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ndividual’에서 ‘個人’, ‘개인’으로!

‘개인’ 이란 말은 서양어(영어) ‘individual’을 메이지시대 일본에서 한자 번역어 ‘個人’으로 쓰이기 시작한 근대어다. 계몽지식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등에 의해 처음에는 ‘單 一個(단 일개)’ ‘各各(각각)’ ‘各個(각개)’ 등으로 쓰이다가 ‘個人’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개인’은 비교적 신생어로서 봉건시대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 짓는 주요한 주제어다.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대, ‘개인주의’가 대세인 ‘이기적(利己的)’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개인’을 발견한지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진정 ‘개인적’ 인가 다시 묻게 된다.

요즘 문학 철학 예술 역사 분야 등의 인문학 강좌가 다방면에서 개설되고 있고 수강생도 다수가 참여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러한 인문(人文) 강좌의 기본은 인간(人間) 이해에 귀결되므로, 나란 누구인가? 나는 어디 있는가?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는 근원적인 물음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서 자아(自我)를 제대로 각성하고,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충분히 독립적인가를 자문(自問)하고 그 해답을 구하려고 한다.

이미 고도소비 산업사회에 진입한지 오래인 우리 사회가 늦게나마 ‘창의적인 개인’의 재발견을 위한 인문적 사고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은 통한다고도 한다. ‘한류’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지역적 특수성이 세계적 보편성과 맞닿아 있는 예는 허다하다.

2. 입센이즘의 한・중・일 소개와 변용

자아 각성, 개인의 발견, 개인주의 등을 거론할 때, 먼저 생각해볼 것은 근대극의 선구적인 작가 노르웨이의 헨릭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1879년)이다. 그 내용은 주지하다시피 주인공 노라가 아버지의 인형에서, 그리고 남편의 인형으로 살아온 집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아 독립을 선언하고 가출한다는 줄거리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1901년에 첫 번역이 나왔고, 1911년 츠보우치 쇼요 등의 문예협회에 의해 공연된 이래 한국과 중국에도 전파되어, 노라는 요사노 아키코 등과 같은 신여성의 표상이 되고 여성해방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입센의 이름을 스스로 발간한 평론잡지 『시가라미 소시』(1889)에 일본 최초로 소개한 모리 오가이(森鷗外)는, 『인형의 집』을 이후 『노라』라는 이름으로 번역하였으며, 소설 『청년』(1909)에서는 입센을 ‘현대인’ ‘신인’ ‘새시대의 사람’이라고 의미 부여를 하며, ‘오토노미(Autonomie;자주성)’를 강조하였다. 오가이는,

전근대적 관습의 속박을 벗고 개인이 개인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사상이 입센 작품의

일관된 주제

라고 설명하며, 근대 청년들이 스스로 깨닫고 자주적으로 자기가 열어갈 길을 추구하도록 방향 제시를 했다.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는 대표작 『마음』(1914)에서,

“자유와 독립과 이기심에 가득 찬 현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그 희생으로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것”

이라고 말하고, ‘개인주의’의 비극을 예견하였다. 또한 ｢나의 개인주의｣(1914) 라는 평론에서 ‘자기본위’에 대해 말하면서 이타적 자기본위라는 말로 개인주의의 활로를 개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횡보(橫步) 염상섭은 평론 ｢지상선(至上善)을 위하여｣(1922)에서 노라를 본받아 자주 독립을 위해 타협하지 말라고 당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직시하고 개인의 자각과 독립이라는 입센의 사상을 간파하여 적용하였다.

최초의 여류 화가 나혜석은 도쿄유학생동인지 『학지광(學之光)』에 신여성상을 제시한 ｢이상적 부인｣(1914)을 발표하고 양건식의 번역연재 『인형의 가(家)』(『매일신보』, 1921)에 삽화를 게재한 바 있는데, 시 ｢노라｣에서는,

‘자유의 대기 중에 노라를 놓아라./ (중략) ‘소녀들이여/ 깨어서 뒤를 따라 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여라./ (중략) 새날의 광명이 비쳤네.’

라며 여성의 자각과 해방을 일깨웠다.

중국의 경우, 후스(胡適)는 ｢입센주의｣(1918)에서 유신과 혁명의 긴요함을 부각시켰다. 이렇게 중국에서는 노라를 혁명의 천사로 인식하고 시대에 부합하여 변용됐다는 특징이 있다. 하나의 외래 사조가 그 나라, 그 시대에 따라 수용되는 일은 늘 있는 일이다.

3. 개인과 광장, 민주주의

‘개인’은 ‘단체’나 ‘집단’, ‘국가’의 대칭적 개념으로 쓰인다. 외로운 개인적 시대에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아가 집단적 국가적 주제에 동참하고 공감대를 갖으며 주체적으로 큰 흐름에 합류하여 스스로 민주주의를 체험한다는 것은 가슴 뿌듯한 일일 것이다. 최근 서울의 광장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의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던 직접민주주의의 현장을 연상하게 한다. 1950년대 남북이데올로기 때문에 개인적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아가는데 실패한 『광장』(최인훈 작, 1960년)의 주인공 이명준의 시대를 넘어 이 시대의 시민들은 타의가 아닌 진정한 개인으로서 스스로 참여하고 직접 민의를 대변한다.

지난 100여년 동안 한국 사회는 얼마나 많은 우여 곡절을 겪어왔는가. 여기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제 2017년 3월, 100만명의 개인이 광장에 모여 정치적 주장을 평화적으로 펼쳐 그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본산 영국 미국 등 주요 언론조차 ‘한국 민주주의의 성과’ 라고 극찬할 정도다.

이웃나라 일본의 수상 간선제인 내각제와는 다른, 우리나라 대통령 직선제의 장점 중 하나가 직접 민의를 바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제도 운영의 미숙과 잘못된 개인적 당파적 욕망으로 야기된 대통령제의 일부 단점에 대해 부분 보완하자는 의견에는 일리가 있다하더라도 모든 것을 제도 탓으로 돌리고 사사로이 당략적 유불리만을 앞세우는 듯한 작금의 주장들에 대해, 제도보다 운용하고 적용하는 인간 개개인의 자각과 실천이 문제라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할 것이다.

현대의 시민사회에서 진정한 개인의 발견은 보편적 가치와 광장 민주주의, 국가와 나를 돌아보는 실마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