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고살풀이춤 이희숙 명인

고살풀이는 한 많은 우리 민족의 정서적 해방이다

고살풀이란 죽은 사람의 원한을 푼다는 의미 또는 인간의 12진살을 푼다는 의미의 고풀이 춤을 신명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고(매듭)를 묶은 천을 춤을 통해 풀어내며 인생사의 ‘생노병사 희노애락’에 얽히고설킨 액고액난을 다스리는 춤으로 이희숙 명인의 의해 창시되었다. 여기서 12고는 1년이 12달로 이루어진 자연의 이치와 12지신의 신명적 해석 그리고 인생사에 있어서 일어날 수 있는 12살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고살풀이는 장소와 용도(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춤사위로 변주된다. 천을 의미에 맞는 형태(나비, 사슬)로 12고를 묶어 굿거리장단의 리듬 속에서 행해지는 이것은 즉흥무용, 창작무용 또는 하나의 행위예술이다. 지난해 고살풀이의 이론과 실기를 모두 정립하고 (사)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로 부터 고살풀이의 명인으로 추대 받은 이희숙 명인을 만나 오롯이 25년의 세월을 고살풀이에 받쳐온 춤꾼의 인생을 재조명해본다.

운명 같은 무병, 춤꾼이 되라는 소명 이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몸이 쇠약했던 이희숙 명인은 서른이 되고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수많은 의료기관을 찾아다니며 병마와 싸워 이겨 내려했으나 통증이 멈추기는커녕 병명조차 알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을 보낸다. 모든 병원에서도 알아내지 못했던 통증의 원인은 그녀가 그렇게도 완강히 거부하려던 무병 때문이었는데 우연히 백중놀이나 아랑제 등에 참석해 전수기간을 보내면서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무녀로의 삶을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그녀는 몇 번의 자살기도를 시도했으나 이 역시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어느 날 엄마 젖 냄새가 나면서 신으로부터 ‘받아들이라’는 목소리를 들었고, 동시에 하늘에서 하얗고 긴 천이 내려왔어요. 밀양에 있는 표충사 큰 스님께 여쭈어보니 ‘난 무당은 싫어하지만 보살님은 무당의 길을 걸어야 살 수 있습니다.’라고 하시더군요. 긴 천의 의미를 물으니 ‘춤꾼이 되라’고 이르셨어요.” 이 명인이 스님을 뵙고 나왔을 때 마침 표충사에서 천도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우연히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그녀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근처 화장실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뽑아 들고 나와선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이라고는 일평생 배워 본 적이 없었고, 자신의 춤이 어디에서 기원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무의식 상태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마치 나비가 된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어요. 어떻게 해도 이겨낼 수 없었던 고통이 사라지면서 신기하게도 무병이 낫게 되었죠.” 그 날 이후 여러 곳에서 천도제가 있을 때마다 이 명인을 찾았다. 춤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는 밀양국악협회와 밀양 아랑제 등에서도 그녀에게 섭외 연락이 왔으며 자연스럽게 점점 더 큰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갔다. 특히 당시 선양회나 무속협회와 함께하는 행사가 많았는데, 이 명인은 자신을 찾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특유의 춤사위로 망자들의 아픔을 달래주었다.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는 경남지역을 넘어서 서울은 물론 전국 대부분의 천도제에서 활약하면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모래위에 성을 지을 수는 없었다.

많은 춤꾼들이 그녀의 독창적인 춤사위를 극찬했지만, 서러움 또한 만만치 않았다. 고살풀이는 기존에 없었던 창작무용이었기에 계보가 없었고, 함께 이 길을 걷는 동료도 없었으며 더욱이 울타리가 되어줄 시스템도 전무했다. “무엇보다 제 스스로가 떳떳하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제 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자료들을 찾아가며 공부를 해나갔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는 한이 많은 국가에서 누군가의 아픔을 달래주는 일은 너무도 중요한 행위이며,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즈음 이 명인은 언양의 와아이라 고풀이 굿 재현작업에 참여하며 깨달음을 얻어갔다. 고풀이 문화는 대체적으로 진도 씻김굿이 유명하지만 고서에 따르면 영남지방에서도 행해졌음을 알게 된 이 명인은 고풀이 맥을 찾고자 그동안의 모든 이력과 명성을 접어두고 울산광역시 언양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거주하며 와아이라 고풀이 굿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고살풀이 춤을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더불어 울산 울주군의 이이벌 대동제 지역 축제에서 ‘우리 맥을 찾아서’라는 타이틀을 걸고 ‘쌀 바위 이야기’ 등을 선보이며 지역의 문화 발굴에 앞장서고, 직접 시연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2002년 북한 용천 폭발사고 당시 부산에서 진행된 위령제에서 다른 수많은 명인들의 춤을 제치고 이희숙 명인이 피날레를 장식하면서 각계각층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국에서 내놓으라는 춤꾼들은 다 모였더군요. 저는 제가 설 자리가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는데, 마지막 순서로 고살풀이가 시작되자 엄숙해야 할 자리임에도 관객들이 기립박수로 화답을 하시더라고요. 내 춤에 대한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명인의 이름으로 살리라

