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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만드는 꽃집
신수희
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우리동네 앞산을 덮어 버리면 자그만한 텃밭에 채소를 심을 생각을 한다. 반평도 않되는 소꿉장난같은 밭에다가 상추 쑥갓 배추모종을 줄을 지어 꽃처럼 심는 나를 보면 노란 개나리처럼 봄물이 들은 마음을 금방 알아차릴수있다. 아침 저녁 물한조루만 주면 눈에 보이지 않게 눈꼽만치 자라는것 같은데도 돌아서서 며칠이 지나면 한잎한잎 뜯은 채소가 작은 소쿠리에 한바구니가된다. 사랑스런 이파리들은 먹기가 아까울정도로 앙증맞다. 마당이 없어 대문 위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놓고 채소 커가는 재미에 바깥에 나갈 시간이 없다는 고향친구 금이 생각이난다. 옛날같으면 그 콩만한 밭에 뭐먹을것이 있다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냐고 핀잔을 주었을 것인데 나도 금이와같이 그렇게 되었다.
어릴적 방학때가되어 시골 외할머니집에 가면 뒷산에 밤송이가 떨어지고 푸른 바다가 보이는 외갓집이 도회지에 있는 우리 집보다 훨씬 아름답고 부러워 보인적이 많았다. 나도 어른이 되면 사시사철 먹을것이 나오는 텃밭을 만들고 사철나무와 유실수가 숨박꼭질 하듯이 늘어서있는 넓은 마당안에 벤치가 놓여있는 집을 지어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가끔씩 마당에 나오면 앞산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변하는 과일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나도모르게 소매끝에 물들여진 빨간 버찌와 자주색 오디물을 원망하면서 좋아하는 사람과 익은 도마도의 특이한 맛에 취해서 한참이나 벤치에 앉아있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색깔의 느낌을 좀 타던 나는 연한 베이지 색깔의 이층벽돌집이 감색 토마토와 빨간 자두와는 제법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서양의 고옥처럼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무가지 사이에 가끔씩 스쳐 보이는 튀지않는 그런이층집은 꿈을 만드는 집이였기도 했다. 네모난집이 아닌 좀 높고 둥그스름한 건물에는 색다른 둥근 창문이 있고 그 창문밑에는 꽃을 떠받히고있는 까만 난간속에 천진난만한 분홍 꽃송이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몽실몽실 땅을 향해 내려오는 모습을 길가는 사람들마다 발걸음을 멈추는 그런집이었다.
방문을 열면 창문곁에 놓인 큰 침대 위에서 가지각색의 작은 인형들이 눈을 맞추고 별정돈되지 않은 책들이 소복이 쌓여있는 책상과 몇 명의 친구들이 응접실이 아닌 이층방에서 있는소리 없는소리 별별소리 할수있는 좀큰 방이였으면했다. 어느때는 이골목 저골목 한여름의 시원한 바람소리가 대감마님의 풀먹인 모시 치맛자락처럼 나무사이로 휘젖는 낌새가 들리면 아직도 잊혀지지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작은 인형과 책친구들은 나와함께 생각의 불씨를 틔워 보면서 보름달을 맞을수있는 더높은 방이였으면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이층방에서 창문을 열면 초록색 나무이파리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사이길이 보이는 텃밭에는 하얀 분을 바른 딸기꽃이 작은 벌떼를 찾기 시작할것같이 얼굴을 내밀고 산고를 이겨낸 겨울 어미닭이 갓태어난 새끼 병아리를 몰고 개선장군처럼 바쁘게 다니는 길위에 궁뎅이를 흔들어대는 오리새끼까지 봄마당의 여왕이되는 집이기도하다. 오월의 감자꽂이 하얗게 피었다가 서서히 지려고 하면 파란 고추가 조롱조롱 달리고 옥수수의 긴 수염이 진분홍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면 여름은 가버리려고 애를쓰지만 배꽃이 떨어져 나간 그 자리에 탐스런 새끼배가 주렁주렁 달리더니 터져버릴것같은 보리수 열매에 예쁜 새가 날아오기도한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빨간대추가 달린 어느날은 대봉이 익어가는 기쁨보다 떠나버릴것같은 가을의 아쉬움이 싫어서 복숭아 나무를 더 심을것같기도했다.
텃밭에서 키운 싱싱한 채소와 나무에서 따온 과일을 햇빛이 화려하게 비추는 조용한 부엌에서 다듬고 손질해서 것절이도하고 사라다와 쥬스도 만들어서 예쁜식탁에 얹혀 놓고싶었다. 특히 한낮의 여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집 마당을 구경시키고 대접하면서 내심 속마음은 익은 사과처럼 깨물면 단맛이 묻어나는 외할머니같이 되고싶었다.
지금 이나이가되어 생각하니 혼자서는 풀한포기도 가꿀수없는 아이가 별별 과일이 달리는 나무와 큰 텃밭이 딸린 연한 베이지색의 이층 벽돌집을 짓고 살 생각을 했던것을 보면 엄청 대견하기도하다 그래서 어릴때 꾸었던 아름다운 생각들은 언제나 꿈을 부풀게 해주었고 지금까지도 세상을 속일줄모르는 꽂과 나무를 친구 하면서 엣날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는지 모른다.
봄비가 내려서 그런지 추운 그저께도 누가보면 우스울것같은 작은 텃밭에 풋고추 일곱포기와 꽈리고추 세포기를 심고 두둑을 높여주고왔다 심고싶었던 몆포기의 참외와 토마도는 아직 추위가 덜가신것같아 일주일 후에 심을 생각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만 쳐다보면 부러울것이 없는 아이같이 언제나 행복한 마음이 된다.
잎이 오르는 잔디 사이에 노란 민들레가 피어있다. 발걸음이 서성거리는 눈앞에는 나무가지마다 움을 튀우고 꽂이 피려고 볼록볼록하다. 이제는 며칠전에 넝쿨채 심은 다래나무만 삯이트면 봄걱정이 없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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