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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기술은 이용의 대상이지 불안요인이 아니다
유영태 교수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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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5  15: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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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기술은 이용의 대상이지 불안요인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기술 시대가 오면 많은 일자리가 없어질 거라며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기사가 지면을 뒤덮기 시작한지 오래됐다. 이 기사가 일면 옳을 수도 있다. 이런 기사가가 유독 사람들에게 많은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이유는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불확실한 위험에 대처하도록 진화한 특성 때문일 수 있다. 이익보다는 위험에 대처해야 생명을 잃을 확률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전인자로 남아 예측 불가능한 것에 대한 잠재의식은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는 마치 보약을 백번 먹는 것 보다 치명적인 독약 한번 잘 못 먹으면 생명을 잃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익보다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4차 산업혁명기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불안의 시작은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의 바둑경기의 결과로 촉발되었다.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많은 바둑은 절대로 인공지능이 이기지  못할 것이고 인간이 당연히 우세할 것이란 믿음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자유의지가 있는 로봇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사람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터미네이터 영화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어쩌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불씨를 당긴 것이다. 일부 지식인들은 4차 산업혁명기술을 설명하면서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Big Data),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에 의한 초연결사회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사람이 점점 필요 없어질 것이고 현재의 직장은 대부분 사라져 실업자가 길거리를 가득 메울 거란 주장을 한다. 

어쩌면 이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이 전적으로 옳은 주장은 아니다. 일자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발명품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새로운 것들이 세상에 나오면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직업은 사라졌고, 편리하고 유익한 일자리가 새롭게 탄생하면서 문명을 발달시켜온 것이 인류사이다. 혁신적인 발명품에 의한 과도기에는 밀려 들오는 물과 빠져나가는 물과의 충돌로 일시적인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과학기술은 언제나 사람의 능력을 확장시켜주는 방향으로 발명해 왔다. 예를 들면 걸어가는 것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를 만들었다. 작은 것을 관찰하기 위해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 현미경을 만들었고, 먼 곳을 보기 위해선 망원경을 만들었다. 계산능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컴퓨터를 만들었고, 먼 곳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전화기를 만들었다. 궁금한 것이 있을 경우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도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데 활용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요즘 일부 지식인들 중에는 4차 산업혁명기술 시대가 오면 사람들의 일을 대부분 기계가 대체할 것이고, 인공지능 로봇에게 사람들이 지배당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원시시대부터 불확실한 위험에 대비하도록 진화하면서 위험요소에 대비하는 신중함이 유전자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토끼를 사냥하면서도 숲속에 잠복 해 있을 호랑이를 의식해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빈약한 수렵시대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는 가급적이면 에너지소비를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을 만나면 이것과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적은 익숙한 것에 정착하려는 습성이 발현되는 것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관계있을 수도 있다. 이런 습성이 사람들의 능력을 보강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계에 대한 거부감으로 남아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경쟁사회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발명품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경쟁에 뒤쳐질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부지런히 학습하면서 능력을 향상시켜왔다. 지금까지 많은 발명품들은 이용의 대상으로 생각 했지 경쟁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동차, 건설장비, 각종공작기계는 사람과 대결의 대상이 아니고 이용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신속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학습하며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4차 산업혁명기술에 의한 발명품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기계가 나타나면 재빠르게 학습하고 이용하면 더 편리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바둑을 이긴 것이 아니라 알파고를 이용한 사람이 이세돌을 이긴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사람을 이겼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확대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알파고와 바둑대결은 단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업의 마케팅전략일 뿐이다. 미래사회를 예측한다는 지식인들 중에는 현제의 일자리는 대부분 기계가 대신할 것이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라져 대규모의 실업상태가 발생하는 커다란 재앙이 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호기심으로 획기적인 발명품을 만든다 할지라도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발명품은 만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시시대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 뛰어들지 않도록 진화했다. 생활하는 데 불편한 것을 개선하기 위해 과학자와 기술자가 일을 하였고 일반인들은 새롭게 발명된 많은 기기들을 이용하는 방법을 습득하면서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살아왔다. 

4차 산업혁명기술은 사람을 도태시키고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문명을 새로운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다. 도로는 그 길을 걷는 사람이 주인이다. 자동차도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도 이용하는 사람이 주인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한 종이 살아남은 것과 같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신기한 발명품을 만들었을지라도 그것을 이용하는 주체는 언제나 사람이었다. 모든 발명품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사람을 인류사에서 밀어내기 위한 발명품은 결코 한 순간에도 없었다. 다가 올 세계는 글을 읽고 쓰는 방법을 몰라서 문맹인이 아니라 다시 배우고 학습하지 않는 사람이 문맹인이다. 인류사에서 언제나 문맹인은 있었고 그들은 불편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동시대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미래 사회에서 불편한 삶을 살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다시 배우고 학습하는 습관을 갖는 것은 지속적으로 매력적인 삶의 핵심경쟁력이 될 것이다.     
 

유영태 교수 조선대학교 기계시스템·미래자동차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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