이 명인은 2013년 11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로 부터 명인인증서를 획득했다. 명인인증과정이 생겼다는 소식을 접한 이 명인은 고살풀이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도전의 의지를 다졌다. 무형문화제 고증 절차와 비슷한 명인인증 절차는 매우 까다로웠는데, 특히 고살풀이 춤이 전수자도, 계보도 없는 창작무용이었기 때문에 모든 심사과정이 더욱 엄격하게 진행되었다. “우선 명인인증을 15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신청할 수 있어요. 또한 고살풀이의 검증을 위해 이론서를 만들어 제출해야했고, 700장 이상의 실연 사진도 함께 첨부해야했어요. 심사기간만 8개월가량 됐는데, 그 기간 동안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누구도 알 수 없었어요.”

다행히 심사위원들과 기관 내부에서 고살풀이 춤은 반드시 발전하고 전승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다. 공옥진 여사의 타계 이후 ‘병신춤’을 제대로·보전하지 못했다는 뒤늦은 아쉬움들이 보태지면서, 이희숙 명인의 고살풀이를 비슷한 사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생겨난 것이다. 재심사를 거듭한 끝에 그녀는 마침내 고살풀이의 명인으로 지정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이 명인은 “사실 기쁨은 단 하루였어요. 이제 누구나가 인정하는 명인의 칭호를 받게 되었는데 스스로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집요하게 자문했어요. 견딜 수 없는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또 다시 공부를 하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역사와 문화, 인문학 등의 강의를 천 편 이상 찾아 들었던 것 같아요.” 라며 끊임없이 연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고살풀이 춤은 해방이다.

현재 이 명인은 곧 있을 현충일 추모제를 위해 심기일전을 하고 있다. 전국에서 이 명인의 공연을 원하고 있지만 정작 모든 공연을 그녀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며 이런 이유로 더욱 ‘전승의 시급함‘을 강조한다. 또한 조선시대 유명했던 명기 전화앵 묘역에서 울주군청과 울주군 문화원과 연계하여 행사를 진행 중에 있고 바로 6.25 관련 행사들도 줄지어 있어 어느 때 보다 바쁜 6월을 보내게 되었다. 허나 이 명인은 “세월호 사건이후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편치 않아 급한 마음에 인근 남해 지역으로 내려갔어요. 그때 침묵으로 일관하는 바다와 대화하면서 내가 저 영혼들을 위로하는 춤사위를 펼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돌아왔어요. 저는 지금 그 무엇보다 우선해서 모든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가족들도 진도에서 철수하게 되면 그 곳에서 위령제를 홀로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

최근 이 명인은 기관에 고살풀이 전승 보존회 등록을 마쳤다. 명인인증을 받았지만 전승할 사람도, 전승할 공간도, 이를 지원해 줄 국가 기관도 없다는 것이 한스러워 자신이 발로 뛰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는 고살풀이 만의 음악도 만들어야 하고 또 독립적인 공간에서 많은 이들에게 고살풀이를 전수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또한 국가의 기념일이나 각 지역의 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우리나라에도 이런 위령문화가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멈춰버린 우리들의 심장에 또 다른 한을 쌓던 4월과 5월을 지나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잔인했던 6월이 어느덧 시작되고 있다. 고살풀이를 ‘해방’이라고 정의하는 이희숙 명인이 안타까운 사연들을 뒤로하고 망자가 된 많은 희생자들과 애국선열,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여 억겁의 한들을 부디 이 땅에서 자유로이 해방시켜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중히 지켜가야 할 아름다운 문화를 꿋꿋하게 전수해 가는 그녀의 모습에 진중하지만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