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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친구들
신수희 작가  |  kore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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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11  17: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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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친구들

 

마음이 헛헛하기도해서 내가 어릴 때 살던 고향에 내려갔다. 어떤 계획도, 약속도 없이 나 혼자서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어릴 때부터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걸 알았는지 하늘에는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운전석 창문 앞에 보이는 회색 하늘과 초록색의 무성한 나무들, 눈앞에 바라다 보이는 파란 들판은 금방 목욕하고 나온 여인 마냥 청초하고 아름답다. 녹색의 평화라고나 할까?

나 혼자서는 먼 여행을 갈수 없을 것이라는 서울 친구들을 비웃기나 한 듯 마음속에 행복이 가득히 스며든다. 여느 때에도 이렇게 비가 오고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면 길을 가다 가도 차를 세워놓고 바위 의자에 앉아 이름모를 들꽃을 쳐다보면서 어릴 때로 돌아갈 때가 많았다.

우리 엄마를 닮았나? 어느 날 비탈진 언덕배기에 꽂을 심겠다고 올라가다가 굴러 떨어진 엄마생각이 난다. 다른 때 같으면 한참 동안 휴게실을 들리지 않을 것인데도 오늘은 첫 휴게실 부터 차를 세워놓고 커피한잔을 샀다. 동행이 없는 혼자만의 커피 한잔, 사람들이 지나가는 바깥의자에 혼자 앉아 오밀조밀 한집에서 살았던 부모와 동생들,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던 친구들 보고픔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되새김을 주체할 수 없어서 한참이나 앉아있었다. 왜 나 혼자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들 때문에 방황하던 내모습은 어디를 갔는지 없어지고 백설공주 마냥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고향이 있는 여자,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들이 있는 고향.

거의 다섯시간이 흘렀을까 함양산천을 뒤로하고 진주 남강을 지났다. 함안 법수가 나오는 걸 보니 마산이 내 곁에 가까워 옴을 알았다. 활달한 친구 중자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중자는 내가 마산에 온 걸 꿈에도 모르는 소리다. 지금 마산에 거의 다 왔어. 친구들 보고싶어 그냥 왔다. 뜬금없이 훌쩍 이곳에 찾아온 나의 마음을 금방 알아차린다. 다른 사람 같으면 갑자기 왜 왔냐, 무슨 일이 있냐 하고 이유를 물어볼 텐데 마음을 미리 알고 있는 중자는 으레 이유들을 다 제껴 버린다. 나에게도 이런 친구들이 있다니 가슴한구석이 뭉클해진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마산에 왔었는데 친구들은 나 혼자 온 걸 보고 놀란다. 이 먼데까지 차를 끌고 오다니. 중자한테 전화한지 채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친구들이 나포함 6명이나 모였다. 단순하고 담백하게 살고 있는 아날로그의 친구들이다. 갑자기 마산의 친구처럼 아날로그처럼 살고 싶어 진다. 

 

고향의 친구들은 내가 좋아하는 생선만 먹고 살았는지 별 늙지 않고 푸른 바다처럼 파란 마음이다. 서울에 오래 전부터 살면서도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친구들을 묻어 놓고 그리워하며 살았던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오늘에 와서야 그 답을 알 것 같다. 자로 잰 듯이 예의 바른 현대 생활이 아닌 아날로그의 체질이 나였다는 것을 몇 년 만에 이곳에 오니 생각지도 못했던 예쁜 길 아름다운 바닷길이 많이 생겼다. 바다와 바다가 연결된 콰이강의 다리 가포 해수욕장을 지나 충무까지 연결되는 길고 긴 바닷길, 진해로 넘어가는 철로 위의 빨간 길, 우리 다섯 친구들은 점심을 먹고 차 안에 포개 앉아서 바닷가에 아름다운 찻집을 찾아보았다. 지중해라는 하얀 찻집은 바다가 없는 서울에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찻집이었다. 같이 온 마산 토박이 친구들도 처음 왔다면서 좋아들 했고 길에서는 보이지 않아 찾을 수 없는 집이었다. 멋을 아는 영애가 우리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후회했을 지 몰랐다. 오리 길이나 되는 바다 아래로 향한 꼬불꼬불한 좁은 길에 주인이 얼마나 꽃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부지런한지 설명하지 않아도 진 보라색깔의 수국과 작은 분홍 꽃들이 줄을 지어 처음 온 나그네와 토박이 친구들을 한껏 반기고 있었다. 산과 바다만 있었던 고향 마산이 이렇게 아름답게 변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거의 20년 전이나 되었을까, 마산에 놀러 왔다가 마산시가 창원시로 갑자기 변해졌을 때 나라를 뺏긴 고아처럼 쓸쓸하게 되돌아 간 적이 있었다. 마산에 살던 똑똑한 인재들은 다 어디로 가고 원망하면서 서러워하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이젠 빼앗긴 것이 아니고 다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오늘따라 고향 하늘은 더욱 파랗게 느껴졌다. 길 옆에 핀 아름다운 꽃과 내 친구들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멋지게 변해가는 마산의 풍광이 세계적인 도시인 나폴리 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를 기대하면서 자존감을 느끼기도 했다.

 

금방 갔다가 친구들만 만나면 빨리 돌아오겠다던 나만의 여행은 오늘은 장어구이, 내일은 생선회, 모래는 전복, 바다가 있어서 좋았고 어릴 때 이야기에 해 가는 줄 몰랐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우리들은 또 이렇게 만났다. 이젠 얼마나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가득한 마음에 친구한테 문자를 보냈다. “중자야 파란 마산의 바다를 쳐다보면서 어릴 때로 돌아갔던 우리 정말 행복했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오래 오래 건강해라. 영애, 성자, 영희, 경자에게도 내 이런 마음 전해줘라. 영희가 싸준 삶은 계란, 성자가 꼭꼭 뭉쳐준 콩잎파리 엄마 생각이 나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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