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알뜨르 비행장

강 미경 (시인, 여행작가)

때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에머랄드빛 제주 바다를 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나는 제주도를 찾았다. 부산 여행을 마치고 서울행 기차를 타는 대신, 김해공항으로 향한 것이다. 
부산에서 바다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제주도의 바다를 보아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도 여행 첫날 나는 바다 대신 무오 법정사 항일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어 모슬포에 있다는 알뜨르 비행장으로 향했다. 안내해주던 친구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모슬포로 데려가 주었으나 비행장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달려도 이정표 하나, 안내 표지판 하나 없었다. 

 송악산을 바라보며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니 바다에 떠있는 ‘형제의 바위’만 우리를 맞는다. 얼마쯤 달리다 보니 송악산 북쪽, 대정읍 들판에 폐허처럼 펼쳐진 알뜨르 비행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은 국방부 소유이니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을 뒤로 하며 보라색 양배추가 심어져 있는 배추밭을 가로 질러 격납고를 찾아낸 것이다. 멀리에 있는 것까지 20개가 넘는 것 같다.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지어진 비행기 보관 창고 안에 뼈대만 남은 녹슨 철근 잠자리 비행기가 들어 있다. 마치 굵은 쇠뭉치를 엮어 놓은 철망 같다. 거의 7~80년 전까지 중국하늘과 태평양을 가로 질러 진주만까지 날아다니던 비행기였으리라. 
   

천혜(天惠)의 섬 제주도는 수려한 풍광과 다양한 해산물의 보고(寶庫)를 안고 있는 보물섬이다. 비단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인처럼 제주도는 그렇게 조용히 남해 가운데 앉아 있다. 그러나, 멋진 겉옷을 한 겹 벗겨보면 여기저기에 짓무른 상처를 안고 있는 여인의 속살처럼 제주도는 일제 강점기의 상흔을 안고 있다. 
원시시대부터 왜놈들의 노략질에 시달려왔던 제주도였다. 일제 강점기 때라고 제주도를 비껴갔겠는가? 일본 섬에서 한반도로 넘어오는 길목에 놓인 징검다리처럼 일제는 그렇게 제주도를 짓밟았다. 
해녀들이 착취당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해서 해녀들의 항일 독립운동이 일어났었다. 조천 만세운동 보다 앞서서 무오 법정사 항일 운동도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운동으로 제주에서 일어났다. 토지조사사업으로 제주도 농민들은 농토를 빼앗겼다. 농사에 그리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제주도 땅 중에 제법 너른 농토, 알뜨르(제주도 방언으로 앞 뜰)를 일제는 빼앗는다. 그리고 1926년부터 10년에 걸쳐 그곳에 비행장을 만들고 20여기의 격납고와 고사포 진지, 지하 뱅커와 통신시설, 비행장 활주로를 만든다. 길이가 1km가 넘는 거대 지하호도 미로처럼 뻗혀 놓는다. 군사 비행장은 알뜨르 비행장만이 아니었다. 교래리 비행장 등 4곳이 만들어지거나 계획되었다. 세계지질공원인 수월봉을 비롯한 해변가는 자살특공기지가 숨을 죽이고 있다. 100곳이 넘는 오름 지하는 지하갱도로 뚫렸다. 탁월한 경관의 제주도는 전쟁야욕으로 파헤쳐졌다. 이 때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노동력을 착취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사 기간 내내 제주도민들이 받았을 고통을 상상해 보자. 농토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그들은 수십 년 동안 시간과 노동력을 빼앗겼다.  

