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을 던져버리는 사람들

강미경(시인, 여행작가) 

조선 선조 때, 한 소년이 고개를 넘어 공부를 하러 다녔다. 매일 고개에서 여우가 미녀로 둔갑하여 소년을 유혹했다. 글방 선생께 아뢰니, 그 미녀의 입 안에 있는 구슬을 빼앗아 삼키면 장성해서 크게 대성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소년은 훈장 선생이 가르쳐 준 대로 했고, 미녀는 여우로 변하여 울면서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김포 감정동 여우재 고개에 얽힌 전설이다. 그 소년이 어떤 방법으로 미녀의 입안에 든 구슬을 빼내었는지는 전해지질 않는다. 힘으로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하여 구슬을 빼앗았는지, 부드러운 키스로 미녀의 구슬을 소년의 입으로 옮겨 놓았는지는 알 수 없다. 후손들의 상상력을 위해서 남겨준 선물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그 소년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순절한 중봉 조헌 선생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도. 
 
 여우재를 지나 버스로 서울로 향하는 길이었다. 또 하나의 보물이 눈에 들어왔다.
[김포독립운동기념관]이라는 이정표가 그것이다. ‘김포에도 독립기념관이 있다고?’ 강화도에 가느라 수 십 년 동안 김포를 지나다녔어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는데.... 의아한 마음에 이정표를 따라 가보았으나, 굳게 입을 다문 바위처럼 문이 닫혀있었다. 저녁 6시40분, 개관시간이 넘은 것이다. 
놀라운 마음에 인터넷을 열어 보니, 2013년 3월 1일에 개관을 했다고 컴퓨터는 말해주고 있다. 김포는 예부터 평야가 발달된 곳이니, 이곳을 일제가 착취하지 않았을 리 없고 농민들이 독립운동을 했을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라는 짐작 앞에서 마음이 먹먹해 왔다. 당연한 방정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자세히 검색을 해보았다. 
 그리고, 3일 뒤 인터넷 주소만 갖고 길을 나섰다. 가끔씩 서울이 싫어질 때마다 찾아갔던 김포. 그곳은 내게 낯선 타지가 아니다. 푸근한 친정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할머니 산소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서 어떤 독립운동이 일어났는지 직접 가서 봐야한다는 강박감이 나를 재촉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포로 가는 길은 푸른 논밭이 길 양옆으로 뻗어 있었다. 농촌 들판을 보고 오면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던 기억. 네비게이션이 잘못 인도했는지 올림픽대로를 지나 김포가도를 달려도 김포평야는 보이지 않고, 잘 뚫린 도로에 아파트들뿐이다.  아파트 숲 너머 어딘가엔 논밭이 꼭꼭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위로를 하며 기념관을 찾아 달렸다. 기념관은 양촌읍 양곡리 휴먼시아 7단지 안에 있었다. 고다니마을이라고 했다. 

 物我相通, 내가 정성을 들이면 상대를 알 수 있고, 상대방이 감동한다. 그것은 물(物)과 내(我)가 서로 공동된 이치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만물이 하나의 이치를 갖고 있고, 이 하나의 이치가 태극이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인지, 기념관 앞에는 태극기를 커다란 타일로 붙어있었다. 사선 아래 부분은 생략한 채. 생략된 부분은 관람객들이 와서 손으로 받쳐주고 후손들이 떠받쳐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손으로 태극기를 떠받치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김포출신의 항일 의병들에 관한 설명을 읽어보니, 김포는 일제 식민 체제 아래 끊임없는 저항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이 강압적으로 조선의 군대를 해산하자 그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독립군과 광복군에 가담하여 무장항쟁을 계속하게 된다. 1907년 8월 군대해산은 김포, 통진, 고양, 교하, 풍덕, 부평 지역에 영향을 미쳐 의병 운동의 불길이 일기 시작한다. 그 의병들 중에 김포 출신의 의병은 강상봉, 김경운, 신관수, 조금봉, 이종근, 유명규 등이다. 
이러한 저항 의지의 저력을 갖고 있던 김포였다. 일제는 기름진 김포평야를 가만히 놓아둘 리 없었을 것이다. 토지조사사업과 산림정책시행으로 도지권과 영소작권 등의 권리를 모두 박탈당한 김포 농민들의 분노도 높아만 갔으리라. 토지를 상실하고 일본지주회사 농업 경영 진출에 따라 생존권이 위협 당하던 농민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만세운동은 소작쟁의, 일본인 지주와 식민체제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으로 이어졌으리라. 
 김포는 예부터 한강을 끼고 있는 비옥한 평야로 유명한 곳이다. 삼국시대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한강유역을 차지하려고 싸움이 빈번했다.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했던 때, 백제계 지명이었던 검포현(黔浦縣)을 경덕왕이 김포현(金浦縣)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삼국사기에 전한다. 
 고려말 때 지금의 양천 공암나루 근처에 의좋은 형제가 살았다. 우연히 나룻터에서 금 두덩리를 얻어 하나씩 형제가 나눠 갖는다. 손들과 함께 나룻배를 타고 가다가 아우가 금덩어리를 슬그머니 물 속에 던져 버린다. “ 형님, 우리가 비록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우애있게 지냈습니다. 이 금덩이로 인해 게을러질 뿐 아니라 더 큰 욕심으로 나쁜 마음이 일어나고 형제의 의가 갈라지고 말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금덩이가 싫어지고 무서워서 물에 던졌습니다. ” 이에 형이 “ 네 말이 옳다 ”라고 하면서 형도 금덩이를 던져버린다. 나룻배에 탔던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형제의 우의에 감탄하여 이곳을 투금포(投金浦)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국 민속 문화 대백과 사전은 말하고 있다. 황금을 마다하고 스스로 물에 던졌던 아름다운 김포의 형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금을 던진 곳이라 하여, 쇠금자의 금을 김으로 고쳐 부른다고 김포의 지명에 대한 유래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연유로 김포로 불려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금덩이를 버려도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 먹고 살 걱정이 없을 정도로 김포평야는 땅 속에서 금덩이를 농민들에게 안겨줄 정도의 비옥한 땅이라는 것이다. 이런 기름진 옥토, 생명의 젖줄인 금싸라기 땅을 일제에 빼앗긴 그 시대 농부들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강미경 프로필 : 서울출생,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월간 <시문학> 등단, 격월간 [여행작가] 편집위원
                충헌문학상 수상(수필 부문)
                제1회 시민이 드리는 호국특별상 수상(시부문)
                시집 : [별의 계단], [철모와 꽃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