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만에 나는 향기 

- 무오 법정사 항일 운동

                                                     
강미경(시인, 여행작가)

 여행지를 떠나올 때는 언제나 그곳에 아쉬움이 남는다. 마치 사랑하는 이를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남겨두고 오는 기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아쉬움이다.
지난해 제주도 여행이 꼭 그랬다. 조천리 항일기념관과 해녀박물관, 이중섭 미술관, 추사 김정희 유허지, 서귀포 외돌계와 조섬, 밤섬을 다 보고 왔었다. 그런데, 꼭 봐야할 것을 빼먹고 탐방하지 못하고 왔다는 걸 서울에 와서야 알았다. 
 
 

조천리 만세운동과 해녀들의 독립운동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그 보다 앞서서 일어났다는 무오 법정사를 둘러보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해서 겨울 제주 여행을 다시 떠났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겨울 바다보다 더 절실히 보아야 하는 곳이 무오 법정사였다. 제주 중문에서 20여분 차를 달려 법정사를 찾아갔다. 안내표지판을 따라 한참을 달렸으나 사찰은 보이지 않았다. 제주도 전체가 눈에 덮여 하얀 풍경화 같았다. 눈 속에서 나타나 주어야 하는 사찰의 기와 지붕 대신, 법정사 관리 사무실만 덩그마니 소나무 속에 앉아 있다. 차에서 내려 눈길을 걸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려했으나 문은 굳게 닫혀있다. 
어디선가 까마귀 우는 소리만 요란하고 한라산 둘레길이라는 푯말을 지나 등산객이 지나가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관리소 앞에 세워진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라는 안내판을 읽으며 허망한 맘을 달래며 차를 돌려 도로를 내려왔다. 길 한쪽에 ‘법정사 가는 길’이라는 한 귀퉁이 녹슨 흰 색 표지판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 저 안으로는 차가 못 들어갑니다. 그냥 바다나 보러 갑시다 ” 라고 일행은 말했지만, “ 차가 못가면 발이 가면 되지요 ” 나는 고집을 부리며 차에서 내려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발자국 하나 없는 눈을 밟으며 발목이 푹푹 빠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며 걸었다. <법정사>라는 사찰의 위풍당당한 기와지붕 대신 시골집인 듯 한 허름한 슬레이트집이 한 채 나왔다. 눈에 파묻힌 이끼 낀 계단을 올라가 보아도 절의 현판은 보이지 않았다. “ 계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메아리. 살며시 문을 열어보니 부처님이 앉아 모셔진 것으로 보아 사찰은 틀림없는 사찰이다. 건물 왼쪽에 자그마한 범종도 걸려 있다. 
‘ 참 이상하다 ’는 생각을 하며 범종을 쳐보아도 누구하나 나타나는 사람은 없고 범종 소리만 한라산까지 퍼지는 것 같았다. 
‘ 어찌된 일일까? ’ 적막감과 허무함이 몰려왔다. 무오 법정사를 찾아 제주도까지 왔는데 현판도 사람도 없다니.....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계단을 내려오다 보니 
‘무오 법정사 발생지’ 라는 작은 팻말이 눈 속에서 오른쪽을 또 가리키고 있다. 
귀신에 홀린 것 같다. 그러나, 표지판을 따라 가보아야 하는 게 맞은 일이다. 신발에 눈이 들어가 양말이 젖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눈에 덮인 돌, 아니 크고 작은 바위를 밟고 내려가 보았다. 그래도 밧줄이 메어져 있어서 이 길로 가면 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눈 속에 덮인 나무와 바위 그리고, 샘물. 무너진 돌담처럼 돌이 덩그마니 쌓여있고 그 주변은 목책이 둘러져 있다. 무오 법정사 항일항쟁이 일어났던 곳이라는 설명 판이 고요 속에 놓여있다. 결국 절은 불타고 축대와 건물 흔적, 터만 남아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적막공산이다.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이 1918년에 일어났으니 지금부터 97년 전의 일이다. 거의 100 여 년 전에 산 속 법정사 절에서 스님들과 불자, 농민들이 새벽 4시에 일으킨 항일 운동이다. 1919년 기미 3·1운동 보다 5개월 먼저 일어났다. 고(故) 혜관 스님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전통 사찰 총서). “ 김연일, 강창규, 박주석 등은 제주도를 배의 닻가지로 보았고, 닻가지가 먼저 움직여야 배가 움직일 수 있듯이 제주에서 먼저 만세 운동을 벌여야 우리나라가 움직인다고 믿었다. ”  경주 기림사 출신의 김연일 스님은 제주 무오 법정사에 주지로 모셔졌다. 항일의식이 강했던 김연일 스님은 강창규, 방동화 스님 등과 긴밀히 교류하면서 한라산 산천단에서 의형제를 맺고 항일투쟁을 일으켜 민족을 구할 것을 맹세하고 1918년 여름부터 법정사를 근거지로 항일 거사 성취를 위한 백일기도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던 것이다. 

