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역학의 권위자…

스핀제어 저온 고자기장 STM 활용 철계열 초전도체 연구 등

물성분석도구 ‘주사형 터널링 현미경(STM)’,

쌍방향 체험 학습 사이트 등 개발

물질의 전기저항을 0으로 만드는 신비로운 물리 현상인 초전도체로 송전선이나 전자석을 만들면 열 손실을 0으로 줄일 수 있다. 20세기 초 초전도 현상이 발견된 이래 이러한 특수 현상을 활용하기 위한 응용연구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분야의 권위자인 카이스트 물리학과 이진환 교수는 “초전도는 양자 역학이라는 원자 세계의 물질파 현상이 송전선의 크기만큼 거시적인 규모로 완벽하게 나타나는 매우 특수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KAIST 물리학과 (교수 : 이진환)

초전도 현상의 응용과 탐구

첫 발견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초전도 현상은 BCS 이론에 따라 영하 230°C 이하에서 나타나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가 발견되며 해당 이론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 세라믹임에도 구리 산화물 초전도체는 영하 170°C라는 훨씬 높은 온도 이하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외적 현상의 원리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고, 점차 복잡해지는 이론과 여러 ‘물성 분석 도구’의 등장으로 최근의 연구는 실험으로 제안된 원리를 이론이 검증하는 추세다.

이 교수가 박사과정 때부터 연구해온 ‘주사형 터널링 현미경(STM)’ 역시 대표적인 ‘물성 분석 도구’ 중 하나다. 이는 원자와 전자를 동시에 원자 수준의 고해상도로 관찰할 수 있는 도구로서, 매우 높은 공간 해상도와 에너지 해상도, 매우 낮은 측정 가능 온도, 측정 중인 시료에 물성 이해에 핵심이 되는 고자기장을 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미국 코넬대학교의 저온 STM 연구 그룹에서 5년 간 연구원으로 생활하며 고온 초전도체 연구의 잠재력을 파악한 이 교수는 사이언스 저널에 해당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귀국 후 그는 ‘저온 고자기장 STM을 이용한 철계열 초전도체의 연구’를 본격화했다. 해당 연구는 다양한 초전도 현상들을 규명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 기법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스핀 전류로 철 스핀 배열 변화, ‘초전도를 켜고 끌수 있어’

이 교수는 “철계열 초전도체는 일반적으로 초전도를 깨는 것으로 알려진 원자 자성을 갖는 철이 오히려 초전도를 일으키는 현상”이라며 “10년 전 발견된 이후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고 밝혔다.

철계열 초전도체는 새로운 초전도 원리의 가능성을 시사하며 과학계에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철의 스핀 요동 또는 오비털 요동이 원자 격자 진동을 대신하여 철 초전도를 일으킨다는 원리가 밝혀졌다.

이 교수는 철의 스핀 요동이 초전도를 일으키는 물질에서 외부로부터의 스핀 전류를 이용해 철 스핀의 배열을 바꾸어주면 초전도를 켜고 끌 수 있다는 점을 최초로 밝혀내기도 했다. 이를 저명 물리학 저널인 PRL(Physical Review Letters)에 대표 논문(Editors’ Suggestion)으로 게재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실제 초전도 제어 디바이스 제작으로까지 확장하겠다”면서 “이를 더욱 심도 있게 연구한다면 휴대폰 안의 트랜지스터가 일반 전류를 제어하듯 초전도 전류를 손쉽게 제어하는 고속 초전도 트랜지스터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PRL’, ‘RSI’ 등 국제 유명학술지에 논문 게재

이진환 교수가 진행중인 ‘저온 고자기장 STM을 이용한 철계열 초전도체의 연구’는 그 응용 분야가 무한하다.

“그간 이론적 개념은 있었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이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초전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전자의 스핀을 직접 제어하고 이미징할 수 있게 됐다”고 낙관했다.

이러한 첨단 연구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교수 연구 그룹이 개발한 ‘스핀제어 가변온도 자변자기장 STM’이다. 해당 기술은 현재까지 초전도를 원자수준에서 관찰하며 스핀을 제어할 수 있는 기기가 없었기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진동 감쇠 시스템이나 원자 현미경, 제어 전자 회로 등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데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이 장비는 자성 조절을 통해 현재 활용되는 열 조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초전도를 조절할 수 있는 원리를 원자 수준에서 직접 규명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해당 연구를 가능하게 한 장비 개발 내용은 최근 세계 정상의 과학 장비 저널 Review of Scientific Instruments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다. 이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적층 원자 구조를 활용해 부수적으로 철계열 초전도를 향상시키는 새로운 원리도 규명할 수 있었다”면서 “역시 PRL에 별도로 논문이 게재된 해당 원리를 활용한다면 철계열 초전도 역시 BCS 이론에 따라 그 성능을 대폭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까지 그는 세계적인 학술지에 28편의 논문을 게재했으며, 1380여 회 인용되는 등 학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출판사인 Springer에서 철계열 초전도체의 주사 터널링 현미경 연구에 대한 단행본 저작을 제안받아 준비중이며, 그 밖에도 한국 물리학회 및 초전도학회, 미국 물리학회 등에서도 학문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장비의 신뢰성, 응용성이 특히 중요

