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小女象) 소묘

강미경(시인, 여행작가)

지난 2월 초, 마산 여행에서 허당(虛堂) 명도석(明道奭, 1885~1954) 선생의 기념비를 찾으려고 길을 물었다.
“코어 4거리에 가면 ‘소녀상’이 있으니, 거기 가서 물어보면 알 것이네요.”
‘소녀상? 소녀상이라니……?’
소녀상이란 말에 새삼 놀라며, 몇 차례 더 물어 마산형무소터에서 50여 미터쯤 내려가는 순간, 마산 오동동에서 소녀상을 보았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어린 소녀들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지방으로 끌고 간 줄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소녀상을 보니 뜻밖이었다. 

지난해 겨울, 한일 외교부장관 회담에서 ‘위안부에 대하여 보상금 100억을 일본에서 부담하고, 다시는 이 문제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일본 대사관 앞에 소녀상은 민간 사회단체에서 건립한 것이니, 협의하여 철거한다,’는 주된 내용의 보도를 들었지만, 그때도 예사롭게 여겼다. 생활이 분주하고, 그것에 대하여 심각한 생각을 할 정신의 공간이 전혀 없었다. 집에서 10분 거리인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에 무관심하던 내 발걸음이 멀리 마산 여행에서 내 눈길을 잡았다.
하나의 예술품에 불과한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지나쳤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의 맨발, 노란 털모자와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산 여행을 다녀온 지 40여 일이 지나도 여전히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뭔가에 이끌리듯이 마침내 필자는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찾아갔다. 대사관 앞에 소녀상도 맨발이다. 도망갈까 봐 신발을 빼앗았을까? 허겁지겁 끌려나오면서 신발을 못 신었나? 덧버선을 신고 있지만 발꿈치가 들려있다. 일본이 패망하고 그녀들은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마음 편하게 정착할 수 없었던 것을 형상화한 것인가? 

‘왜 냉대와 비난을 그녀들은 고국에 돌아와서도 받아야 했을까?’

광복이 되었지만, 그녀들이 받은 육신과 마음, 영혼의 상처는 씻어지지도, 치유되지도 않은 채 사람들에게 혹독한 대접을 받았다. 아니, 그들은 침묵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생각했기에.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있기까지 그 일은 덮어둔 짐덩이로 한?일 사이에 풀지 못한 상처로 남아 있었다. 

다시 소녀상의 모습으로 돌아가 보자. 앞모습은 단발머리의 15~17세가량의 어린 소녀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림자는 등 굽은 쪽찐 할머니의 모습이다. 가슴엔 하얀 나비가 한 마리 날아오르고 있다. 할머니의 가슴에서 피어오르고 싶은 자유와 평화. 비상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다.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영화에서도 나비가 날아오르는 것으로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것과 유사하다. 나비의 이미지는 언제나 자유와 부활, 재생을 의미하고 있음이다. 
소녀상은 두 주먹을 꼭 쥐고 있다. 원한에 가득 찬 듯한, 맺힌 한이 주먹 속에서 울고 있다. 그 시대, 힘없는 소녀가 울분에 차서 여린 손으로 주먹을 꼭 쥐지만 그 주먹으로 가슴에 맺힌 한을 다스릴 수 없는, 차라리 처절한 모습이다.

‘얼마나 가슴이 탔을꼬? 할머니들의 아픔이 얼마나 쓰라렸을꼬?’
‘따뜻하게 포근하게 위로해드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필자는 울음이 나오려하는 것을 억지로 참고, 사진만 찍었다. 3월인데도 봄바람이 차갑고 매섭게 볼을 때린다. 셔터를 누르는 손이 시려서 몹시 고통스럽다. ‘소녀’가 겪었던 지난날의 고통을 생각하면,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다. 
‘희망나비’ 모임에서 나왔다며 청년들이 그곳을 지키며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저만치에 “한일 위안부 합의는 무효”라고 크게 쓴 피켓을 뒤로 한 채,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위안부에 대해 살펴보았다. 팔이 아프도록 공책에 빼곡하게 정리를 하며 공부를 해도 명쾌하지 않고 머릿속이 답답하기만 하다. 공부하던 중, 부산에 ‘민족과 여성연구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 가서 자세한 설명을 들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나는 바로 여행 가방을 챙겨 부산행 기차를 탔다. 해녀들 이야기를 쓰려고 제주도로 향하기도 했었는데, 부산은 더 가깝지 않은가? 

