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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변덕을 탓하지 마라, 변덕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영태 교수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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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10  16: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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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변덕을 탓하지 마라, 변덕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일하던 사람이 돌변해서 배신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로 인하여 심각한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변치 않을 것이란 절대적인 믿음으로 오랫동안 신뢰 관계를 구축했는데 한순간에 그 믿음이 물거품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다.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일본 사람에게는 정의가 승리하지 않는다는 정서가 있다고 한다. 정의보다는 자료가 승리한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자료가 바뀌면 정의도 바뀐다는 의미다. 그들에게 약속은 파기할 수 있는 자료만 찾으면 변심도 정당하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자료라는 게 얼마든지 임의로 조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속임수를 쓰고 거짓말을 해서 승리를 거머쥔 사람에게 왜 거짓말하고 속였냐고 따지듯 물으면 적의 말을 믿은 사람이 바보지 어찌 내가 잘못이냐고 대꾸하였다는 일화는 일본 사람의 영웅 이야기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거짓말과 속임수는 승리를 위한 전략이고 전술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일본 사람들은 실용주의적 사고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선비들의 가치관과는 매우 다른 부분이다. 
  사실 세상 살다 보면 착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보다 준비된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는 말은 도덕이나 윤리 책에서나 나오는 경우가 많다. 현실 세계에서 성공은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동안 실력은 있지만, 이해관계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사람들과 착한 마음으로 만 일을 하면 마음에 상처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계약서를 작성하게 만든다. 계약서는 사람들의 변덕스런 마음에 대한 안전장치다. 계약서에는 인간미나 사랑이나 도덕적 협력은 없고 이해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한 조정과 상호 간의 권리만 있다.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는 것이라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수습하기 위한 안전장치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모든 일에 시시콜콜 계약서를 작성하며 생활할 수는 없다. 계약서 없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상호 간의 가치 교환을 충족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가치 교환에 대한 충족은 착한 마음으로 출발한 것만은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상호 간의 가치 교환은 타자의 처지나 상황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상호 간의 존중이나 교환할 가치가 없다면 공동체의 삶에서 사람의 향기가 사라질 수 있다. 바보처럼 착하게 사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존중하는 미덕은 교육과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정과 사회가 함께 완성해 간다. 문화는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보존하고 싶은 가치를 가다듬고 존중하면서 자리 잡는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상호 간에 가치를 교환할 수 있는 자세가 변덕스런 마음을 합리적 판단을 하도록 잡아둔다. 여기에서 합리적 판단이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가치의 교환에 대한 기대감이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가치와 이념은 다를 수 있다.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앙 내에서도 같은 사안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때로는 개인의 사소한 이익이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앙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조직이 혼란에 빠지면 어려움을 돌파하자고 설득하며 구성원들이 서로 단결하도록 독려하는 말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리고 조직의 책임자는 구성원 모두가 위기에 처한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착한 마음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 배에 함께 탄 사람일지라도 개개인의 서로 다른 이유로 협력하는 것이지 지도자의 마음과 정확하게 일치해서 협력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 굳어진 개인 간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현상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착한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럴 때 현실은 생각을 바꾸라고 한다. 그 생각에 따라 마음을 바꾸면 이번에는 변덕스럽다고 비난한다. 모든 일의 결정 과정에서 개인의 가치가 최우선순위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변덕스러움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다음에 가족, 그리고 국가의 이익을 마음에 둔다. 국가의 경쟁력마저도 개인의 이익과 방향이 같을 때 그 가치 실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가치는 개인을 중심으로 외부로 확장해가는 구조라서 그렇다. 그러나 개인의 가치가 아무리 중요할지라도 개인을 위해 국가의 가치를 바꿀 수는 없다. 해답이 있다면 개인의 가치를 국가의 가치와 조율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개인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의 종류가 각자 다를지라도 큰 틀에서 국가의 가치와 함께 하면 그 가치는 주위의 도움을 받으면서 특정한 문화로 정착되어 순간의 변덕스러움도 창의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 
 지나치게 많아진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변덕스런 사람들과 어울려 일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 일상의 세계이다. 넘쳐나는 정보의 영향으로 자꾸만 변덕을 부리는 사람과 함께 일하려면 공통의 희망과 비전을 공유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일을 하려면 서로 합의하고 협력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첨예하게 다를 수 있는 이해관계를 통합하고 소통하면서 공통의 지향점을 향해 함께 가도록 누군가는 방향키를 잡아야 혼란이 발생하지 않는다. 만일 타인의 변덕으로 내 마음이 불편해 졌다면 그것은 나에게 이익이 없어서 발생한 현상이다. 개인은 각자의 가치 판단에 따라 의사 결정하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면 실용적인 방법을 찾아 나서는 습성 때문에 누구나 쉽게 변덕 부릴 수 있다. 다만 사람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변덕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변덕을 부리며 떠난 사람을 원망하기보다 아직도 나에게 가치를 교환할만한 자산이 있는지, 아니면 존중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지 되돌아보면 불편한 마음이 사라질 수 있다. 사람의 변덕스러움은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정하면 일상에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예절에 맞게 해동해야 하는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 다른 사람의 변덕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변덕 부리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아직도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내게 있는가, 서로에 대하여 존중하는 마음이 지금도 있는가 돌이켜보면 변덕으로부터 오는 불편한 마음은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때로는 사람의 변덕스러움 때문에 서로서로 최선을 다하여 창의적인 사랑을 하게 하기도 한다. 변덕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변덕은 변화에 대한 적응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영태 교수 조선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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