 무척 고된 일이다.

그림3은 애 어른으로 제목 붙여진 작품이다. 작가는 “화내고 싶을 때 화내고 울고 싶을 때 우는 아이가 부럽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나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 힘들다며 감정의 표현이 자유로운 아이들이 부럽고 그러한 바램을 그림 속에서라도 아이가 되어 느끼고 싶어 한다. 

요즘의 어른들은 매우 지쳐있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식량과 에너지 수급의 불균형, 미국발 금리 불안정이 원인이 된 고금리 현상, 보수와 진보 진영의 편 가르기식 정치 다툼…. 세상을 향해 화도 나고 힘들어서 펑펑 울고 싶다고 목청껏 외치고 싶은 어른들이 매우 많다. 이런 시기에는 서로가 말을 아껴야 한다. 좋은 말도 비틀어져 들리고, 말이 많은 사람에게는 짜증이 난다. 차라리 요즘은 ‘욕하기 축제, 소리 지르기 축제’가 필요하다. 인간은 송곳니를 가진 야수이기에 가끔 온산이 흔들릴 정도의 포효를 해야 신체적 리듬이 원활해진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은 야수의 본성을 억눌렀다. 그렇기에 제한된 장소에서라도 가슴에 응어리진 것들과 일상의 답답함을 짐승이 포효하듯 밖으로 분출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세상이 건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