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우뚝 선 인문예술가(人文藝術家)

인물화아카데미 ‘그림패’  황재종 작가

지난 30년 동안 인물화(人物畵)에 청춘을 바친 인물화가가 세간에 화제다. 미대 졸업 후 사반세기에 걸친 야인(野人) 생활을 통해 약 2만 여점의 즉석초상화를 그리면서 대중들에게 친숙한 황재종 작가가 그 장본인이다. 그는 2000년에 설립한 인물화아카데미그림패에서 누드크로키를 강의하고, 연세대학교 해부학교실에서 해부학을 연구하면서 실사구시(實事求是)로 인물화에 천착(穿鑿)하고 있다. 인문학적인 지성과 예술적인 감성을 두루 갖춘 이 시대의 르네상스형 예술가로 주목받고 있는 인문예술가(人文藝術家) 황재종, 그를 만나 보았다.

. 거리의 화가가 되다
1990년 12월 어느 날 이른 새벽, 황작가는 잠결에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들었다. 재술(載術) 형이 감전사고로 급서했단다. 그는 대학시절 동안 물심양면으로 황작가를 후원하던 스폰서였다. 미대를 졸업하면 파리 유학을 지원해주기로 했는데, 졸업을 코앞에 두고 그는 속절없이 세상을 등지고 만 것이다. 졸지에 황작가는 겨우내 공사판을 전전하다가, 이듬해 봄에 화구를 챙겨들고 거리로 나앉았다. 보헤미안처럼 전국을 유랑하다가 이윽고 유럽으로 떠났다.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여러 이방인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비로소 인간의 다양성과 열린 세계에 대하여 눈을 떴다. 더불어 그랑쇼미에 아카데미에서의 인물화 연구는 죽비로 몽매를 깨치는 각성의 연속이었다. 남녀노소 구분 없는 자율적인 참여와 시스템, 저 역동적인 누드모델의 프로정신 - 그는 꿈을 꾸었다. “한국에 홍익인간을 위한 열린 미술대학을 만들리라!”

2. 평생미술교육, 인물화아카데미그림패
황재종 작가는 대학원에서 <인물화 표정-표현 연구>라는 논문으로 인물화 표현의 이론적인 근거를 학술적으로 정립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 12월에 인물화아카데미그림패를 설립했다. 그림패의 캐치프레이즈는 <그림같이 살아요, 평생!>이다. 이러한 전인적인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미술실기교육은 미대입시, 미대편입, 유학미술, 취미미술 등에 실용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그림패에서는 나이, 학벌,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양질의 실기교육을 받을 수 있다. 입시위주의 주입식 예술 교육에서 탈피하여 개개인의 타고난 인성을 일깨우고 저마다의 예술 감각을 연마할 수 있도록 지도하면서 그는 인물화 전문대학 설립을 꾀하고 있다. 이 같은 그림패의 혁신적인 미술교육론은 장수시대를 대비하는 실용적인 대안미술교육기관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으며, 창의성을 요구하는 새로운 미술교육의 모범이 되고 있다.

. 누드크로키의 새로운 발상과 표현
황작가는 대학 재학시절에 학과수업 외에, 개인적으로 모델을 두고 누드와 인체드로잉 사생을 통해서 밀도 높은 기초드로잉을 익혔다고 한다. 그렇게 실물 모델을 보고 매일 그리는 드로잉 습작이 오늘날 복잡한 인물군상작업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스스로 진단 한다. 인물화아카데미그림패에서 15년 동안 매주 누드크로키 강좌를 진행하면서 꾸준히 연마해 온 누드크로키 작업은 이즈음 한국 화단에 독창적인 조형 형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여러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재구성한 군상 형식의 고난이도의 새로운 조형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의 누드크로키에는 단순히 맨몸의 형태학적 미감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공간구성이 유기적으로 조직된 인물화로서의 격조를 느낄 수 있으며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4. 사람을 해부하다
황재종 작가는 인물화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사람해부학에 대한 체험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그리하여 연세대학교 해부학교실에서 정인혁 교수의 엄격하면서도 자율적인 지도를 받았다. 여러 카데바(시신)를 해부하면서 사람의 몸에 대하여 실무적인 탐구를 하였다. 사람해부학에 대한 연구는 단순히 사람 몸의 구조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인물 내면의 고유한 정신성을 발현할 수 있는 직관의 근력을 정예하게 단련하는 데 의의가 있다. 이렇게 연마된 내밀한 시지각은 화면을 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재구성하는 조형의식을 활성케 한다. 나아가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명상을 함으로써 명징한 미의식을 깨닫는 것이 사람해부학의 궁극이라고 말하는 황작가는 가히 이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 할만하다.
 

