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 아름다운 강산 시리즈 그려
  
서양화가  이한우 화백

병풍에 오일물감을 사용하며 동서양의 융화를 적절하게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은 이한우 화백. 어느덧 그가 붓을 잡은지 반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올해 90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이 화백은 아름다운 우리강산 시리즈로 세계적인 미술화가로 그 입지를 다져왔다. “예술가들은 모든 사물과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소재를 삼습니다. 저 역시 제 고향인 산양읍 중화동 풍경을 그리면서 주변속에서부터 소재를 얻고 모티브와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강산을 그려보자고 마음먹었을 때에도 이러한 자연의 주는 아름다움을 화폭에 얼마나 전달할 수 있을지, 그리고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소통하고자 기획했던 거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며 한국인의 삶을 녹여내며 서양기법을 사용하지만 동양의 미를 함께 보여주고자 노력한 이 화백은 작가적 재해석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작가세계를 구축해 왔다. 붓을 잡을 수 있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 화백. 그동안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와 미술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 등을 들어보며 한국화의 현대화로 세계를 매료시킨 그의 비결들을 살펴봤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자신만의 미술언어로 표현 
이 화백의 작업실은 50여년 동안 함께 동거동락하며 손때 묻은 화구들과 사방을 가득 메운 그의 작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작품들을 왜 이렇게 많이 보유하고 계신지요?” 기자가 처음으로 건넨 질문에 이 화백은 “돈만 받고 상업적인 것이 목적이라면 화가라기 보단 장사치에 불과합니다. 그저 예술이 좋고 미술이 좋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요. 제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제 작품들이 ‘이한우’라는 분신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붓을 잡아 왔습니다.”  90 나이지만 아직 팔팔한 청춘작가처럼 힘있는 붓터치과 생동감 있는 표현을 화폭에 담아내는 그는 그림을 그리는 지금 이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사용하여 낡은 삐걱대기까지한 그의 의자 역시 주인을 닮아 포근하고 아늑해 보였다. 능수능란한 손놀림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놀라운 집중력으로 자신만의 미술적 언어를 담아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다 보니 ‘진정한 미더스의 손’이란 이것이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미 독창적인 미술 작품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이 화백은 한국적 정서를 서양적인 기법을 접목하여 강렬한 독창성을 완성해 냈다. 당시 장르를 구분하던 우리 화단에서 충격을 전하며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탈피한 화풍을 보여왔던 그는 서양식 재료를 사용한다고 해도 우리의 정서와 얼은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소박한 풍경적인 모습을 환상적인 터치를 통해 동양화중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기분이 드는 그의 작품은 구상추상과 한국적인 심성이 녹아들며 조화와 균형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자의 눈에도 자신만의 기교에 의해 한층 가치가 돋보이는 강렬한 독창성이 눈을 사로잡는다. 전통적인 자연 풍경을 호기심 어린 예술가의 정서가 만나 놀라운 현대적 표현으로 재창조되는 모습을 보면서 단순한 풍경을 넘어 깊은 내면을 담고 있는듯한 오묘함과 신비로움마저 감돈다. 

1~3기 다양한 작품들 눈길, 미더스의 손으로 평가받아
40여년의 화백경력을 갖춘 그의 화력을 돌아보면 60~70년대의 1기,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까지의 2기, 그리고 80년대 초에서 최근까지의 3기로 나눠짐을 알 수 있었다. 1기에서는 국전을 중심으로한 다이나믹한 화풍으로 특선과 입선을 거뭐지며 작가적인 반열에 올라섰던 시기로 토기와 목기 등 고유사물과 정물이나 화병 등 대상의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다. 2기에서는 대상을 몽환적인 채널로 바라보며 새로운 조형기법을 구사한 시기로 1기 정물에 비해 2기에는 자연풍경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산과 나무, 들녘을 몽환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현실을 모티브한 풍경이지만 마치 꿈속의 풍경으로 보여질 만큼 리드미컬한 색조의 형상이 도드라진다. 또한 섬과 선박이 등장하는 그림이 많은 이유에 대해 아마도 그가 바닷가인 통영 출신에서 나오는 기억의 잔존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3기에 이르러서는 소재는 여전히 해안과 농촌의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2기가 몽환적인 풍경이었다면 3기는 대상의 윤곽이 명확하며 구체적인 형상과 풍경이 도드라진 사실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것은 마치 사람의 혈관이나 주름처럼 보다 세밀한 그림들로 화폭이 채워지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열정을 다하는 화가 되고 싶어 
교직생활을 하며 30대의 늦은 나이에 붓을 잡은 이 화백은 서양화는 선을 따로 긋는 것이 아닌 명암으로 표현하는 예술로 이러한 양식에 한국적인 미를 담아내며 우리의 것으로 승화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1928년 통영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이 화백은 꿈은 꾸었으나 때마침 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자격을 얻으며 통영과 거제에서 교사로 15년간 활동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더욱 그림에 대한 향수와 애정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1970년 국전 입선을 계기로 서울로 상경 외로운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천부적이고 뛰어난 재능과 꾸준한 노력의 결실로 국전 27회 문호공보부장관상을 수상을 계기로 대만 국립박물관, 파리 오랑주리드 룩상부르 전시관, 루미니아 국립미술관,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등 초청 작가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한 그는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나이도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75세의 나이에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천안에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자녀들이 천안에 거주하기에 마음편히 오고 갈 수 있도록 배려해서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고향인 통영에 미술관을 하나 더 짓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인 여유가 된다면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가정 형편상 붓을 잡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도움과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대중과 소통하고 정서를 교감해온 이한우 화백. 국내를 넘어 국외에서도 널리 인정받는 이유는 그림을 사랑하는 그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구축해 나가며 우리 민족성을 화폭에 올곧이 닮아내는 이 화백의 앞으로의 행보에 응원의 박수를 힘차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