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기다리던 울림 

큐슈 여행, 또 다른 시작
                                                                

아리타 도자기 마을을 헤매고 다니던 전날의 고단함이 아침을 깨운다. 일어나기 힘든 몸을 일으켜 료칸에서 주는 아침 식사를 하고, 우리는 나가사키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거센 빗줄기와 바람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나가사키항에 가도 하시마(지옥섬)로 가는 배는 뜨지 않을지도 몰라’ 망설이고 주춤거리는 사이에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료칸에서 온천이나 하며 피곤을 풀자고 하루 종일 휴식을 취했다. 점심 때 벳부역에 잠깐 나가 우동 한 그릇을 먹고 온 게 그날 동선의 모든 것일 게다. 벳부역 도로 뒤 골목길을 걸으면서 뒷골목의 풍경을 본다. 어느새 비는 그쳤으나 오후 3시가 훌쩍 넘은 늦은 점심 때,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회색빛 짙은 구름을 먹고 있다. 어느 건물 앞에 앉아 있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보니, 우리 집 내 고양이 쿵이가 그리워진다. 어서 빨리 비행기 시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맘이 간절해지는 시간이다. 

 저녁에 예약해 둔 저녁 만찬 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숙소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원고뭉치도 읽어보고 싶었다.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갖고 싶은데, 내 마음 빈 방에 혼자 앉아 나를 들여다보고 싶은데......’ 

라는 간절한 소망을 갖다가 서로에게 시간을 주기로 한다. 잘 정돈된 일본의 테라스 가득 바다가 들어온다. 벽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다. 바다 건너 희미하게 보이는 육지에 어느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전날 들렀던 도잔신사에서 만났던 이삼평 도공에 대한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왔다는 150여명의 도공들의 애환이 바다 건너 마을 아리타와 이마리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우리나라 일식집에서 흔히 앉을 수 있는 방에 인도되었다. 테이블 밑을 파서 사람의 다리가 밑으로 편하게 내려가게 만든 일본식 테이블이다. 서빙 하는 아가씨가 들어와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을 한다. 일본에서 들어보는 한국어가 반갑다. 아가씨는 벳부대학에 다니는 학생이고 저녁에 몇 번씩 와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열심히 살고 있는 인천에서 왔다는 한국 유학생. 학생 덕분에 편안한 만찬을 들 수 있었다. 학생에게 물으니 우리가 먹은 코스 요리가 ‘가이세키 요리’라고 했다. 다음에 벳부에 오면 다시 꼭 한 번 더 먹어보고 싶은 특색 있는 요리다. 특히 분홍색 굵은 소금으로 만들었다는 구이 판에 구워준 고기와 버섯, 야채 맛이 특이했다. 후식으로 나온 커피 푸딩의 맛도 잊을 수가 없다. 
 일본에 와서 소꼽장 같이 작은 일본 그릇에 담아내오는 식사를 하면 유년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 다 쓴 엄마의 화장품 통을 얻어 소꿉놀이하던 어린 시절. 그 시절을 추억하며 일본 여행 때마다, 일본 종지를 몇 개씩 사들고 왔었다. 식탁을 차릴 때마다 그 그릇에 음식을 조금씩 담아 식사를 하면서, 일본의 식문화가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음식의 낭비도 없고, 다른 사람과 침이 섞이지 않도록, 각자 자신의 상(또는 쟁반)에 자신 몫의 음식이 차려지는 게 마음에 들곤했다. 소꿉놀이를 하는 유년시절로의 회귀를 꿈꾸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식사 후 우리는 예약해 둔 노천탕(가족탕)에 가서 온천을 했다. 온천 한 면에 벽이 없다. 노천이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 들어온다. 추울 것 같다. 노천탕으로 나가기가 두렵다. 그러나 탕 안에 들어가면 괜찮을 거라는 말을 믿고 탕으로 몸을 내린다. 찬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노천탕의 묘미가 이런 것이리라. 숙소에서 테라스 유리를 통해서 보던 바다가 아니다. 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칠흑이었다. 실구름 한 줄이 하늘에 그어져 있다. 마침 하늘에 뜬 보름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45분의 시간이 5분처럼 흘렀다. 거센 바람 너머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바다 건너 섬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그 마을 어느 집에선가 밤늦도록 어느 도공이 도자기를 빚고 있을 것 같은 상상이 몰려온다. 조선의 도공들이 전수해 주었다는 도자기 기술. 도자기를 사랑하는 넋들이 오늘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물레를 돌리고 있을 것 같은 밤. 이번 여행은 내 머릿속이 온통 도자기로 가득하다. 바람을 타고 그 도공의 흙 묻은 손에 입 맞추고 싶은 벳부의 마지막 밤. 벳부에 다시 또 오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도 모른 채 찰칵찰칵 시간이 흐른다. 무심한 시계 바늘이다. 
 인간은 언제나 양가감정 속에 서 있는 피조물이다. 얼른 귀국하고 싶다는 마음과 조금 더 머무르고 싶은 감정의 두 갈래. 그 속에서 큐슈 여행을 닫으며 큐슈를 아쉬워한다. 

