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과 유기화합물분자 결합 ‘나노분자소자’ 연구로 주목
고성능, 고집적 나노구조 구현, ‘나노기술 다양한 활용 가능성 탐색’

전북대 화학과 (교수 : 한재량)

전북대 이화학연구소장인 한재량 교수는 최근 ‘실리콘-유기분자의 일차원 접합구조와 전자구조의 서브 옹스트롱 스케일 연구'로 주목받는 과학자다. 나노과학 분야의 권위자인 한 교수는 △기존 연구의 이론 검증 △실제 반응상황 및 이론제시 △응용 가능성 등을 연구의 대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연구 역시 그런 원칙을 기반으로 반도체 소자에 사용되는 실리콘 재료에 유기분자화합물을 추가하여 나노기술에서 좀더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다.
실리콘 반도체 소자 기술의 주요 목적중 하나는 나노기술을 이용하여 소자 크기를 아주 작게 만들어 집적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실리콘 반도체는 집적도의 한계가 있고, 선의 두께가 수 나노미터 이하가 되면 디지털신호를 구현하는 전자 움직임을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이상 반도체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특성의 실리콘 반도체 개발이 요구된다. 
새로운 특성의 실리콘 반도체 개발은 순수한 실리콘이나 게르마늄 같은 단일 원소 반도체가 아닌 두 종류 이상의 원소 화합물로 구성된 반도체이어야 한다. 그래서 제시된 것들이 화합물 반도체, 탄소나노튜브 반도체, 실리콘 나노와이어 반도체, 선형 유기 단일분자, 생물학적 분자 등이다. 이들을 이용하여 반도체 기능을 하는 다이오드나 트랜지스터 등으로 활용하려는 연구와 여러 반도체 기능들을 조합한 논리연산회로 등의 구현에 응용하려는 연구들이 제시되었고 현재 일부 진행되고 있다.

실리콘 반도체 집적도 한계 극복 연구  
이에 한 교수는 연구를 통해 실리콘에 특정 유기화합물분자를 결합시키고, 이때 유기분자가 지닌 특정기능을 실리콘-유기분자계에 포함시켜 그 분자 기능성을 나노분자소자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했다. 
이에 앞서 10여년 전에 단일 유기 분자들이 분자전자소자로서 정보전달의 매개체로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된 바 있다. 기존에 잘 알려진 유기화합물분자들이 구조와 기능 면에서 전자소자 기능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며, 이에 기능성 유기분자로 실리콘을 개질하여 새로운 반도체를 구현하는 연구가 필요했다. 나아가서 기능성 유기분자를 이용하여 실리콘 표면에 다양한 나노구조를 형성하고, 그 나조구조의 물리화학적 성질을 연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반도체-분자 전자소자의 결합특성 이해와 나노기술 상용화의 원천연구다.
순수기초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분자나노구조의 크기가 10 nm 이하로 줄어들 때 고전역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물리화학적 특성이 발현된다. 따라서 그 특성의 원천적인 이해가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고성능, 고집적 나노구조 설계 및 구현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 교수는 또 기능성 유기분자를 이용한 실리콘 표면 개질 연구는 실험 및 이론 기법으로 접근하여 연구를 시도했다. 실리콘 표면의 유기분자 나노구조 가운데 선형으로 생성되는 일차원 구조를 서브 옹스트롱 분해능에서 (1 옹스트롱 = 10-10 m) 시각적으로 측정하는 연구 외에서도 이 구조들의 전자구조를 공간적으로 이해하려는 데에 집중해왔다. 그동안 국내외적으로 나노구조 자체의 생성에 초점을 둔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지만 사실상 실험기법의 근본적 한계로 인해 서브 옹스트롱 원자수준의 공간적 구조 및 전자구조 특성 연구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한 교수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독창적 연구를 시도한 것이다.
이를 위해 한 교수는 극저온 및 초고진공에서 작동되는 주사터널링현미경을 이용하였다. 극저온 주사터널링현미경은 실험실에서 자체 제작한 것이며 안정성과 성능 측면에서 세계최고 수준이다. 지난 10여 년동안 기초적인 제작을 했으며 실험 주제에 따른 수정을 해왔다. 
주사터널링현미경을 사용하여 유기 분자-실리콘 결합으로 생성된 분자나노구조가 일차원적으로 생성되고, 분자나노구조에 방향성(aromaticity) 기능이 구현되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구체적으로, (1) 자발적으로 생성되는 일차원 실리콘 표면 분자나노구조의 위치 및 크기를 제어하는 방법, (2) 극저온 주사터널링 현미경 및 터널링 분광학 기법으로 분자나노구조의 공간 및 전자구조를 서브옹스트롱 분해능으로 연구하여 특정 나노분자소자로서의 응용가능성 확인, 그리고 (3) 분자나노구조에 금속원자를 함께 흡착시켜 일차원 분자나노구조의 성능을 변형시키는 방법이다.

