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임시정부에 들러

姜美京(시인, 여행작가)
                                               
 방학을 이용하여 중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 이 곳 저곳을 검색하다가, 어느 시인의 조언을 듣고 상해에 다녀오기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중국 여행은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하므로 예약을 하고 1주일을 기다려야만 했다.   
  중국 여행 여러 곳 중에 상해를 선택했던 데에는 임시정부에 가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상해 임시정부는 여행 상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여행 첫날부터 여행사 가이드에게 단단히 부탁을 해놓았었다. 임시정부에 꼭 데려가 달라고......
 
 임시정부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여행 3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날  아침에 일어나 나는 몹시 괴로웠었다. 전날 잘못 먹은 게 있었는지, 아니면 오지 않은 잠을 청하느라 수면제를 강하게 먹고 잔 탓인지 내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호텔 조식도 놓친 체 가이드의 안내대로 주자각에 들러 쪽배를 타고 운하를 구경한 뒤, 상해에 있는 중국 옛 거리와 중국 예술인의 거리(타이캉 루)를 둘러본 후, 한국의 청담동에 해당한다는 신천지(新天地)를 둘러보게 되었다. 마치 프랑스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이탈리아에 온 것 같기도 했다. 외국풍의 건물과 외국 간판의 상점들과 고급 레스토랑과 바(bar)들이 즐비했다. 화려함 그 자체였다.

  여행사 가이드는 일행을 신천지에 놓아둔 채, 나 한사람만을 임시정부로 데려가 주었다. 신천지 상점들에서 큰 길을 건너 약 백 미터 정도를 걸은 것 같다. 허름한 연립주택이 밀집해 있는 곳에 푸줏간에 날고기도 걸려 있고, 도둑을 막으려는 듯 집집마다 철창을 빼곡하게 두른 속에 빨래들도 펄럭였고...... 그 줄 끝에 내 나라 임시정부 청사가 있었다.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었다고 입장을 시켜주지 않으려 했다. 가이드가 사정사정을 한 뒤 옆문으로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친절한 한국인이 안내해 줄 것을 기대한 것은 잠시였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중년의 중국 여인이 중국어로 신발에 비닐을 끼우라고 했다. 사진도 찍지 못하게 제어를 했다. 
내나라 정부였던 곳을 방문한 한국인인 내가 중국 여자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 그렇지. 여기는 중국 땅이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니 이런 제제가 있을 수 있겠구나! ’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르며 들어가게 해준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얌전히 관람을 시작하였다. 
  
 태극기가 벽에 크게 붙어 있었고, 김구 선생이 집무실로 썼다는 좁은 방과 부엌, 접견실인 듯한 곳을 둘러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이렇게 허름한 곳에 세를 얻어 셋방살이를 했을 그 시대 우리의 현실 앞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있은 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후부터 탄압과 감시가 심해져서 상해에서 항주, 난징, 충칭까지 옮겨 다니며 숨어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설명을 읽으니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 시대 상해까지 와서 임시정부를 열고 독립을 위해 고분분투했을 독립지사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져내렸다. 멍들었던 우리 역사의 살점들이 시퍼렇게 쑤셔오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오판으로 나라가 일본에 넘어가고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이 저곳에서 고생하며 독립을 위해 애쓴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렸다.
  하여 시라도 한편을 지어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혈 
         - 상해임시 정부 청사에서
                                                                                           강소이 미경  

상해 임시정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성금 함에 퇴계선생 그려진 지푸라기 한 닢 넣었다
눈보라 치던 밤을 이제야 찾아온 
오늘 나는

