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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리아의 이발사.그리고 피가로의 결혼
안수경 교수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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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7  17: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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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리아의 이발사.그리고 피가로의 결혼

 

프랑스의 극작가 피에르 보마르셰(1732~1799..프랑스)의 대표적인 희곡엔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이 있다.
당대 꽤나 인기있던 보마르셰는 이 작품을 희가극으로 구상해 지필 했었는데 이탈리아의 작곡자 조아키노 롯시니(1792~1868.이탈리아 )와 볼프강 아마에우스 모차르트(1756~1791.오스트리아)에 의해 만들어진 오페라를 통해 이 작품 등은 현재까지 사람들 기억 속에 더 자리를 잡게 되어진다.
보마르셰가 전편인 ‘세발리아의 이발사’를 작곡했을 당시 그의 인생사는 결혼 2년만에 아내가 죽고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2년 후 그 둘 사이에서 난 4살의 아들이 죽기도 하였고 또 여러 가지 소송문제로 ‘소송왕’ 이란 별명까지 붙여질 정도로 보마르세는 고소고발과 시민권박탈이라는 여러 가지 인생사에 있어 큰 시련을 겪은 시기였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사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시대를 풍자한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프랑스혁명에 불씨를 가한 작품이기도 한‘피가로의 결혼‘을 발표함으로 자신의 어려운 개인적 문제들을 재치와 위트있는 글로 이겨낸 작가이기도 하다.

처음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작품은 연극으로 발표되었는데 작품의 주인공 피가로 역으론 루이 16세의 동생인 아르투아 백작이 맡았으며 로지나 역엔  4년뒤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후속편인 ’피가로의 결혼‘이 불씨가 되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이에 왕비가 처형당한 바로 그 본인인 왕비 마리앙투아네트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작품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한다

희곡으론 발표되어진 순서가 ‘세빌리아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의 순서이지만
오페라로 세인들의 이름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작품은 속편인 ‘피가로의 결혼’이 당대의 흥행 대본작가인 로렌초 다 폰태(1749~1838)에 의해 각색이, 또 천재 작곡가인 모차르트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지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어진다. 모짜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의 흥행으로 유명 오페라 작곡가로써의 명성이 자리잡게 되었을 정도라 하니 그 작품은 당대 시대를 뒤흔들만 하고도 남았던 듯 싶다.

보마르셰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피가로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역경을 디디고 백작과 백작부인의 결혼한다는데 재미요소를 더 많이 남겼지만,그 후속작인‘피가로의 결혼’에서는 그둘의 결혼에 많은 공인을 한 이발사 피가로가 그 공헌에 백작의 하인이 되었지만 원체 바람둥이였던 백작이 피가로의 약혼자 수잔나를 탐내기 시작하며 피가로와 수잔나 그리고 백작부인이 합작하여 백작을 혼내주고 후엔 백작부인이 이를 용서해준다.‘란 내용으로 왕족들과 귀족들의 사치와 문란, 낭비가 극에 달했던 시대적 상황을 꼬집어 그 외 나오는 인물들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코믹하게 신분타파까지 논하며 풍자함으로써 ‘피가로의 결혼‘의 작품이 프랑스 혁명에 불씨를 당긴 작품이 되었다 하니 글이란, 아주 조용하지만 스나미와 같은 영향을 주기도 하며 또 그러한 작품은 시대가 변해도 신이 우리들에게 허락한 인간의 존엄성이 살아있는 한 영감을 지닌 예술가들에 의해 계속 되어지리라 본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불과 보름만에 작곡하여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고 한 롯시니에 의해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만들어지는데, 원래 롯시니의 선배였던 작곡가 피이지엘로에 의해 1782년 만들어져 흥행몰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페라의 신동 롯시니는 이 작품이야 말로 최고의 희가극이 확신하여 23살의 나이에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자신도 만들어 발표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세빌리아의 이발사’라는 작품이 존손케 하게 한다.

롯시니가 남긴 이야기로 “모짜르트는 자신에게 처음엔 음악가로써 좌절을 느끼게 하였지만 그의 작품인 피가로의 결혼을 본후엔 내게 세빌리아의 이발사라는 작품을 남길수 있는 뛰어난 영감을 준 사람이다”란 이야기를 남기는 데 이는 당대 유명 작곡가로 자신에게 지닌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를 시기 질투하며 평생을 남을 질투하다 생을 마감한 안토니오 살리에르(1750~1825)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임으로써, 천재 작곡가인 모차르트가 만든‘ 피가로의 결혼’과 견주어도 하나 뒤지지 않는 위대한 작품을 만들게 된 것처럼 겸손과 존중의 마음이란,
음악을 떠나 삶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귀감이 되어지는 덕목이라 여겨진다.

베토벤은 살아생전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듣고 후배 롯시니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한다. “오페라가 존재하는 한 당신의 음악은 영원히 연주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성품이 말해주듯 오페라 부파(오페라의 희극장르)에만 손을 대세요” 란 말처럼 하루에도 수많은 작곡가와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글과 음악들 사이에서 시대를 반영하지만 그안에 시대를 풍자해 울리고 웃게 하며 암울한 시대를 재치있게 헤쳐 나가게 하는 위대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발표되어지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구에게나 가질수 있는 인생사의 비극이나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겸손에 못지않은 웃음이란 요소는, 어려운 정치적인 상황이나 경제적인 상황과 가정 환경이나 기타 질병등 여러가지 상황에서도 어려움을 뚫고 나갈수 있는 가장 뛰어난 요소 중의 하나라 생각되어 진다.

그러한 웃음이 가득한 2019년의 새해 아침을 열길 바라는 새아침.
어렵고 힘들었지만 따스했던 아름다웠던 2018년의 추억들을 담아..
올핸 더욱 어려워질수도 있다는 여러 상황 속 에서도 많이 웃고 많이 나눠 줄수 있음으로 상황을 역전시키는 마음의 부자들이 많아지는 새해이길 소망해 본다.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닌. 감사해서 행복한 것 이란 말처럼..
웃을 일이 많아서 웃는 것이 아닌. 먼저 웃고 나니 웃을 일이 많아지는 그러한 기쁜
한해가 우리 모두의 삶에 넘쳐나 ‘세빌리아의 이발사’‘피가로의 결혼’의 원작자인 보마르셰나 그 작품을 음악으로 더욱 빛을 발휘하게 한 롯시니나 모차르트의 예술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기쁨 가득한 한해가 되길 희망해 본다.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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