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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재난극복이 공동체의 삶을 진화한 세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유영태 교수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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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05  16: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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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재난극복이 공동체의 삶을 진화한 세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유영태 교수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세상 살다 보면 어려움에 휘말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어려운 일에 맞닥뜨리면 극복해야 할 절박함으로 강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피하거나 도망갈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각자의 생명과 관련된 경우에는 그 절박함이 이기적인 상황으로 내몰 수도 있다. 극단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고, 신속하게 해결책을 찾아야만 할 경우도 있다. 시급하게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경우, 시간을 놓치면 사태가 악화되어 수습하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재난 속에서도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이익을 보려는 세력은 언제나 있어왔다. 비 오는 날에는 우산장수가 이익을 보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는 소금장수에게 유리하듯이 사회적 재난을 기회로 보는 무리는 있기 마련이다. 극복해야만 할 두려움이 등 뒤에서 그림자처럼 엄습해 올 때 사태를 수습하려고 힘겨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헐뜯으며 혼란을 가중시키려는 집단이 발생하기도 한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을 충동적으로 자극하고 혼란을 부추겨 자신들의 반사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무리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주위에 존재했었다. 이 모든 갈등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잠재역량이 선진화된 시민의식으로 자리 잡게 한다.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불안심리는 원시시대부터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 온 하나의 특성일 수 있다. 사람들이 낭떠러지에 가면 불안심리가 작동되어 조심하게 되고, 독사를 보면 물리지 않도록 불안심리가 작동한다. 불안심리는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자극하여 생명을 보존하도록 작용한다. 하지만 사회적 재난을 개인의 이익이나 소수집단이 권력을 장악하려는 수단으로 악용하면 공동체는 붕괴의 언저리에 위태롭게 놓이게 된다. 
 사회마다 어떤 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회적 재난 속에서도 많은 갈등을 용해하면서 새로운 잠재력의 싹을 키운다. 살얼음을 건너가듯이 서로 조심하고 협력하는 분위기를 비난하며 발목 잡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서로 껴안으면서 공포보다 더 강력한 희망을 심어주는 문화는 어린 학창시절부터 쌓아온 오랜 교육의 결과로 형성된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합의된 문화는 정교하게 짜여진 교육의 결과가 커다란 재난과 맞닥뜨렸을 때 그 효과를 발휘하게 한다. 
 옳은 일을 한다고 해서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수수방관하다가 일이 잘 마무리되면 무임승차하려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반대편에 서서 비난만 하던 사람의 어깨까지도 다독거리며 에너지가 분산되려는 것을 한 곳으로 모아 포용할 수 있는 문화는 재난을 극복하면서 더욱 강화된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다고 팔을 잘라낼 수는 없는 것처럼 반대편에 있는 사람까지도 포용하는 선진화된 협력은 사회적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싹튼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면 손가락만 아픈 게 아니라 온몸이 불편하게 된다. 가시처럼 반대만 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지라도 손에 박힌 가시를 다루듯이 정성스럽게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는 흙탕물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리 잡게 된다. 
 큰 날개를 띄우려면 강한 바람이 필요하다.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이 더 힘이 들고, 날기 위해서는 뛰는 것보다 더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걸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공기저항과 중력을 극복해야 나를 수 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저항은 항상 발생할 수 있지만,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양해진다. 어려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진실은 양극단 사이 어느 지점에 있을 수 있다. 공기저항과 도로의 마찰저항을 극복하면서 자동차가 달리지만, 마찰저항과 공기저항이 없으면 위급한 상황에서 자동차가 멈추지 못하여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비행기가 중력을 극복하고 공기저항을 이용해서 하늘 높이 날 수 있지만, 중력이 없으면 땅에 다시 착륙할 수 없다. 일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도 이와 같다. 관점을 달리하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해결책도 다양해질 수 있다. 사회적 재난 속에서 불안심리나 공포감은 생존을 위한 절박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때로는 대중들로부터 신속하게 협력을 얻어 단결할 수 있는 동력으로 모을 수 있다. 재난을 기회 삼아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이 비난하고 공격할지라도 이들 때문에 위기의 절박함이 협력으로 나타나 함께 지켜야 할 공동체 의식이 새롭게 자리 잡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수습을 어렵게 하는 갈등은 1차원적인 생각으로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이 등장할 경우다. 1차원을 선, 2차원을 면, 3차원을 공간이라 했을 때, 1차원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선의 양단의 끝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선의 양끝단에서 상대방을 바라보면 상대방은 점으로 보인다. 점은 크기도 없고 면적도 없는 위치만을 표시하는 이미지다. 자신들의 위치만을 강조하는 1차원적인 사람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할 공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 생각이 극히 작은 한 점에 갇혀 선상의 양끝단에 서서 자기만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큰소리로 비난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3차원 공간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3차원 공간에 살면서 사물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보는 것은 3차원적으로 물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2차원의 한 단면만을 보며 판단한다.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앞면만 보이고 등은 보이지 않는다. 등을 보려면 뒤로 돌아서야만 등이 보인다. 그러면 이번에는 얼굴은 보이지 않고 뒷면만 보인다. 이처럼 우리는 많은 것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 같지만 국한적인 한 단면만을 보며 판단하고 결정한다. 전체에서 한 단면만 보고 나머지는 상상으로 추측한다. 이런 습관이 어쩌면 사람들의 상상력이 풍성해지도록 진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체를 종합적으로 관찰하여 판단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사실은 한 단면만을 보며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1차원적 생각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포용해야 하는 이유이다. 누구나 오류의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서로 소통하고 포용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갈등 때문에 발행한 문제는 공기나 중력처럼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3차원의 공간과 시간이라는 차원을 합하여 4차원이라는 현실에 사는 우리는 양극단에서 서서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며 극단적 사고로 1차원적인 세상에 갇혀 있는 사람도 포용해야 하는 이유다. 겨울의 풍경을 아무리 잘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매미의 생각도 4계절을 경험하는 사람이 포용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극소수 집단이 숨겨진 이익을 얻기 위해 증폭시키는 갈등도 모두에게 좋은 결과로 바뀌도록 다듬고 포용하며 어려움을 해결하는 선진화된 문화는 사회적 재난이라는 성장통을 극복하면서 멋진 보편적 가치가 자리 잡는 사회로 진화한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시대가 바뀔지라도 쉽게 바뀌지 않을 새로운 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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