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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세상을 멋지게 만든다
유영태 교수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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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4  12: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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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세상을 멋지게 만든다.  

 


유영태 교수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기계시스템·미래자동차공학부

 

광활한 우주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우주는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시작했고 지구는 45억 6천만 년 전에 생겨났다는데 정말일까. 시간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생명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무엇이 공포와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 이 외에도 우리 주위에는 궁금한 것들이 무수히 많다. 왜 우리는 모르는 것과 만나면 마음이 답답할까.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무서우리만치 부모에게 질문한다. 호기심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어린아이에게는 신기하기만 하다. 부모에게 질문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에 부모도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부모에게 쏟아졌던 질문은 차츰 줄어들지만 호기심은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호기심을 해결하지 못하면 마음은 답답함으로 불편하다.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호기심을 해소한다. 호기심이 발동하면 답답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많은 별들 중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우주에는 어떤 질서와 규칙이 있는 것만 같고, 그 규칙과 질서에 따라 세상이 작동하는 것 같은 생각이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우주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무엇이 질서를 잡는가에 대한 호기심은 빅뱅이론으로부터 원자 전자 쿼크를 설명하기도 하고, 우리 은하계와 또 다른 우주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재미난 많은 이야기를 만든다. 우주의 질서와 물질의 본질에 대한 설명은 서로 모순되기도 하고 대립하면서 보완하는 방식으로 호기심을 설명한다. 과학은 우주의 질서 속에 생명의 비밀을 수학적 기호와 실험으로 호기심을 설명한다. 하지만 수학적 설명을 넘어 우주 공간에는 여전히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커다란 호기심 영역이 여전히 남아 있다.   
 대표적인 영역이 사람이다. 생각을 주관한다고 믿어지는 뇌의 경우는 더욱 신비한 호기심 영역이다. 에너지를 전부 소비하여 심장의 박동이 멈추면 영혼이란 게 사람 몸으로부터 떠나는 것인지 아니면 영혼이란 게 애초부터 없었던 것인지 아직도 모른다. 우리가 본다는 것도 눈을 통해 들어온 광자의 신호가 시세포를 자극하여 바뀐 전기신호가 뇌의 일부분을 자극하는 현상이라는 데 정말일까. 생각과 마음이란 게 어떻게 작동되어 발현하는지 아직도 호기심으로 남아있다. 사람들이 죽고 나면 사후의 세계는 정말 있는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과학적 증명에서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매우 다른 이야기다. 모르면 호기심이 남는다.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니다. 영혼의 질량을 측정하지 못하고 생각의 무게를 물리적 숫자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는 것인가. 물리적으로 측정하지 못하고 화학적으로 만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호기심이란 세계 속에는 여전히 신비한 것들이 남아 있다. 
  호기심은 전설과 신화를 만들고 사람사이의 삶을 강팍하지 않고 풍요롭게 만들기도 한다. 신화나 전설은 호기심을 자극하여 풍요로운 상상으로 개인화된 관념의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만든 관념의 세계에는 다양한 가치의 행복이 깃들어 있다. 행복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신화나 전설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혀주는 경우도 있다. 과학이 신화나 전설이 실제로 존재했던 시기를 밝힌다 할지라도 신화나 전설이 사람에게 주는 믿음과 삶의 가치세계를 감동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신화나 전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고 덤비면 사람의 호기심으로 출발하는 관념의 세계에서 오는 풍성함이나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무미건조한 세상에 가둬 놓을 수도 있다. 호기심을 담은 멋진 일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세상이 문학과 예술이다. 문학과 예술은 잘게 나누어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통으로 느끼는 통섭의 세상이다. 우리가 무언가 하면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보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 한다. 예술적이란 말은 분석하고 계량하는 것이 아니라 숨이 멈출 것 같은 감격에서 터져 나오는 울림의 탄성이다. 노래는 높은 소리, 중저음, 장단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하는 공명의 소리로 느끼는 것이다. 그 감동이 어디에 있고 어떤 모습이냐고 물으면 증명할 수는 없다. 그냥 그저 느끼는 것이다. 사람마다 감동 받는 정도가 다르고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정량화 할 수는 없다.  
  문학이나 예술은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도구에 있는 세계가 아니라 감성이 출렁이는 영혼과 마음이 작동하는 감동의 영역에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할지라도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호기심 영역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자연과학자들은 영혼이나 마음을 수학적인 논리나 실험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아직은 추측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다. 신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수학적으로나 실험으로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신이 없다고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모른 상태로 남아 있다. 다만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분명 신은 있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신은 분명 없다. 신이 있다고 믿어 행복하면 그만이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씩씩하고 자신감 있게 살면 그만이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예술과 문학의 영역에서 강화된 또 다른 호기심 영역이다. 강화된 호기심의 이야기 속에는 물질의 세계를 넘어 삶을 윤택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신념으로 점철되는 감동의 세계가 있다. 
  빅뱅이전의 우주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팽창하는 우주에서 수천억 개의 은하수와 항성과 행성 사이에서 일어났던 많은 현상을 이야기하지만 이 모두가 합리적인 추측일 뿐이다. 이 합리적 추측을 근거로 하는 많은 이론들은 또 다른 이론으로 근사하게 설명하기 전까지만 효력이 있다. 천동설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한 것  처럼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관습적인 생각에 호기심이 중첩되면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린다. 호기심은 사소한 상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상상은 통상적인 관념을 거부하고 호기심을 발동하게 한다. 세상의 멋진 일들은 호기심이 원동력이고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사람은 늙을 수가 없다. 나이 들어가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사안은 호기심을 잃는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을지라도 호기심이 있는 동안은 청년이다. 멋진 세상은 호기심 많은 청년들이 만든다. 거울을 보며 세월과 함께 노화하는 피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들여다보며 호기심이 눈동자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자세가 젊게 사는 방법이다. 호기심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자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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