보슬비 
희뿌연 상해 하늘에는
허름한 집집 
널어놓은 빨래도 마음대로 펄럭이는데
눈치 보던 태극기
여 저기 어둠을 더듬던 다섯 손가락
세 들어 숨죽인 시커먼 푸른 멍, 살점들동방명주 타워 그늘신천지 야경 불빛
천국 불꽃들이 번들번들하늘 맑아 푸르른 상해 하늘 한켠에그들 숨소리반백년을 울어도반백년을 당신에게 허리 꺾어도그 소리만 어혈처럼 깊다                        - 강소이 시집[철모와 꽃양산](범우사) 72쪽     지난 여름에 충청도 예천에 있는 윤봉길 의사의 생가( 광현당, 저한당)와 그의 사당(충의사)에 다녀온 뒤 그에 대한 시를 써서 한중문학상을 받았었다. 그 윤봉길 의사도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지기 전, 이곳에서 김구 선생과 태극기 앞에서 맹세했었을 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숙연해져왔다. 
 25세에 나라 위해 무궁화 목숨을 던졌던 윤봉길 의사! 그가 일본에서 총살당한 후에 그의 둘째 아들이 유복자로 태어났다가 두 달 만에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더욱 더 마음이 아파왔다. 
 꽃다운 아내와 어린 자식과 뱃속에 자식을 놓고 나라 위해 목숨을 던진 윤봉길 의사, 이곳까지 와서 임시정부를 만들어 독립 운동에 전 생애를 불살랐던 김구, 안창호, 서재필, 이동녕 등...... 그들에게는 자신의 안위와 가족과 단란한 행복 보다는 조국의 독립이 우선이었나 보다.
  참으로 위대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옆에 있던 여행사 조선족가이드의 설명에 다시 한 번 눈물이 흘렀다.“ 그 당시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사무실 월세도 꼬박꼬박 내지 못했었고 하루에 한 끼씩밖에 먹지 못했지만 간판은 내리지 않았었답니다.” 독립을 위한 그들의 희생이 얼마나 대단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시 정부를 나오기 전에 성금함에 지폐 몇 장를 넣으면서 왜 그리도 손이 부끄럽던지....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 면세점에서 샀던 외제 화장품이 왜 그리도 부끄럽게 느껴지는지? ‘한국에서도 똑같은 성능의 화장품이 생산되는데 구지 외제 화장품으로 외화를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을 위해 저토록 몸부림쳤던 우리 선조들 앞에 너무도 죄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편협한 국수주의에 불과할까?  
  
  우리나라는 분명히 독립을 했다. 정치적인 자주 독립국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거리에 나가 보라. 우리 글, 한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판의 40% 이상이 영어로 쓰이어진 것들이 버젓이 걸려 있지 않은가?. 빵집 이름, 커피 전문점 이름, 옷가게, 술집 이름, 심지어 병원, 약국 이름들까지...... 우리나라가 독립국임이 분명하다면 이 땅의 주인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분명하다면 거리에 간판들부터 한글로 써야하지 않을까?
  남의 나라에서 셋방살이 하던 시절, 중국 땅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한글 간판을 걸고 독립을 위해 일했던 저들의 마음을 만분의 일이라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독립을 위해 흘렸던 피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글을 자주적으로 써야하지 않을까? 
영어로 된 간판을 걸어 놓아야 그럴 듯 해 보이고, 멋있어 보인다고 여긴다면 우리들은 참으로 주인의식이 없는 국민들일 것이다. 자긍심이 없는 국민들일 것이다. 
독립을 위해 전 생애와 목숨을 바쳤던 저들 앞에 미안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는가? 
  
 국제도시라는 상해를 여행하면서 아무리 유심히 찾아보아도 영어도 된 간판은 1% 정도 밖에 볼 수 없었다. 사회주의 국가라서 국가의 간섭과 제제가 심해서 그런 걸까?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서 우리글을 버리고 영어 불어로 된 간판을 사용하는 것도 자유롭게 허락해 주고 있는 것인가?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9세에 죽어간 우리의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자. 독립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바친 수 많은 목숨들을 생각하자. 그들의 피 값으로 얻은 독립이 아닌가?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이 나라의 주인이 우리 한국이라면, 거리의 간판부터 우리 글로 써야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라면, 한글 밑에 작은 글씨로 영어로 한 줄 더 적어주는 것은 어떨까?
  한글에 대한 절개를 지키는 지조 있는 국민이 되길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란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 상해 동방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