이른 아침에 부산역에 내렸다. 마중 나온 친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었다. 여정에서 그곳을 먼저 보아야 한단다. 
그곳에 도착하니 건물부터 먹색이다. 마치 석탄을 쌓아서 만든 것 같은 느낌의 조형건물이 특이했다. 어디나 그렇듯이 관람객들이 거의 없다. 해설을 부탁해도 해설사가 없다는 답변이다. 우리들은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계단을 올라 아픈 역사의 페이지를 더듬었다. 강제로 동원되었던 일제강점기 ‘소녀’들에 관한 자료와 함께 그들이 남긴 체험들이 어제 일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군에 시달렸던 위안소의 모습도 재현되어 있다. 자그마한 침대와 구석에 놓인 놋대야, 대야 속에 일본군 정액과 함께 소녀들이 흘린 핏물, 비좁은 방마다 나무로 된 소녀들의 일본 이름표는 문패 같다. 부산에 가기 전에 「귀향」이라는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또 아픔으로 다가왔다. 보고 싶지 않은 광경, 보고 싶지 않은 물품들…. 
‘외면하지 말고, 역사를 똑바로 보자’ 고 마음을 달랬지만,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오고야 말았다. 

유엔공원 앞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한 후 우리는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찾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역사관과는 다른 외관이다. 1층에는 자그마한 상점이 줄지어 있었다. 그 위 상가 건물 2층과 3층이 역사관이다. 아마도 개인이 운영하는 곳인가 보다 하는 짐작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역사관에는 두 분의 여자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온 여행 작가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한 자세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왔어요.”
라고 말했지만, 어디에도 안내해 줄 만한 청년들은 보이지 않았다. 부산에 사는 친구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알아보려면, “김문숙 선생은 꼭 만나보아야 한다.”고 했었다. 
그날은 운이 좋았는지 거기에 계셨다. 김문숙 선생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시고 최근까지 수십 차례 일본을 다녀온 이야기와 함께 위안부에 대한 재판기록을 보여주셨다. 일본에 재판을 하러 갔었다는 이야기도 생소했지만, 유리관 속에 전시된 재판기록에 관한 설명을 들으니, 놀랍다. 6년 동안 23번 재판을 했다니….

제 2 전시관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 판화 등을 보여주셨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인데, 조그마한 것을 내가 이렇게 확대해서 액자에 넣어 전시해 둔 거예요. 학생들이 더러 공부하러 와서 보곤 해요.” 
그곳에서 본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이 그림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했다. 화가들의 그림보다 더 강렬하고 통절한 영혼의 외침이 담긴 듯했다.
역사관을 나오려 하니, 김문숙 선생은 필자에게 책을 쥐어주었다. 
“국문학을 전공했다고요? 나도 글 쓰는 걸 좋아했지요. … 그러고 보니, 나와 동문(同門)이네. 
나는 약학공부를 하다가 다시 대구로 내려와서 지리교육을 했다오.”

짧은 만남이었다. 며칠을 이야기해도 모자랄 것 같다는 소회가 느껴졌다. 부산과 밀양, 양산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는데도 미수(米壽)를 넘긴 김문숙 선생이 자꾸 생각난다. 양산에서 보았던 통도사의 풍경이 아른거릴 때도 김문숙 선생의 표정과 모습이 겹쳐졌다. 미수를 넘길 때까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을 위해 일해 오셨다는 것. 남다른 그분의 삶을 보면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해 본다. 
그녀가 준 『들리나요? 열두 소녀 이야기』는 414쪽이나 되는 두툼한 책이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열두 명의 소녀를 상담 내용을 그대로 구술(口述)해 놓은 생생한 기록이다.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몰려오는 아픔과 분노를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읽어야 할 것 같았다. 그분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기억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일종의 숙제같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전체 내용을 읽고 나서야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의 전모가 이해되었다.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이해와 함께 김문숙 선생의 노고에 감동되었다. 자신의 사비(私備)를 털어 70년 전 소녀,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듬고 있는 김문숙 선생. 그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정한 친구였던 것이다.  

소녀상 어깨 위에 앉아 있던 한 마리 새가 떠오른다. 자유롭게 날고 싶은 소녀의 꿈이 소녀의 어깨 위에서 비상하고 싶은 느낌을 주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받았던 아픔을 누가 치유해 줄 수 있을지? 그녀들에게 참된 평안을 염원하지 않을 이가 있을는지? 
공중을 날수 있는 날개를 가진 새. 창조주가 새를 창조하셨듯이 여자도 창조하셨다. 여자에게도 행복 추구권이 있다. 여자로 태어나길 원해서 여자가 여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조물주의 섭리이리라. 선택이 아닌 운명으로 주어진 여성이라는 성(性). 그들은 하필 일제 강점기 때 이 땅에서 여자로 태어난 죄밖에 없었는데, 그녀들의 아픔을 어찌해야 할까? 누가 그들을 위로할 수 있고 그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 이것은 어떤 것으로도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하다. 그들의 원한이 하늘에 닿으면 그들을 여자로 만들어 그 시대에 이 땅에 보내신 조물주의 진노(震怒)가 어떨지?