 그리고, 1937년에 일본은 중일 전쟁을 일으킨다. 만주사변을 통해 베이징 일대까지 지배하고 있던 일본이 노구교사건을 일으켜 중화민국에 총공격으로 이어진다. 삽시간에 난징까지 함락되고 난징대학살을 일으킨다. 베이징, 난징, 상하이, 홍콩 등 대도시를 점령하고 장기전(8년간)의 양상을 보인다. 이 전쟁 내내 알뜨르 비행장은 중국 대륙 폭격을 위한 도항기지로 이용된다. 알뜨르 비행장에서 중국 대륙 폭격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가사키현 오무라 항공기지에서 난징에 대한 폭격에 나섰고, 해양 폭격에 나선 전투기의 귀착지는 알뜨르 비행장이었던 것이다. 이후 제주도로부터 난징 공습은 36회, 연 600기에 달하며 투하 폭탄 총계는 33톤이 넘었다. 제주도 알뜨르 비행장에서 난징과 상하이, 베이징까지 공습을 일삼았던 증거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알뜨르 비행장에서의 공습으로 상해와 난징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알뜨르 비행장은 중 · 일 전쟁, 태평양 전쟁과 관련된 전쟁 유산으로 서귀포에 아직도 남아있다. 20세기 전쟁의 역사를 관통하는 중심 무대 가운데 하나가 제주도였다. 태평양 전쟁 시기에 제주도에는 일본군 7만 5천여 명이 진주했었다. 만주, 일본, 한반도에서 중무장한 병력이 제주도에서 집결한 것이다. 
 
 광복이 된 지 70년이 되었다. 제주도는 입을 굳게 다물고 전쟁 기지로 이용되었던 아픔을 삼키고 있다. 
제주도는 세계 유산의 섬이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과 세계 지질 공원, 생물권 보전 지역 등 제주의 가치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세계인에게 인정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배의 야욕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 여러 나라로 번져 가는데 제주도가 병참기지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일제는 만주침략과 중일 전쟁에 이어 1941년 12월 미국령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다. 이에 분개한 미국이 일본 본토 두 곳에 원자폭탄을 투여하면서 중일전쟁은 끝이 난다. 그 때까지 내내 제주도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은 병참기지로 이용되다가 1945년 8 · 15해방이 되어서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알뜨르 비행장, 너른 겨울 밭에 격납고들의 모습이 흉물스럽다. 일제 강점기 때의 전쟁의 유산(遺産)을 고스란히 안은 채 지금은 인근 주민들이 와서 밭농사를 짓고 있다. 
일본이 대륙 침략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까지 제국주의의 야욕에 희생이 되었던 제주도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본 제국주의를 고발하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증거물을 안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들판, 황량한 겨울바람이 차갑게 볼을 때리며 제주도의 간단치 않은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 후손들은 낭만과 멋을 찾아 제주도를 찾는다. 마음을 쉬고 싶거나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휴양지로 찾는 곳이 제주도이다. 주말이면 전국에서 제주도로 쉬러오는 인파들이 몇 천 명씩 된다고 한다. 중문단지에 모여 있는 고급 호텔이나 바닷가 펜션에 머물면서 제주도의 낭만을 즐기다가 뭍으로 돌아가는 우리들. 그러나, 제주도의 미각과 이국적인 향취만을 즐길 줄 알고,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제주도가 겪었던 강점기 때를 살다가신 조상들의 영혼이 서글프지 않으실까? 그들이 받았던 고통과 상처 위에 제주의 낭만이 있다는 것을 제주의 은빛 에머랄드 바다는 소리 없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천혜향의 달콤한 과일즙이 입 안 가득 번지는 이면에는 농부들의 땀이 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 후손들은 부러울 것 없는 풍요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시대를 억울하게 타고난 선조들이 겪었던 아픔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할 것 같다. 그들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셨다. 내 친할아버지가 겪은 일처럼 아파하며, 우리에게 아픔을 주었던 그 시절의 일본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지금도 역사를 왜곡하며 미개한 조선을 개화, 문명화, 발전시키려는 의도였다고 말하는 일본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제주도 해안에서 여름 해수욕을 즐기는 휴가철에도 우리는 알뜨르 비행장과 오름 지하마다 뚫린 지하 갱도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절대로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제주도를 일제가 군사기지화하려 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억울하게 착취당하고 중일전쟁에 징병되었던 청년들과 정신대에 끌려갔던 위안부들도 모두 중일 전쟁 당시였다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번 제주 여행은 씁쓸한 역사의 뒷면을 파헤쳐 본 여행이었다. 제주의 낭만만을 찾던 철없던 또 다른 나에게 알뜨르 비행장은 호되게 야단을 치고 있다. 

 제주도 알뜨르 비행장에서 불던 황량한 겨울바람이 아직도 거세게 볼을 때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