5. <군상인물화>를 통한 대중의 다양한 정신성과 시대정신의 발현>
경북 울진군 평해가 고향인 황재종 작가는 1992년 고향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표현한 <귀로>라는 작품으로 한국파스텔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처음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대가족 환경에서 자라온 요인이었을까? 그는 사람들의 군상이나 풍습,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단다. 그래서 황작가는 자연스럽게 자화상을 비롯하여 인물과 삶의 풍습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군상인물들은 유행과 풍속들이 혼유된 채 모두 웃는 표정이지만 그 표정 뒤에는 이 시대의 정신성과 냉소적인 불안감이 감춰져 있다. 급변하는 경쟁적인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가 되찾고자 하는 것은 바로 휴머니즘(humanism)과 인간애(humanity)라고 그는 역설하고 있다. 

6. 사실을 뛰어 넘은 해학적 진실

인물화는 그 시대의 자화상이자 역사적인 기록의 산물임을 강조하는 황 작가는 동시대의 사람들은 그의 작품의 소재이자 연구 대상이 된다고 한다. 초상화의 의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초상화는 그 사람이 평생 써 내려온 자서전(自敍傳)의 표지라 할 수 있지요. 얼굴에는 저마다의 인품이 묻어나는데요, 증명사진의 박제된 사실성과는 다른 차원의 진실성을 표현할 때 비로소 초상화는 참다운 가치를 띤다고 봅니다. 따라서 개인의 초상화를 그릴 때는 그 사람의 느낌과 인상(印象)을 중시하며 그것을 이미지(image)로 일치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입니다.”2013년에 인사동 개인전에 발표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은 <흑묘백묘黑猫白猫>는 사실을 뛰어넘은 해학적 초상화로써 가히 일품이라 할 만하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죽(竹)의 장막에 싸여 있던 중국에 오늘날의 번영을 가져오게 한 덩샤오핑(鄧小平)의 정신성과 존재감을 해학적이고 함의적으로 표현하였다. 특별히 이 작품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중국 화단과 프랑스 파리로의 진출을 제안 받고 협의 중에 있다고 한다.

7. 그림패 출판사
서화동원(書畵同原)이라는 말이 있다. 글과 그림은 그 뿌리가 같다는 뜻이다. 황작가는 붓이 막히면 펜으로 막힌 생각을 뚫는단다. 생활 속에서 떠오르는 영감을 글로 풀어내고, 다시 그 글을 그림으로 형상화 하거나 그려 논 그림을 글로 마치맞게 다듬어낸다고 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매조져서 출간한 시화집과 에세이 등의 저서들이 서서히 주목을 받고 있다. 황작가는 그동안 출간한 <꼴값>, <개뿔>, <누드에세이>에 이어서 2016년에는 <초상화 에세이>, <인물화의 12가지 화법>, <캐리커처>, <The Zoo> 등을 출간할 예정이란다. 

8. 조선왕조실록과 한민족의 역사, 그림으로 역사화 하는 작업 진행할 터
자나 깨나 사람을 그리다 보니 그 사람의 연원(淵源), 즉 뿌리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 생각이 결국 역사에 접속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인물화미술대학을 설립하여 표현 역량이 뛰어난 인물화가를 육성하고 전국적으로 우수한 인물화 작가를 공모를 하여,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반만년 한민족의 역사를 시대와 역사적 사건 등으로 나누어서 대형 역사화를 제작하려고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역사적 사실은 귀에 딱지 붙도록 듣는 것보다 한 번 쓱 보는 게 훨씬 명확하지요.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일반 국민 누구나가 쉽게 접촉할 수 있고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역사화에는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그 방대한 자료들을 시각화 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기에 정부의 지원과 협조가 절실합니다.” 미술인들에게 있어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예술가의 새로운 롤 모델이 되고자 앞으로도 노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인문예술가(人文藝術家) 황재종, 그의 인생 2막 스토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