 한라산 백록담의 하늘빛 물줄기가 영실의 숲으로 흘러들던 곳. 이곳은 원래 고려시대 거찰이었던 법화사의 산내 암자였다. 이곳에서 스님들과 불자들과 400여 농민들이 모여 일제에 항거하는 항일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를 구하며 참선과 진리 탐구에 전념해야 할 스님들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운동. 일찍이 나라가 위급할 때면 구국운동에 참여해 왔던 불교였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나 서산대사 뿐 아니라 의병에도 가담하여 나라를 구하고자 한 것이 불교였다. 그런 차원에서 한일 합방 후 일본이 제주도에도 침략하여 조선 토지조사사업을 벌이고 농토를 몰수한 데 대해서 뜻있는 승려라면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진리에 자신을 던지는 이들이 참된 구도자(求道者)의 모습일테니까 말이다. 먼저 깨달은 승려들이 이번에도 나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이에 동조하여 항일 독립운동이 제주도에서 최초로 일어난 것이다. 
 서귀포 순사 주재소와 중문 주재소의 전선을 절단하여 일인들의 연락선을 끊고, 주재소를 불 지르고 주재소장 요시하라 및 일본인 3명을 납치한 후 무고하게 감금되었던 13명의 조선인을 석방한 것이 전부였다. 그들의 무장 항쟁은 거기까지였다. 그들이 손에 든 것은 곤봉과 농기구가 전부였고 일본은 말을 타고 조총과 칼을 들이댔다. 항쟁에 참여한 조선인이 400명에서 700명은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 66명이 목포지청으로 송치, 48명이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19년 2월 4일 31명이 선고되고, 15명이 벌금형, 재판 전에 2명이 옥사, 수감 중 3면이 옥사, 18명이 불기소되었다. 
법정사 항일 항쟁의 주동자였던 김연일 스님도 그 자리에서 피체되어 재판을 기다리다가 옥에서 순국하였다(당시 48세). 법정사 절은 짐작했던 대로 일본 순사에 의해서 불태워지고 폐사되었다. 행방 후에도 복원되지 못한 채 마을 사람들의 산신기도처로 각광을 받아왔다. 20수년전에 이곳에 천막을 치고 산신기도를 하던 미만화보살이 기존 법정사 터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법당과 요사채를 지어 법정사라 명명하고 2002년 태고종 제주교구 사찰로 등록하고 줄곧 이 절을 지키며 기도해 왔다.
 
 법정사 터를 둘러보고 차 있는 곳으로 나오는 길에서 우리 일행은 한 스님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그 스님에게서 들은 내용은 지금의 법정사는 항일운동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기도도량이며 그 때를 기리기 위해서 붙인 이름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 우리 나라 최초의 항일항쟁운동이 일어났던 곳을 후손들이 이렇게 돌보지 않아도 되는가? ’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 한 켠이 아렸다. 젖은 발이 시려서 따갑기까지 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골몰하느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곳은 최초의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법정사 항일 독립운동은 제주 조천 만세운동이나 해녀들의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것에 직접적인 강력한 영향력을 주었던 곳이다. 그런데 이곳을 국가에서 전혀 보호하지 않을리 없을텐데..... 뭔가 잘못 찾아간 느낌이
내 뒷덜미를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중문단지에 있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서귀포 서부도서관을 찾아 관련 서적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경찰은 무오 법정사 사건의 파급을 우려하여 운동의 주도세력을 혹세무민의 유사 종교단체로 규정하여 탄압하려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일본의 노예처럼 살았던 조선인들은 ‘다가올 후천 선경’ 세계에서 한민족이 주역이 된다는 메시아적 구원 사상, 즉 새희망(보천교)을 구름처럼 믿게 되었고 그 종교는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다. 보천교(普天敎)를 일본은 독립운동 비밀 결사단체로 보고 1936년에 강제 해체하게 된다. 그리고, 무오 법정사 항일 운동을 당시 신흥종교였던 보천교가 일으킨 시위운동으로 위장하여 덮어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는 법이다. 향을 쌌던 종이에서는 반드시 향내가 나기 마련인 것이다. 무오 법정사 투쟁운동은 1992년 재판 기록과 수형인 명부가 발견 되어 역사에 붉게 두드러지게 되었다. 75년 만에 그 진상이 밝혀진 것이다. 선각 불자들의 항일 항쟁 역사가 어둠 속에서 잘못 왜곡 보도되었다가 찬란하게 역사 앞에 진면목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여러 자료를 토대로 2008년 ‘ 법정사 항일 운동의 불교사적 의의 ’를 발표한 김광식 박사는 “법정사 항일 운동은 민족과 국가를 지키기 위한 스님들과 불자들의 결단이자 행보였다 ”고 평가하고 있다.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이 아니며, 위장한다고 속여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는 법이라는 것 ”이 무오 법정사 항일 운동이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또 다른 메시지인 것이다. 민족 불교로서의 선각 불자들의 구국운동은 혜관 스님의 증언대로 항일 구국, 독립운동의 닻은 제주에서부터 올려졌다. 뒤늦게야 역사에 드러났지만, 분명 무오 법정사 항일 운동은 제주 조천 만세운동과 해녀들의 독립운동에 견인차 역할을 했음이 틀림없지 않은가? 또한 기미 독립운동에도 기초가 되었음이 자명한 일이다. 이 땅에서 일어난 최초의 독립운동이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종교적 차원의 운동이 아니었다는 것도 관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항일 투쟁이며 국권회복 운동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밥그릇을 빼앗긴 제주 농민들의 무서운 분노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