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유감(古書遺憾)1

  보물단지 아닌 애물단지가 있다. 보통의 경우 오래되고 추억이 간직된 물건들은 보편화되고 사용 후 노후로 인하여 개개의 가치가 떨어지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추억에 대한 회귀와 희소성으로 가치가  오르게 되어있다. 이때 일반적으로 희소성을 띄게 되는 일정한 시간은 60~80년 정도를 말한다고 한다. 즉 골동품으로 대우받기 위해서는 60~8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물건의 희소성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간이 존재 가능한 시간이라면 어떻게 될까? 80년을 버틸 수 없는 소재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면 어찌 될 것인가? 이런 물건에 대해서는 보존을 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경제적 부담인 비용이 필요하게 된다. 이때 투자되는 비용이 가치가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하는 2차적 문제에 다시 직면하게 되고 우리는 경제성과 효율성을 따져 보게 된다.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에서 제작된 대부분의 서적은 서구식 제조방식에 의해서 생산된 산성지로 제작되었는데 산성지의 수명은 60~80년 정도이다. 그 결과 일제강점하 이후 출간된 대부분의 우리 서적은 현재 파괴 되어가다 이제 그 생명력이 소실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정부관련 자료들은 탈산화작업과 디지털보존작업으로 그 명맥을 보존하게 되었지만 민간이 가진 자료들은 이제 소멸의 시기에 처해 졌다. 이들 서지자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탈산화작업을 해야 하지만 1킬로그램당 20만원 전후가 들어가는 비용을 민간 개인이 감당하기는 어렵다. 일부 고서적 수집가들에게도 부담이 되는 것이 책의 경제적 가치를 말하는 고서적 가격이 탈산화작업 비용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수집가들에게 인기 있는 50~60년대의 옛 교과서들의 경우 3-5권이 1킬로그램 정도가 될 터인데 시세가 권당 1-5만원 정도이다. 탈산화작업을 거친 후 보존은 되겠지만 경제적 가치는 없는 것이다. 경제적 가치가 없는 이유는 또 하나가 있다. 일제강점하에서 1970년대 까지 국한문 혼용제로 인하여 대부분의 책자에 사용된 한자들이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에서 90년대 이후 한자교육은 점차 소멸되어 이제는 한자사용이 극히 일부에서만 사용되다보니 일반인들에게 한자는 익숙하지 않다. 특히나 현대의 IT문화에서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적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재 중국이 한자의 특성으로 현대사회에서 퇴보하게 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비교되기에 현대 한국사회에서 한자의 필요성은 적다고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자로 반이상이 채워진 서적에 관심을 가질 수집가는 적을 것이다. 즉 수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70-80년대 나온 소년잡지인 “보물섬”, “어깨동무”, “소년중앙” 같은 한글 잡지가 더 경제적인 우대를 받는 실정이다. 세번째 사항은 공간의 문제이다. 80년대까지 우리는 크고 넓은 집을 선호해 왔다. 거기에 그런 큰집을 채워줄 공간적 요소로 커다란 책장이나 장식장들과 대용량의 가전제품을 선호하였으나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구는 빌트인형태로 숨겨지고 가전제품은 극단적으로 축소지향의 컴팩트화 되면서 주거공간에서 가구와 장식품이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는 경향이 유행이 되는 상황에서 서적이 차지하는 공간은 인간에게 버거워지는 부담이 되고 만다. 

  시대에 따라 인간의 가치관이 변하고 인간의 가치관에 따라 사물의 가치는 변한다. 사물의 가치가 변하는 것은 물건의 가격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가격이 달라지면 경제상황이 달라진다. 80년대에 이미 정보의 가치는 무한히 증대할 것이라 예견되었다. 하지만 정보를 담는 그릇인 서적을 대체할 전자 메모리 장치의 발전속도는 우리가 예상했던 수치를 이미 넘어선지 오래 되었다. 수 만권의 서적에 담긴 정보도 손바닥 안에 보존할 수 있는 기술력이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서적이 가지는 의미는 존재적으로 경제적으로 공간적으로도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관심을 가질 것인가? 나에게 이들 고서의 존재는 부담이 되고 있다. 분량도 그렇지만 가치도 문제고 버릴 수도 보존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김윤성

전 신안산대학교 교수
전 코오롱건설 근무
대한토목학회/대한안전경영과학회/한국건설관리학회 회원
국토건설부 장관 표창/대통령 표창 수상
대한토목학회 저술상 수상/대한안전경영과학회 학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