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하는 자세는 그림자까지도 아름답게 한다.

유영태교수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기계시스템·미래자동차공학부

  
공기마저 상큼한 늦가을, 청명한 밤하늘에 둥근달이 하늘 높은 곳에 매끈한 모양으로 달려 있다. 푸르스름한 달빛은 깔끔하고 정갈하게 정리된 마당에 쏟아지고 있다. 한지를 팽팽하게 바른 하얀 방문에는 부부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그림자가 멋스럽게 보인다. 서로 다정하게 마주 앉은 그림자가 아름답기까지 하다. 요즘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비록 그림자로 비춰졌지만 서로 경청하는 부부의 자세는 세상공부를 많이 한 고승의 지혜 섞인 사랑 이야기가 방안 공기를 타고 솜털보다 더 부드러운 모양으로 듣는 사람의 가슴에 살포시 자리 잡는 것만 같다. 경청하는 자세는 이와 같이 그림자마저도 아름답게 만든다. 
  경청하는 분위기에는 걸림돌도 없고 저항도 없다. 세상 보는 눈이 밝아질 것 같은 멋진 분위기가 감동으로 다가 온다. 사람들은 매력으로 감동을 주기도 하고, 감동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 매력 중에 외모가 단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얼굴로부터 매력적 요인을 판단하기도 하고, 입고 있는 옷을 보고 어떤 사람일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한다. 얼굴은 평소의 생각과 습관이 투영된 모습이고, 옷차림새는 교양과 예술적 감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느끼는 매력의 또 다른 요소는 말하는 태도나 듣는 자세이다. 말은 생각의 표현이고, 자세는 생각이 투영된 마음가짐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있어서 얼굴은 이력서이고, 여자에게는 청구서란 말도 있다. 얼굴에 생각이 드러나기도 하고, 습관적으로 반복된 특정한 행동이 얼굴에 깊게 새겨져 얼굴 모양이 변화되기도 한다. 자주 화를 내면 화난 얼굴로 굳어지고,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자주 하면 얼굴의 모양도 넉넉하게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얼굴을 보고 어떤 사람일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어디까지나 짐작 하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내면의 사실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얼굴이나 외모 보다는 신뢰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매력 없다고 생각한다. 언행일치가 안 되는 경우는 대게 말이 많아지면서 실수 하는 확률이 높아진다. 일상적인 대화에는 자기자랑이거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해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는 도중 자기자랑이 지나쳐 우월감으로 표현되면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더욱 부정적인 요인은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경우다. 험담에는 최소한 3명에게 치명적으로 나쁜 영향을 준다. 그 세 사람은 험담하는 사람, 그 험담을 듣는 사람, 그 험담의 대상자이다. 험담으로 인하여 편향된 생각이 기억 속 흔적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험담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디지털 발자국처럼 뇌리에 잔상으로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장애로 작동되어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 말이 많아지면서 발생하는 부작용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말의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경청하는 자세이다. 경청하는 자세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듣는 것이다. 경청은 온몸으로 듣기 때문에 그림자로도 알 수 있게 한다. 경청하는 분위기는 몸에서 풍겨나기 때문에 마치 잘 익은 과일의 향기가 온누리를 가득 채우는 것과 같다. 경청하는 자세는 지혜가 함께 할 때 가능하다. 경청하는 자세가 지혜의 시작이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경청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모르는 것을 누군가 말하면 모르기 때문에 잘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청이 어려운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을 다른 사람이 말할지라도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듣는 자세이기 때문에 어렵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도 집중해 들으면서 혹여 같은 사안을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은 없는지 헤아리는 것이 경청이다. 그래서 경청은 지혜에 속한다. 같은 음악을 감상하고, 동일한 그림을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른 이치와 같다.   
  경청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사람마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게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토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큰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자기중심적 사고로 인하여 겸손이 마음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겸손은 비굴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이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경청하게 한다. 겸손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겸손할 때 경청이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대화하는 자세를 보면 겸손한 사람인지 경망스러운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며 겸손한 자세를 보이는 사람에게 공격적인 마음을 갖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매력을 느낀다. 생각이 깊고, 세상을 보다 멀리 바라보는 심오한 혜안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경청은 멈춰 서서 집중하는 상태로 듣는 자세이다. 빠르게 흐르는 물살에는 얼굴을 비춰 볼 수 없다. 잔잔한 호수라야 자신의 얼굴이 반사되어 볼 수 있다. 고요한 물처럼 마음이 잔잔해져야 경청 할 수 있다. 경사가 급한 계곡에서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에는 큰 물고기가 살 수 없다. 깊고 잔잔하게 흐르는 물이라야 크고 작은 많은 생물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 마음에 갈등의 소용돌이가 없이 잔잔해야 경청할 수 있고, 깊고 고요한 물처럼 세상의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다. 
  경청하는 자세는 잘 익은 과일의 향기가 퍼져나가듯 멀리서도 알 수 있다. 경청하는 자세는 저절로 몸에 베이는 것이 아니다. 비바람에 흔들리면서 익어가는 향기 나는 과일 것처럼 경청하는 자세도 갈등을 이겨내며 습관이 익어간다. 비바람에 시달린 나무일수록 흔들리면서 뿌리가 깊어진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시들지 않고 과일을 영글게 한다. 사람도 경청으로 생각의 뿌리가 깊어야 삶의 향기가 멀리까지 전달된다.  
  사람이 극한상황까지 고생하면 말이 적어진다고 한다. 세상일을 보다 신중하게 바라보게 된다고 한다. 많은 말 대신에 작은 소리도 경솔하게 듣지 않고 신중하게 경청하며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세상에는 아무렇게나 처리해도 되는 일이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실타래 같이 고약하게 꼬인 일도 대화로 그 해결방법을 찾는다. 그 대화의 시작은 경청으로부터 출발한다. 경청하는 분위기가 매력적인 향기가 되어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