이처럼 이 교수는 적절한 장비의 제작과 신뢰성의 확보를 늘 강조한다. “연구를 할 때 무엇보다 ‘장비와 측정 방법의 신뢰성’이 중요하다”면서 “세계적 연구 성과를 위해 기존에 없던 장비를 직접 만들고 연구하다 보니 새 연구 장비와 측정 방법의 신뢰성을 물어오는 일이 빈번했다”고 했다. 최근 RSI 표지 논문 선정과 PRL 대표 논문 선정으로 많은 의문들이 일거에 해소되어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했다. 이 연구 장비를 응용하여 본격적인 생체 분자 연구에 적용할 국제 특허도 획득한 이 교수는 “실용화 단계가 되면, 신약 개발에 드는 기간이나 비용도 크게 절감될 것”이라며 “특히 제약이나 화공 산업 관련 기업들에게 획기적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교수는 또 “분야를 망라해 물리적, 공학적 바탕에 입각해 적절한 연구장비를 개발하고 이론적 극한까지 도달하게 하는게 관건”이라면서 “최근에는 수학을 활용하여 임의의 센서 성능을 개선하여 일반적인 모든 장비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순수 수학 논문을 정통 과학 장비 저널인 RSI에 예외적으로 게재했고 최고 권위의 센서 기술 전문 저널인 ‘Sensors’의 의뢰를 받아 각종 연구 장비에 활용할 수 있는 센서 기술의 수학적 개선 방법에 관한 초청 논문도 쓰고 있다.

쌍방향의 체험학습 사이트 개발, 무료 제공 계획

물리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이 교수는 현재 강의 보조 자료 시스템과 상호 작용 가능한 체험 학습 사이트를 개발하고 있다. “제자들이 물리학, 전자 공학, 생명 공학을 조합해 창의적인 발상과 즉각적인 실현을 하도록 돕고 싶다”는 취지다.

현재 ‘칸’이라는 무료 판서 강의 사이트에는 모든 강의록이 개방되어 있지만, 그 분야가 제한적인 데다 판서 공개에 그치고 있다. 이에 더욱 시각적이며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간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 교수는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여러 사람이 고가의 실험 장비 없이도 실시간 대화를 통해 실험에 참여할 수 있는 가상 실험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면서 “해당 상호작용 학습 자료 사이트는 무료로 공개하면서 지속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나아가선 대학원이나 연구소의 연구 수준을 토대로 매주 새로운 주제와 적절한 스토리를 제시하고, 참여 연구팀 간의 경쟁 개념을 도입한 TV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일반인들에게도 과학을 쉽고 재밌게 알릴 수 있고, 우리나라 과학 기술과 과학자들의 위상도 높아질 것입니다.”

“학생들과 동반 성장하는 맞춤형 교육에 주력”

이 교수는 스스로를 “기초연구의 초석을 다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나에게 물리학은 노력하고 끈기있는 사람들이 성과를 내는 것”이라는 이 교수는 “‘물리는 곧 생활’이며, 생활물리 등 일상에 적용 가능한 물리학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강단에선 인재양성과 함께 “학생들과 동반 성장하는 맞춤형 교육”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의 질문이 나오도록 하는 ‘토론식 교육’을 유도합니다. 완전히 엉뚱한 과학 연구를 자기 집 뒤뜰에서 수행하는 해커 과학자들의 동영상들을 보여주며 연구와 교육의 동기도 부여하곤 하죠”

그는 일련의 연구를 통해 미래지향적 과제를 늘 탐구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질병 치료에 이 주사 탐침 현미경 기술을 접목하면 의학 발전의 한 획을 그을 것으로도 전망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 제 모든 연구 개발을 응용 가능성과 실용화, 상용화에 주안점을 둘 것”이라는게 이 교수의 다짐이다.

서울대학교 물리학 박사 출신인 이진환 교수는 서울대학교 반도체 공동 연구소 연구원, 코넬대학교 원자 및 고체 물리 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2010년부터 한국과학기술원 (KAIST) 물리학과에 몸을 담고 있다. 저온 물리학, 나노 물리학, 초전도 물리학 · 초저온 주사 터널링 및 원자간력 탐침 현미경이 그의 전문 분야다. Nature, Science, Physical Review Letters, Review of Scientific Instruments 등 세계적인 학술지에 28편의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