독일 히틀러의 제국주의,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제국주의도 속국의 여자들을 그렇게 짓밟지는 않았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들 군대는 국소적으로 그런 일을 자행했을지는 몰라도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위안부를 20만여 명씩 강제 동원한 예는 없었다. 일본 제국주의 칼날에 희생된 그 시대 이 땅의 딸들. 위안소가 설치되었던 곳은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의 일본이 점령했던 지역수백, 수천 곳에 이르렀으리라. 
영화 「귀향(歸鄕)」에서 일본군이 소리를 지르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다. 일본 황군(皇軍)을 위한 암캐에 불과하다” 

도망치다가 붙잡혀 온 조선 소녀들을 붙잡기 위해 그 위안소 모든 조선 소녀들을 나체(裸體)로 세워놓고 발길로 여자를 걷어차면서 외쳤던 말이었다. 그게 그들의 목적이었다. 태평양전쟁에 동원된 수많은 일본군들을 위해서 세웠던 위안소. 일본군도 전쟁이 좋아서 전쟁터에 나온 이들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른바 ‘황군(皇軍)’의 사명과 소명으로 무장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 군인들도 인간이었다. 전쟁터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일본의 아들들이었다. 그들의 심리적 불안정과 말초적인 본능 해소를 위한 도구로 속국의 소녀들은 희생되었다. 
인간의 존엄성이 철저하게 유린된 전쟁터. 신이 인간에게 내려주신 아름다운 성(性)이 추악한 도구로 전락되었던 역사의 검은 페이지들. 『들리나요? 열두 소녀 이야기』라는 책에서 구술한 열두 명 소녀의 증언에 의하면, 일본군들은 철저했다. 혹시 병에 걸릴까봐 두려워 그들은 철두철미하게 대비했다. 위안부들을 1주일 또는 2주일에 한 번씩 검진했다. 그리고 ‘사쿠’를 착용했다. 그래도 임신을 하는 여성도 있었고, 매독에 걸리는 소녀도 있었다. 임신한 소녀는 낙태시키고, 또 위안소에 배치시켰다. 매독에 걸린 소녀는 ‘606 주사’를 맞히고 또 위안소에 배치시켰다. 하루 밤에도 10~40명씩을 상대해야 했던 소녀들. 15세 소녀는 첫 번째로 성폭행 당했을 때 성기가 찢어졌었다고 증언했다. 반항을 하면 칼로 아무 곳이나 찔렀다고도 했다. 성폭행 상대를 하다가도 말을 듣지 않으면 칼로 가슴을 찔렀다고 했다. 성폭행 때 무자비한 폭행으로 허리가 부러졌던 소녀. 방에 끌려들어가지 않으려고 반항하다가 손목이 빠졌던 소녀…. 
「귀향」 이라는 영화에서도 소녀들은 낮에는 노동에 시달렸고, 밤엔 일본군에게 시달렸다. 위안소 방마다 질러대는 비명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녀들의 비명, 그 소리를 하늘이 들었을 것이다. 이 땅에 소녀를 보낸 창조주가 칼에 찔린 칼자국을 보았을 것이다. 반항하는 소녀를 때리던 채찍을 하늘도 보았을 것이다. 일본군에 맞아서 피범벅이 되어 죽어갔던 그녀를…. 전투지를 옮기면서, 소용없어진 소녀들을 총살하여 불태웠던 연기(煙氣)도 하늘은 보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아니, 오열했다. 

‘아버지들은 왜 딸을 지키지 못했을까? 왜 이 땅의 딸들이 저렇게 짓밟혀야 했을까?’

『들리나요? 열두 소녀 이야기』 책을 읽는 며칠 내내 참담했던 심정을 표현할 길이 없어 글재주의 한계가 느껴진다. 성(性)의 본질이 무엇일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성관계가 강제적으로 행해진 것, 성폭행과 강간에 대해 현행법은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성희롱, 성폭행에 해당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독일 헌법에 바탕을 둔 형법을 들여와 우리나라 사람에게 적용했다고 들었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른바 ‘범법행위’도 이 법을 적용했던 일본이었다. 물론, 조선총독부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법으로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위장(僞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통해 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제패하기 위해서 국가총동원령을 내려 많은 것을 약탈하였다. 그리하여 쌀과 곡식을 빼앗아 군량미로, 놋그릇, 숟가락마저 빼앗아 전쟁무기로 만들었는가 하면, 강제 징병?징용에 이어 소녀들을 끌고 가서 성노예로 삼기 위해 이른바 ‘처녀 공출’까지 서슴지 않았으니, 인간을 창조하신 신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지난해 12월 말,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상에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입장을 내세웠다. 한일 관계 앞에 놓였던 커다란 돌멩이를 마지막으로 치우듯이….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인식이 다르고, 진솔한 사과의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대적으로 시행했던 처녀 공출 사실마저 일부만 인정할 뿐이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했던 역사적인 과오를 인정하고, 진정어린 속죄와 반성을 지속하고 있는 독일의 태도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공장에서 일하게 해준다.”
“간호사가 되게 해주다.”

고 끌려갔던 몇 십 만 명의 소녀들. 지속적인 집단 강간을 당했던 그녀들 대부분은 쓰라린 생을 마감했다. 등록된 분으로서 생존해 있는 분은 겨우 수십 명에 불과하다.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면 위안부 문제는 지워지거나 잊혀 질 것으로 일본은 생각하고 있는가? 

다시는 전쟁과 아픔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염원과 고발정신 - 평화의 소녀상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