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 장 미

신  수  희 작가
 

지금까지 한번도 아픈걸 보지못하고 건강했던 모습만 보여준 성우가 갑자기 몇 달동안 병원 신세를 지다 퇴원했다길래 일요일에 교회를가면 꼭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성우가 다니는 교회에 갔다. 오랫동안 나와 같이 그림을 그렸던 친구, 나이가 나보다는 훨씬 작은 이성우는 피아노를 반주하면서
  “왠 아이가 보았네. 들에핀 장미화.
  갓 피어난 어여쁜 그향기에 탐나서
  정신없이 보네 장미화야. 장미화”
‘들에 핀 장미화’ (베르너 작곡)를 교회에서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다. ‘들장미’는 빈소년 합창단이 불렀던 독일 가곡이었고 지난 날 나 또한 좋아했던 곡이었다. 장미화야 장미화, 노래에 가사는 붙이지 말고 오직 “우”로만 소리내어 높고 낮음을 느낌으로만 조절해서 불러보라는 선생님의 명령은 노래를 가르치는 발성법의 기본이었다.
   몇 달 동안 앓아 누웠던 성우에 비하면 한 달 된 내 감기쯤이야 하고 어렵잖게 성우를 만나려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교회를 마친 일요일 오후에는 2시간 동안이나 성우가 노래 수업을 한다고 했다. 작은체격에 노래를 가르치느라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까지 설명하고, 부르기까지하는 성우를 내 위주의 생각으로 밖으로 유인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반대 급부로 성우를 위해 같이 동참하기로 작정했다. 교회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가 성우가 쳐다보는 쪽 맞은 편 의자에서서 ‘정말 오랜만이야, 너무반가워!’ 눈 인사를 나누고 방청객의 수준으로 노래 수업이 빨리 끝내주기를 마음 속으로 기도하면서 얌전히 앉았다. 그러나 한 달동안 감기에 비실거렸던 나에게는 2시간은 내 건강에 큰 도전이 아닐수 없었다.
   그 전까지만해도 성우는 나와 함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마다 그림 분위기를 나에게 묻곤하던 편하디 편한 친구였는데 오늘은 본의 아니게 성우는 성악 선생님이되고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이되었다. 성우가 선생님 내가 학생이되자 학생을 가르치는 빈틈 없는 선생님의 피아노 연주는 이상하리만큼 부드러웠고 감성적인 분위기에서 나오는 음성의 조화는 여늬 성악가와 달리 어떤 아픈 마음을 파헤치는 듯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였다. 어떤 곳을 가도 분위기가맞던 성우와 나는 그래서 작은 소품을 한 개를 구입하여도 깔깔 거리면서 좋아했다.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한 성우의 노래 소리는 노래 수업이 빨리끝내주기를 기도했던 나에게는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괜찮은 성악가인줄 에전에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많아 후회가 되기도했다. 그전 성우가 경영하는 음악학원에 갔을 때 가끔 피아노에 맞춰 ‘그네’, ‘봄처녀’ 등 좋아하는 노래를 성우는 부르곤 하였는데 그 때마다 그려려니 예사롭게 생각하면서 15년도 넘게 지낸일들이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갈고 닦는 노력이 7년이 지나야만  취미에서 탈피된다는 말이 있듯이 수 십년동안 닦아 온 성우의 갈고 닦은 노력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음을,오늘에야 존경스러움이 가미됐다.
 

 낯선 동네에 찾아와서 손님 학생이되어 성우가 시키는데로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면서 음을 가다듬고 연습하고 있었는데 성우는 느닷없이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들에 핀 장미화’를 불러보라고 했다. 가사는 부르지말고 “우”로서 끝까지 불러보라며 건반 위에 손을 얹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피아노 소리는 성우와 내가 항상 갈구하던 분위기를 위한 연주였다. 어쩌면 멀리서 찾아온 친구의 배려이면서 친구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성우의 자존심을 알고 있었다.
  배가 고프면 허물없이 찾아가도 되는 사람,
  옷을 갈아입지않아 김치 냄새가 나더라도 흉보지않는 성우,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가도 좋아하는 성우,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 받아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아 도 되는 성우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을 그런 사람이었다.
   성우의 자존심을 알고있는 나는 꾸물대지도 않고 일어서서 성우가 치는 피아노 음에 맞춰 “우우우우 우우우 우우우 우우우 우우우우 우우우 우우우 우우우우우 우우우우 우우우 우우우 우우우” 노래를 끝까지 쉬지않고  불렀다. 그곳에 앉은 사람들과 나는 무지개 같은 아름다운 침묵이 흘렀다. 평소때는 이렇게 잘부르지도 못했는데 내가 들어도 꿈같은 소리였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마 그것은 성우와 내가 10여년 동안 갈구하던 분위기의 하모니가 섬광처럼 이루어진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오랫동안 공부한 성우는 벌써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집에 오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화합하고 사랑하는 길은 너무나 단순한데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사람 냄새를 풍기는 성우의 자존심도 역시 갈고 닦은 배려와 분위기에서 나온 하모니였다는 것을 오늘 새로이 반추해보았다. 나를 움추리게한  한 달 동안의 감기 몸살의 시간을 초월할 수 있었던 것도 들장미의 분위기와 노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였다. 그 날 성우는 갓 피어난 들장미처럼 보였다.
   집에 오면서 성우가 내귀에 대고 한말이 생각이 난다. 겨울 날씨인데도 따뜻하고 행복했다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