주사터널링현미경으로 분자나노구조 분석    
한 교수는 특히 반도체 소자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실리콘인 저밀러지수 표면인 Si(001), Si(111) 외에 고밀러지수 실리콘 표면인 Si(5 5 12)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고밀러지수 실리콘 표면은 기하학적 구조측면에서 일차원적 구조 특성이 있으며 일차원 구조가 수 mm 크기의 실리콘 웨이퍼 전체에 걸쳐 일정한 방향으로 배열되어 있다. 또한 일차원 구조가 네 가지 종류이며 각 구조의 유기분자에 대한 반응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표면 분자나노구조 생성 제어에 적합한 표면이다. 각 일차원 구조 내에서도 실리콘 원자의 배열구조가 다양하여 분자반응의 선택적 메커니즘의 상대적 비교 연구에도 적합한 대상이다. 
한 교수는 “연구를 통해 이를 기판으로 사용하여 분자의 결합을 시도하였으며 이를 통해 기존 저밀러지수 실리콘 표면에서 구현하기 어려웠던 표면 분자나노구조의 생성, 위치제어, 전자구조의 특성을 파악했다.”면서 “대체로 세 가지 연구 결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첫째로 간단한 방향성 유기 분자 (예를 들면 벤젠, 피리딘, 아닐린, 티오핀 등)들은 저차원 실리콘 표면에 결합될 경우, 실리콘 결합시 분자의 방향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표면의 균일한 방향성 기능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고밀러지수 Si(5 5 12) 표면에서는 표면 원자와 결합 후에도 방향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확률이 훨씬 더 크다. 특히 아닐린 분자의 경우는 거의 모든 분자가 방향성을 유지한 채 실리콘에 결합되어 실제로 Si(5 5 12) 표면의 균일한 방향성 기능화에 매우 유용하다. 그 차이는 열역학적, 운동학적 결합메커니즘과 안정된 최종 결합구조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둘째로, 고밀러지수 Si(5 5 12) 표면은 일차원적 구조적 특성이 있어서 유기분자 흡착으로 일차원 유기분자-실리콘 접합구조가 생성된다. 이 때 일차원 분자구조인 선 구조는 두께가 단일 분자 크기인 수 옹스트롱에 불과하다. 이같이 수 옹스트롱 두께의 일차원 구조가 생성되지만, 분자간 간격이 또한 수 옹스트롱 정도로 일차원적 전기적 전도성이 부족하다. 
이를 위해 전도성 금속을 유기분자와 함께 실리콘 표면에 흡착하여 분자간 사이를 금속원자로 채우는 연구도 진행하였다. 금속 원자는 유기 분자에 비해 실리콘 표면에서 확산 장벽이 낮기 때문에 상온 또는 고온에서 일차원적으로 표면에서 확산이 가능하다. 따라서 유기분자의 강한 흡착, 금속원자의 약한 결합을 조절하여 궁극적으로 전도성 있는 일차원 분자나노구조를 생성할 수 있었다. 
셋째로 이같은 방식으로 생성된 분자나노구조는 상온에서 전도성을 갖는 일차원 나노구조이지만 낮은 온도에서는 절연체로 변하는 현상이 있다. 이에 한 교수는 전도체-절연체 전이현상과 분자나노구조의 상관관계를 계속 연구 중이다. 또한 나노구조 안에 전자 들이 갇히면 단일 전자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서로가 강하게 작용하여 전하와 스핀으로 분리되고 서로 다른 그룹 속도를 갖는 Luttinger-liquid 현상도 연구하고 있다. 

실험장비도 직접 만들면서 연구의 바탕 원리 습득
전북대 화학과는 50여년의 역사를 지닌 지역의 연구 및 학문의 거점이다. 현재 12명의 교수가 있고, 학부 240명, 대학원 30여명이 재학하고 있다.
포스텍 화학과 이학박사, 코넬대학교 물리학과 연구원, 서울대 화학부 BK21 조교수를 거친 한 교수는 나노과학 분야에서 학문 이력을 축적해왔다. 특히 전북대 이화학연구소장이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겸임교수, STIP Law Group, Advisory Board 등을 겸하면서 학문 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물리화학 분야의 실험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한 교수는 “특히 실험장비도 직접 만들며 연구의 바탕 이론부터 습득하고, 나아가선 첨단 연구까지 망라한다”고 했다. 한번은 10억원 시가의 나노장비를 2억원 들여 자신이 직접 만들기도 했다.
“실험장비를 직접 만들다 보니 장비를 구입해서 연구하는 분들이 할 수 없는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게 됩니다. 예컨대, 단일분자 직접 조작하는 연구 분야인 ‘단일분자동력학’도 그런 과정에서 거둔 성과 중 하나죠”
그래서 “기초과학에서는 실험장비를 만드는 것이 초석”이란 얘기다.