 다음날, 벳부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하카타역으로 이동한다. 하카타역에서 전철로 후쿠오카역가지 이동하고 공항 셔틀버스로 공항에 도착한다. 1시간 10분 만에 인천 공항에 내렸고 리무진 공항버스를 타고 서둘러 집에 돌아온다. 
 저녁에 문인협회 출판 기념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모르는 일이 아니었다. “자리를 잡아 놓았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가 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후다닥 뛰어가다가 저녁 만찬이 열리고 있는 식당 옆 골목에서 우연히 조우한 그분. 그분은 담배를 피우다가 침묵 속에서 나를 문책하고 있는 듯했다. “큐슈까지 갔으면서 구마모토성에도 나가사키에도 시모노세키에도 다녀오지 않았느냐?”고……. 역사 유적지는 하나도 돌아보지 않고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고 책망하는 듯한 말없는 그분의 담배 연기. 마치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몰래 놀다 온 학생이 선생님에게 들킨 것처럼. 귀국하자마자 골목길을 지키고 있던 그 분. 오전 11시 40분부터 행사장에 와서 나를 찾았다고 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역사 기행 수필을 쓰라”
고 한마디 격려를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동, 이동, 이동만 반복하다가 헐레벌떡 나타난 시각이 저녁 7시 30분쯤이었다. 그분은 8시간이 넘게 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기다렸던 모양이다. 

“큐슈 섬은 한국 침략의 전초기지였다. 나고야성-지금은 성터만 남았지만, 그곳에서 임진왜란을 준비했었다. 그곳엔 나고야성박물관이 있다. 임진왜란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가현에 있는 가르츠에 갔어야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륙 침략의 단초를 마련하기 시작했던 시모노세키 조약이 맺어진 곳 - 순판로우. 조선통신사비도 가 보았어야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와 평화공원에도. 하시마섬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조선의 억울한 이들에 관한 것들도 모두 둘러보았어야했다.“ 고 질책하는 목소리가 어디에선가 울리는 것 같다.

‘역사 유적지를 여행하고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제가 많이 지쳤어요.라고 대답하고 싶다. 저는 온천도 하고 도자기 구경도 하는 그런 여행을 하면 안 되나요?’

‘일본에 가서 조선과 전쟁의 역사보다 맛난 음식도 먹고 그렇게 저도 좀 휴양을 하면 안 되나요?’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귀국한 날 밤늦도록 다시 큐슈 여행을 계획하며 비행기 시간을 알아보았다. 다시 갑니다. 그곳에. 

노천탕에서
                                  강미경
큐슈 섬 뱃부
하루 빌린 내방 가득
한 면 유리창으로 바다 들어온다

바다 건너 희미한 불빛 아래 마을 
어느 도공의 흙 묻은 손에 입 맞추고 싶은

실구름 흐르는 큐슈의 밤하늘
보름달 구름에 얼굴을 묻은
거센 바람 소리, 차가운.

뜨건 물 속에 몸 담갔던
노천탕 하늘에
400년 전 바람이 스친다

그날 밤도 
조선의 도자기 혼이 클릭하고 갔을까
파도 소리도 잠든 뱃부의 밤하늘

일본
                                        강미경
고단한 날, 
휴양하러 온 큐슈
조선 침략 기지였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뱃부는 큐슈 섬, 일본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