한 교수는 학부생들에겐 쉽고 재미있고, 흥미를 유발하는 수업을 이어간다. 대학원생들에겐  실험장비 제작에서부터 스스로 논문을 쓰는 능력까지 갖추도록 한다.
그는 연구와 교육을 통해 늘 “남들이 안하는 것을 찾아서 매진하라”고 후학들에게 당부하곤 한다. “또한 각자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성실히 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살아남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게 제 교육 철학입니다.”
한 교수는 특허 및 기술이전에도 관심있어 미국변리사 자격도 땄다. 덕분에 지적재산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 카운슬링을 하기도 한다.
그는 특히 기초과학의 중요성도을 새삼 강조한다. “기초과학을 등한시 해서는 안된다.”면서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이 변해야 하고, 오로지 논문과 연구실적을 중심으로 능력을 판단하는 풍토가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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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화학과  한재량 교수 인터뷰>

“내 연구, 화학지식 체계화 ‘환원 논리’ 개발 목적”

Q. 교수님의 연구에 깃든 철학 혹은 특징은?
A. 본 과제에서 수행된 연구는 특정 나노기술을 개발 상용화하려는 응용연구가 아니며 실리콘-유기분자의 일차원 접합의 기하학적 구조와 물리화학적 성질을 이해하려는 원천적 연구다. 특히 실리콘-분자의 결합반응경로가 미세한 주변 환경 조건에서도 차이가 나타나는 바 서브 옹스트롱 수준 공간 분해능 연구는 표면 반응동력학에 새로운 화학지식을 기여한다. 또한 본 연구는 기존 연구를 따라잡아 국제적 경쟁력을 얻으려는 연구가 아니다. 연구책임자가 15여년간 쌓아온 경험적 실험지식에 근거하였으며 화학지식을 조금 새롭게 체계화 할 수 있는 환원 논리를 개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그동안 실험 기법의 제한 때문에 반응동력학에 대한 지식을 이론적 방법에 의존해왔었는데 본 과제에서는 자체 제작한 실험 장비로 이론 연구에서 구현하기 힘든 실험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나노분자소자 관련된 실리콘 표면-유기분자 접합계에 대한 이해를 원천적으로 추구할 수 있었다.

Q. 앞으로 연구 계획이나 방향, 목표는?
A. 현재 새롭게 계획하는 연구는 본 과제결과를 기반으로 하여 확장한 “서브 옹스트롱 시공간 고체표면 단일분자 동력학 연구”다. 현재까지는 고체표면화학반응의 분자동력학 연구를 시간이나 공간 중 한 가지 측면에서만 이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즉 분자의 운동과정을 매우 짧은 시간 분해능으로 연구하는 분야와 분자운동의 공간 의존성을 원자 분해능 수준에서 연구하는 분야가 별도로 진행되어왔는데 이를 융합하여 연구하려 한다. 연구대상은 분자 동력학적 자유도가 제한된 극한 공간적 조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들이며 이를 단일분자 수준에서 시공간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즉 화학반응의 상공간적 변수를 단순화시킨 저차원 공간 조건 (단일분자, 금속표면, 실리콘표면, 자기조립 분자층 등)에서 탐색 분자반응에 대한 실공간 실시간 동력학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다. 실험적으로 구현된 극한 공간 조건에서의 반응 동력학 이해를 위해서 반응계의 주요 환경변수인 반응계 온도, 전기장, 공간 분자밀도 등의 공간적 구현이 필요하다. 그리고 구현된 공간과 조건에서 서브옹스트롱의 실공간 분해능으로 실시간 연구를 통해 반응 동력학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표다.

Q.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의 꿈이나 계획은?
A. 과학기술이라는 건물이 있다면 작은 벽돌을 하나 쌓을 수 있을 정도로 관련분야에 기여 하고 저보다 나은 후배인력을 키우는 것이다. 요즘은 연구 논문이 연구자의 주 평가항목이 되는 시대에서 단순한 호기심과 관심만을 갖고 연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과는 상관없이 제가 관심있는 연구를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지원받고 싶은 것이 하나의 작은 계획이다. 관심이 없으면 꾸준한 연구에 필요한 동기부여가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자로서는 가르치는 대학원생들에게 특정 연구 주제를 처음 설계부터 논문 마무리까지의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이런 교육 방식이 연구의 진행속도에는 부담을 준다. 그러나 대학원생에게는 과학적 사고체계를 스스로 훈련하고 졸업 후에는 자신만의 연구주제를 찾아서 과학기술에 기여할 수 빠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